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극락도 살인사건] - 귀신은 제발 공포 영화에만 나와 주길...

쭈니-1 2009. 12. 8. 19:32

 



감독 : 김한민
주연 : 박해일, 박솔미, 성지루
개봉 : 2007년 4월 12일
관람 : 2007년 4월 19일
등급 : 15세 이상

결혼 4주년 기념일날 쭈니는...

4월 20일은 구피와 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며칠 전 묘한 신경전을 벌인 이후 분위기가 냉랭해진 상태이지만 결혼기념일은 그냥 넘길 수 없었기에 며칠 전부터 열심히 선물 궁리를 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선물은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서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 인터넷을 뒤진 결과 제가 좋아하는 닭고기로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음식들을 추려냈고 그 중 치킨까스와 치킨샐러드 그리고 달콤한 와인으로 결심했습니다.
드디어 결혼기념일. 구피에겐 오늘 야근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퇴근하자마자 마트에 들러 음식 재료를 사서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한 두툼한 닭고기 가슴살은 덜 익어 버렸고(닭고기를 튀기기전 칼집을 냈어야했는데...), 튀김가루와 계란,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 기름에 튀긴 치킨까스는 까맣게 타버려 보기 민망한 음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제 의외의 선물에 약간은 감동한 듯 보이는 구피. 그녀는 저녁식사를 많이 먹었다며 애써 만든 치킨까스는 손도 되지 않았고(4조각이나 만들었건만...) 치킨샐러드의 닭고기는 덜 익었다며 야채와 과일만 골라 먹더군요. 그러면서 날린 한마디.
"이렇게 음식 만들 줄 알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줬단 말이지?"
덜 익은 치킨샐러드와 까맣게 탄 치킨까스를 만들기 위해 저녁식사도 굶어가며 1시간동안 부엌에서 땀 흘리며 고생했는데 앞으로 자주 이런 고생을 해야 할 처지에 빠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구피만 기뻐해준다면 그깟 고생쯤이야...(아부성 멘트 날려주시고... ^^)
[극락도 살인사건]은 결혼기념일 이브 날 본 영화입니다.
"결혼기념일 이브인데 선물 안줘? 나 받고 싶은 선물 있는데... [극락도 살인사건]보러 가자!"
라며 닭살 애교까지 떨며 봤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구피에게 한마디 들어야 했죠.
"결혼기념일 이브 날 이렇게 무서운 영화를 봐야겠어?"


 

 


아가사 크리스티식 폐쇄 공간 추리극을 보고 싶었다.

제가 [극락도 살인사건]을 결혼기념일 이브 날 굳이 선택한 이유는 구피도, 저도 미스터리 추리극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며 '범인이 누굴까?'라는 추리를 하며 끊임없이 영화와 머리싸움을 해야 하는 영화. 영화의 마지막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범인을 맞췄다면 '내가 이겼다'라는 환희를 느낄 수 있고, 맞추지 못했다면 '이 영화, 대단한 걸'이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은 그런 영화인 듯 보였습니다.
제가 [극락도 살인사건]을 그렇게 생각한데에는 개봉 첫 주 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네티즌들의 입소문이 퍼진 이후에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 추리극의 경우 일부러 영화의 정보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버릇이 있는 저로써는 네티즌들이 각종 포털 사이트와 영화 사이트에 남긴 감상평의 제목(안본 영화의 경우 내용은 읽지 않습니다.)이 유일하게 영화의 재미를 추측하는 근거가 되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극락도 살인사건]은 스릴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관객에게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영화의 재미와 작품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공간은 외딴 섬. 그리고 그 외딴 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17명의 마을 주민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영화의 설정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추리 소설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도망갈 수도 없는 섬이라는 공간. 갇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끔찍한 살인마일 수도 있지만 도망갈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 사람들은 한명씩 죽어가고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생존자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불안에 떱니다. 과연 범인은 누굴까요?
[극락도 살인사건]은 폐쇄된 섬이라는 공간에서 벌이지는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상당히 많은 유사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은 한국적인 스릴러를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아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식의 추리극에 안주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소재를 삽입합니다. 그것이 바로 열녀 귀신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물귀신과 굶어죽은 귀신이다.

제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중 가장 무서웠던 영화는 바로 [가위]와 [링]입니다. 이 두 영화 모두 귀신 영화입니다. [가위]의 경우 시도 때도 없이 귀신이 나오고, [링]의 귀신은 마지막 장면에서만 등장하지만 그 끔찍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어렸을 적 TV에서 보았던 [전설의 고향]의 귀신들을 잊지 못합니다. 어렸을 적 TV에서 무서운 귀신이 나와 TV를 끄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TV가 꺼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악몽을 꾼 이후 귀신은 성인이 된 지금도 제겐 두려움의 존재입니다.
그 중에서 저는 물귀신과 굶어죽은 귀신이 가장 무섭습니다. 물속 깊은 곳에서 제 다리를 끌어내리는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합니다.(때문에 전 아직도 수영을 못합니다.) 배가 고파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귀신의 끔찍한 몰골은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극락도 살인사건]엔 바로 굶어죽은 열녀 귀신이 나옵니다. 정말 놀랬습니다. 전혀 생각조차 못했거든요. 이 영화가 단순한 추리극일 것이라 생각했던 저는 갑자기 나타난 귀신의 모습을 보고 너무 무서워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정은 구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손을 꽉 잡고 귀신이 나올만한 장면에선 고개를 돌리고 차마 화면을 바라보지 못하던 구피는 귀신이 들어간 줄 알고 눈을 떴다가 여전히 귀신이 버티고 서있는 것을 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젠장할...'이라며 욕을 내뱉더군요.
물론 이 영화에서 열녀 귀신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범인을 추리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겐 열녀 귀신의 존재가 너무 강력했기에 영화를 보며 '누가 범인일까?'라는 추리보다는 '귀신이 또 언제 나올까?'라는 두려움이 앞서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극락도 살인사건]은 미스터리 추리극으로써의 재미를 최소한 제겐 잃어버렸습니다.


 

 


범인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제가 열녀 귀신에 압도된 이후 [극락도 살인사건]은 미스터리 추리극이 아닌 공포 영화가 되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죽는지, 귀신은 어느 순간 나와 절 깜짝 놀라게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말았던 겁니다.
아직도 이 영화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네티즌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한민 감독은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만 감독보다 현명한 관객들은 그런 친절한 설명을 무시한 채 새로운, 그리고 의외의 범인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한민 감독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 신인 감독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좀 더 열린 결말, 그래서 관객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할 여지가 많은 영화,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점은 이겁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도 감독 스스로 명확하게 결말을 내버리는 것 보다는 관객 스스로 결말을 내리고 범인을 유추하게 하게 만드는 능력도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은 신인 감독으로써의 한계는 드러냈지만 꽤 잘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합니다. 섬이라는 공간의 효율적인 사용도 좋았고, 그것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추악한 내면과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볼거리를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열녀 귀신이라는 존재는 제게 이 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만들지만 그런 개인적인 취향을 무시한다면 [극락도 살인사건]은 한편의 잘 짜여진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마지막 반전이 억지스럽지도 않았으며, 중간 중간에 복선을 충분히 깔아 넣음으로써 관객들이 충분히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으며, 난데없이 귀신을 등장시켜 관객의 추리력을 흐리게 할 줄 아는 능력도 발휘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제 머리 속엔 '배고파'를 연발하던 열녀 귀신밖에 안 남았지만 [극락도 살인사건]이 침체된 우리 영화의 부흥을 일으켜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좀 더 잘 만들어진 한국적 스릴로도 앞으로 꾸준히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길...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귀신은 제발 공포 영화에만 나와 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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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무비
저도 엄청 쫄았는데.. 같으시내요 ㅋㅋ
처음 볼땐 걍 봐줄만 했는데 시체먹는 씬에서 자지러졌습니다..
소름이 돋더라구요;; 일부로 적응하려고.. 열녀귀신사진 찾아봤다는 결국.. 못찾았지만.. 열녀귀신이 굶어죽은 귀신인가요?.. 궁금하네요;;
 2007/06/04   
쭈니 네. 굶어죽은 귀신입니다.
전 이장이 열녀상을 탈려고 며느리를 동굴에 가두어놓고 굶겨 죽인 거죠.
저도 시체 먹는씬... 차마 눈을 뜰수가 없었답니다. ^^;
 2007/06/04   
라울
제가 추리물을 좋아하는 지라..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약간은 실망이였습니다..ㅠㅠ
너무 기대가 컷던 탓일까요??
아무튼 이런 장르의 영화가 계속해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일 눈으로만 보다가 처음 남기는 글이에요..
앞으로 자주 남길테니 쭈니님도 힘내세요~ ㅎ
 2007/06/25   
쭈니 그렇지않아도 지금 라울님의 글에 답글 달고 있습니다.
너무 꼭꼭 숨겨놓으셔서 찾기가 쉽지 않겠는걸요. ^^;
 2007/06/25   
바이올렛
범인은 감독도 모를듯..
저도 시체먹는 씬..은 꽤나 섬뜩하더군요.
그러나 잘린 팔,다리나 머리, 귀신의 얼굴... 등은 좀 어설프지 않던가요? 가짜 티가 나던데...
쭈니님 더 놀라게 귀신에 공을 좀 더 들였어야 했다는... ^^;;
좀 투박(?)했던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재미는 뭐, 대강 있었지만 좀 더 다듬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2007/07/10   
쭈니 사실 가짜티가 나는지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씬에서 눈을 가려버렸거든요.
전 그냥 귀신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무서웠으니... ^^;
 2007/07/10   
길가던행자
ㄷㄷ;;바이올렛님 말에 한표...물에서 주인공이 토막난 시체 건져 낼때 순간 제 표정이 ㄱ- <-이랬다는..가짜티 너무 나더라는 쩝;  2007/08/10   
쭈니 저는 무서움에 가짜티를 발견할 틈도 없었는데...
역시 저만 겁쟁이였던 거군요. ^^;
 2007/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