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쏜다] - 박정우 감독에게 유감(遺憾)하다.

쭈니-1 2009. 12. 8. 19:28

 



감독 : 박정우
주연 : 감우성, 김수로, 강성진
개봉 : 2007년 3월 14일
관람 : 2007년 3월 22일
등급 : 15세 이상

박정우, 그는 누구인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의 공통점은? 답은 바로 박정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입니다. 이들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요절복통 코미디 영화이며,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억눌려있는 분노를 폭력으로 폭발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줍니다.
물론 박정우 감독이 이런 코미디 영화만 쓴 것은 아닙니다. [키스할까요?], [산책], [선물]같은 로맨스 영화의 시나리오도 썼지만 공교롭게도 이들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서 쓴 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라이터를 켜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극본상을, [광복절 특사]로 청룡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여 흥행성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인정을 받으며 스타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떨쳤던 그가 2003년 드디어 감독으로 데뷔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요절복통 코미디 대신 춤을 향한 한 남자의 열정과 좌절을 그린 드라마인 [바람의 전설]을 선택함으로써 모험을 감행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박정우 감독에게 웃음을 원했고, 박정우 감독의 모험은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결국 [바람의 전설]의 실패는 박정우 감독에게 [쏜다], [난다], [간다]라는 도심난장프로젝트 3부작으로의 복귀라는 원대한 계획을 선포하게끔 만듭니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코미디 영화들이 언제나 흥행에 성공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박정우 감독의 코미디로의 복귀를 환영했으며,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 배우로 군림한 감우성, 코믹 연기의 대가 김수로, 강성진 등이 영화에 합류하며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 [쏜다]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박정우 감독에 대한 유감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속았다. 이건 코미디가 아니다.

[쏜다]는 모든 면모에서 코미디 영화 같았습니다. 감우성과 김수로 콤비는 [간큰가족]을 연상시켰으며, 여기에 코믹 연기의 대가인 강성진이 합류를 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죠. 사소한 사건이 점점 커지며 결국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는 황당한 과정은 [라이터를 켜라]의 복사판이며 착하게 살았지만 아내에겐 재미없다며 이혼당하고, 직장에선 상사의 비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되는 박만수의 하룻밤의 일탈은 박정우식 코미디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이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줄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쏜다]는 코미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영화를 통 털어 통쾌하게 웃은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었으며, 그나마 김수로의 오버 연기가 아주 살짝 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뿐이었습니다.
박정우 감독은 분명 코미디 영화에 그 능력을 발휘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굳이 그가 감독 데뷔작으로 [바람의 전설]이라는 드라마를 선택했었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로 이어지는 그가 시나리오를 쓴 일련의 영화들만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초기작인 [주유소 습격 사건]은 맹목적으로 웃기는 데에 전력을 다한 영화였지만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를 거치며 [광복절 특사]에선 웃음 끝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영화들은 점점 웃음을 잃고 있었으며 그 자리를 사회적 메시지로 메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쏜다]는 정확히 이런 그의 노력들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핏 보면 이전 코미디 영화들과 많이 닮은 영화이지만 그 실상은 웃음을 완전히 걷어내고 사회적 메시지로 가득 채워놓은 영화인 셈입니다.
물론 박정우 감독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면 안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쏜다]는 코미디가 아니다'라고 자신이 만든 영화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한 채 코미디라는 장르의 뒤에 숨어서 사회적 메시지를 내미는 그의 비겁함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짜증이 났습니다.


 

 


자기 만족... 이정도면 병이다.

어느 영화 주간지(무비워크 266호)에 실린 [쏜다]의 촬영기에 대한 박정우 감독의 코멘터리를 읽어보니 그는 [쏜다]를 통해 12차선 도로를 완전 통제하고, 한달반 동안 지은 상가 건물을 단 1분 만에 부수며 '사실 영화는 이런 맛으로 한다'며 자기 자랑을 해대더군요.
박정우 감독의 특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억눌려있는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시키며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주유소 습격사건]만 보더라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분명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그러한 범죄를 보는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들의 이유 없는 폭력은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며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의 쾌감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쏜다]는 다릅니다. 어쩌면 박정우 감독은 박만수(감우성)의 억눌린 분노가 폭력으로 분출되면 관객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며 박수치고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관객이 아닌 감독 자신 스스로 뿐입니다.
박만수의 분노 표출은 아주 잠깐 속이 시원했다가 다시 답답해집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켰던 [주유소 습격사건]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박만수는 영화의 중반부터 갑자기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리며 통제 불능의 상태로 자기 자신을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점점 커질수록 박만수와 양철곤(김수로)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있음이 뻔히 보이는데 과연 그러한 상황에서 박만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의 행동에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요? 고급차를 부수고 도시를 난장으로 만듬으로써 박정우 감독은 자기만족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박만수의 답답한 행동을 보고 있는 제 가슴은 점점 더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박정우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

[쏜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300]의 흥행 돌풍에 막혀 기대했던 흥행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관객들의 평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니 극장에서 장기 상영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겠죠?
이런 상황에서 박정우 감독이 기획한 도심난장프로젝트가 제대로 제작될 수 있을지 알수는 없지만 만약 [난다], [간다]가 제작된다면 이번엔 비겁하게 코미디라는 안전한 장르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자기 영화의 정체성을 밝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박정우 감독 자기 스스로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의 만족도 어느 정도는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관객들은 이유 없이 도심을 난장으로 만든다고 아이처럼 '그래 이런 맛으로 영화를 보지'라고 외치지는 않는 답니다. 영화의 흡입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심난장이 아니라 도심을 폭파시켜도 결코 좋아하지 않음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좀 과도한 욕심을 부린다면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맘껏 웃을 수 있는 영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정치인들을 바보로 만들며 메시지를 억지로 넣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웃음 속에서도 충분히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관객을 웃기는 능력을 지닌 박정우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자꾸만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려 하는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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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ja
그렇군요. 과연 이 영화를 보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전 바람의 전설에 엄청나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하하.
거의 제가 본 한국영화중 수작중 하나라고 나름 평가해서 하하;;
 2007/03/24   
쭈니 솔직히 [바람의 전설]을 못봤다는... ^^  2007/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