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윤제균
주연 : 임창정, 하지원
개봉 : 2007년 2월 14일
관람 : 2007년 2월 26일
등급 : 15세 이상
내겐 희망이 필요했다.
절망의 끝에서 한 가닥의 희망이 보일 것이라 기대했던 [바벨]에서 원했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저는 이번엔 [1번가의 기적]에 눈길을 돌렸습니다.
언제나 활기찬 코미디로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주다가 마지막에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주특기인 윤제균 감독이 [낭만자객]의 흥행 실패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1번가의 기적]은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철거촌에 찾아온 작은 기적 같은 희망에 관한 영화라더군요.
제가 슬픈 코미디를 그리 썩 좋아하지 않으며, [1번가의 기적]이 어떻게 관객을 웃기고 울릴 것인지 영화를 보지 않고도 눈에 훤히 보이는 마당에 굳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겠다고 나선 이유도 바로 영화의 말미에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적 같은 희망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금 제겐 희망이 절실합니다. 영화적인 희망이라도 보고 싶어 극장을 찾을 정도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기적 같은 희망이 지금 제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희망이라도 보고 싶을 정도로 지금 제겐 희망이 절실합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1번가의 기적]은 처음부터 제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임창정은 여전히 착한 건달 역을 맡아 관객을 웃기고, 하지원은 3류 복서로 임창정과 멋진 콤비 플레이를 펼칩니다. 아역 연기자들로 인한 웃음 코드가 생각 외로 강력했지만 이미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들을 통해 여러 번 본 장면들이라서 '귀엽다, 재밌다'정도의 감흥밖에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의 철거 장면은 윤제균 감독의 영화가 언제나 그러하듯 가슴 찡한 눈물을 안겨줍니다. 특히 어린 아역 연기자들의 눈물 연기는 '너무 뻔하잖아'라는 공격적인 자세로 영화를 보던 저마저도 무장 해제 시킬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한 가지 신선했던 것은 TV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된 선주(강예원)와 태석(이훈)의 에피소드였습니다. 저 역시 친구에게 속아 피라미드 현장에 끌려간 적이 있었던 당사자로써 일확천금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빠지는 선주와 그런 선주를 사랑하는 태석의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훈이 그토록 선하게 보일 줄이야... ^^
내가 원했던 희망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흥행 감독답게 윤제균 감독이 펼치는 웃음과 감동의 향연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영화는 막바지로 흘러갑니다. 과연 윤제균 감독이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저 지지리도 가난한 철거촌 사람들에게 어떤 기적 같은 희망을 안겨줄까? 제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윤제균 감독은 결코 기적 같은 희망을 철거민들에게 안겨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활 터전은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헐리고 그들은 집에서 내쫓깁니다.
아이들은 '왜 우리 집을 부수냐'고 울면서 필제(임창정)에게 하소연하지만 필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과연 그들의 헌집은 그렇게 부숴 졌지만 그 대가로 새집을 얻을 수 있는 걸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 같은 희망이겠지만 영화는 결코 그런 희망을 관객에게 선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족, 사랑, 노력으로 대변되는 약간은 현실적인 희망이 제시되죠. 그래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영화를 보는 그 잠시 동안만이라도 희망이라는 이름아래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이 영화가 현실적인 그것도 철거민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캐릭터에게만 부여된 제한적인 희망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윤제균 감독이라면 분명 다분히 영화적인 기적 같은 희망을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이 영화의 현실적인 희망은 시나리오를 윤제균 감독 스스로가 아닌(지금까지는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는 군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시나리오를 쓴 유성협 작가가 썼기 때문은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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