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빌 콘돈
주연 : 비욘세 놀즈, 제니퍼 허드슨, 제이미 폭스, 에디 머피, 대니 글로버
개봉 : 2007년 2월 22일
관람 : 2007년 2월 22일
등급 : 12세 이상
아카데미 시즌엔 아카데미용 영화를...
스스로 할리우드 키드라고 자칭하는 저로써는 극장가의 비수기라는 2월이 마냥 반갑기만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할리우드 최고의 축제인 아카데미 시즌이 바로 2월이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 시즌이 되면 제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작품상 후보작들을 관람하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적 이유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모든 영화를 관람하지는 못하지만 매년 최소 3편에서 4편 정도는 꼭 관람을 한 후 스스로 작품상에 대한 예상을 하곤 합니다.(하지만 대부분 빗나갑니다. ^^;)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는 [디파티드], [더 퀸], [미스 리틀 선샤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바벨]입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는 이미 봤지만 기대가 커서인지, 아니면 [무간도]를 너무 좋아해서인지 솔직히 실망스러웠으며, [미스 리틀 선샤인]은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받아내고는 있지만 이 영화의 작품상 노미네이트는 독립 영화에 대한 아카데미의 의례적인 호의이기에 작품상 수상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국내 개봉이 불투명하다고하니 만약 본다 해도 아카데미가 끝나고 나서야 관람이 가능할 듯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결국 이번 아카데미 시즌엔 제가 꼭 관람해야겠다고 점찍은 영화는 [더 퀸]과 [바벨]뿐입니다. 하지만 [더 퀸]은 여차저차 하다가 거의 놓칠 위기에 봉착해있으니 올해는 자칫 [바벨] 한편만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하지만 실망은 금물! 비록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남녀 조연상과 주제가상, 미술상, 의상상, 음향상 등의 후보에 오르며 이번 아카데미의 최다 노미네이트된 영화인 [드림걸즈]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카고]엔 없지만, [드림걸즈]엔 있는 것.
사실 이 영화를 보러가던 날, 제 컨디션은 정말 올해 들어서 최악이었습니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고, 온몸에 뭔가가 빠져 나간 듯이 힘이 하나도 없었으며, 너무 졸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러가는 내내 그냥 집에서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 컨디션은 정상으로 돌아오더니만 결국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영화 속의 에너지에 감전된 제게도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동안 [드림걸즈]가 선사하는 흥겨운 음악과 그 열정의 무대는 제 머리가 지끈거릴 시간적인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힘이 하나도 없던 제 몸엔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너무 졸려 아프기까지 했던 제 눈은 영화의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시카고]에서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드림걸즈]의 빌 콘돈 감독은 [시카고]의 각본을 맡은 인물이더군요.(감독이 아니라...) 하지만 2003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시카고]와 2007년 아카데미 최다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작품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드림걸즈]를 비교하라면 전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드림걸즈]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캐서린 제타 존스, 르네 젤위거, 라차드 기어, 퀸 라티파 등 화려한 캐스팅과 1억6천만 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 성적 등 분명 외형상으로 [시카고]는 [드림걸즈]를 압도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카고]엔 없는 것이 [드림걸즈]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 담긴 목소리'입니다.
영혼이 담긴 목소리
[시카고]와 [드림걸즈]는 뮤지컬 영화입니다. 전 뮤지컬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영화와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뮤지컬 영화는 음악들려주기 보다는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주옥같은 명곡이라도 이를 받쳐줄만한 배우가 그리 많지 않기에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쇼에 치중하는 겁니다.
[시카고]가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시카고]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카고]는 분명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시카고]는 음악보다 화려한 쇼로 관객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뮤지컬 영화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에 비해 [드림걸즈]는 스타급 배우 캐스팅을 포기하면서까지 음악들려주기에 치중합니다. 디나를 연기한 비욘세 놀즈는 분명 팝계에선 아이돌 스타이지만 영화계에서는 [오스틴 파워 골든멤버], [핑크팬더]같은 코미디 영화에 눈요기감으로 등장한 경력이 전부인 풋내기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녀가 [드림걸즈]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은 누가 뭐래도 노래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니퍼 허드슨이라는 낯선 배우의 발굴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만약 흥행을 노렸다면 좀 더 스타급 배우의 캐스팅이 필요했겠지만 빌 콘돈 감독은 그러한 스타급 배우의 캐스팅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영화의 음악성을 유지하려 애씁니다. 한물간 코미디 배우에 불과했던 에디 머피에게 새로운 재능을 캐낼 정도로 빌 콘돈 감독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게 느껴집니다.
그 결과가 바로 '영혼이 담긴 목소리'입니다. 단지 보여주기에 머물지 않고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의 목소리는 뮤지컬 영화의 진정한 진수를 맛보게 해주며, 그러한 목소리의 파워풀한 에너지가 영화를 보던 제게도 전해졌던 겁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마치 2시간동안 노래방에 내 모든 것을 바쳐 노래를 부른 후에 기진맥진하지만 속이 후련함이 느껴지는 것은 과연 저뿐이었나요?
요즘 가수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저도 한때는 노래를 좋아하던 소년이었습니다. 주말이면 라디오 옆에 누워 열심히 좋아하던 노래를 녹음하며 노트에 노래 가사를 써서 외웠으며, 노래방이 생긴 이후엔 매주 노래방에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노래를 불러야 속이 후련하던...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삶에 음악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라디오에서도 TV에서도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던 시기부터였습니다. 라디오를 틀면 노래대신 잡담만이 넘쳐났고, TV를 틀면 가수들은 노래는 하지 않고 개인기를 발휘하며 개그맨보다 더 웃기려 노력하던 바로 그 시기부터 였습니다. 노래를 들으려면 인터넷으로 뮤직 비디오를 찾아야하고, 최신 히트곡을 들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기도 힘들고 따라부르기는 더더욱 힘든 영어 랩이 넘쳐나던 바로 그 시기부터 였습니다.
[드림걸즈]의 영화적 무대는 바로 음악이 예술에서 쇼 비즈니스로 변화되던 시기입니다. 라이브 무대를 중심으로 흑인 특유의 강렬한 R&B를 부르던 지미(에디 머피)가 TV의 등장과 함께 백인들도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위해 자신의 음악성을 버리고 상업화에 점차 물들어갔던 이유도, 에피(제니퍼 허드슨)의 파워풀한 목소리는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개성이 약한 목소리를 가졌지만 뛰어난 외모를 지닌 디나(비욘세 놀즈)가 드림즈의 리드 보컬을 맡아야 했던 이유도, 바로 모두 쇼 비즈니스의 냉혹한 잣대 때문입니다.
대중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버리고, 꿈을 잃고, 결국 소멸되어버리는 [드림걸즈]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 우리 대중 가수들의 모습은 아닐지 걱정됩니다.
노래는 없고, 이미지만 존재하는 요즘의 가수들. 그렇게 해서 얻은 대중의 인기는 결코 오래 갈 수 없음을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되찾고, 개인기 대신 영혼이 담긴 목소리로 대중들에게 승부를 걸때 그들은 스타가 아닌 진정한 가수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과연 요즘 가수들 중에서 디나처럼 스타의 길을 버리고 진정한 가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가수가 존재하기는 할지... 다시 예전처럼 저도 노래를 좋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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