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바람피기 좋은 날] - 바람아, 멈추어다오!

쭈니-1 2009. 12. 8. 19:22

 



감독 : 장문일
주연 : 김혜수, 윤진서, 이종혁, 이민기, 박상면
개봉 : 2007년 2월 8일
관람 : 2007년 2월 12일
등급 : 18세 이상

추억과 함께 시작되다.

제가 중학생 시절, 그러니까 20년 전 이지연이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내겐 아픔 이었네'라는 노래를 통해 사춘기 시절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그녀는 이미연, 최수지, 양수경 등과 함께 A4크기의 사진을 코팅한 책받침으로 언제나 가방 속에 소중하게 자리 잡았었답니다.
이지연은 저처럼 팬도 많았지만 유난히 안티도 많았던 가수였습니다. 그녀의 안티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제 여동생이죠. 이지연이 라디오 생방송에서 욕을 했다는 둥, 유부남과 바람이 났다는 둥, 온갖 출처 불명의 악 소문으로 절 현혹시켰지만 전 꿋꿋하게 그녀의 팬임을 자처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가수라는 화려한 스타의 길을 버리고 사랑을 쫓아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며칠 전 [바람피기 좋은 날]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김혜수의 활기찬 모습이 스크린 가득 보여 집니다. 그런데 그때 아주 낯익은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바로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라는 노래였습니다. 너무나도 흥겹게 울려 퍼지는 이 노래,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가만히 음미해보면 흥겨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해가 뜨면 찾아올까. 바람 불면 떠날 사람인데. 행여 한 맘 돌아보면, 그대 역시 외면하고 있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세월가면 잊혀 질까. 그렇지만 다시 생각날걸. 붙잡아도 소용없어. 그대는 왜 멀어져 가나. 바람아 멈추어다오'
떠난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잊으려 몸부림치는 이 노래의 가사. 그리고 이런 애절한 가사와는 달리 흥겨운 멜로디. 영화 [바람피기 좋은 날]은 바로 '바람아 멈추어다오'처럼 서로 상반된 요소들이 만나 오히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런 이상한 영화입니다.


 

 


그냥 즐기면 되는 것 아냐?

[바람피기 좋은 날]은 엄밀히 따지면 불륜 드라마입니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TV 드라마들이 불륜을 소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마당에 영화에서까지 굳이 이런 불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순간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런 의문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바로 TV에서 할 수 없었던 불륜 이야기를 아주 당당하게 스크린 속에 펼쳐놓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드라마가 되어 TV에서 방영이 되었다면 당장 그 방송국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난리가 날것 입니다. '불륜을 조장 한다', '불륜을 미화 한다', '이런 드라마를 어떻게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라는 말이냐'등등.
이렇듯 [바람피기 좋은 날]이 결코 TV 드라마가 될 수 없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범죄로 인식되고 있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너무나도 가볍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유분방하게 펼쳐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슬(김혜수)과 작은새(윤진서)는 불륜을 저지르면서 전혀 심각하게 고민을 하거나 죄책감에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슬에게 불륜은 재미난 놀이에 불과합니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대학생(이민기)과 섹스를 즐기는 그녀는 남편(박상면)도 바람피웠었는데... 라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불륜을 즐길 뿐입니다.
남편에게 들키고 친정 가족들에게 망신을 당해도 그녀는 어린아이 마냥 재미난 놀이를 멈출 수 없다고 보채며 오늘도 또다시 위험을 무릎 쓰고 대학생을 만나러 나섭니다.
엄격한 유교 문화에 익숙한 우리 관객들에게 이슬의 행동은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만 하지만 나이를 잊은 듯 젊음을 발산시키는 김혜수의 매력과 연하 남자의 표본을 보여준 이민기의 귀여움이 그러한 거부감을 상당 부분 커버해줍니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뭐 어때, 그냥 즐기면 되는 것 아냐?'


 

 


불륜도 사랑이라면...

그에 반에 작은새의 불륜은 약간의 메시지를 동반합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 벌써 학부모가 된 20대 젊은 유부녀 작은새. 그녀는 무뚝뚝한 남편과의 관계에 지쳐 자기와 대화가 통하는 여우두마리(이종혁)와의 불륜을 통해 한번도 느껴 본적이 없는 사랑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 찾기는 좌절로 이어집니다. 채팅 땐 대화가 될 것만 같던 여우두마리가 막상 만나고 나니 대화대신 섹스만을 요구합니다. 대부분의 여성 관객들이 그런 여우두마리를 보며 '속물'이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여우두마리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어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암튼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작은새와 짜릿한 섹스를 원하는 여우두마리의 불륜은 불륜 드라마가 가지고 있을법한 메시지에 대한 장문일 감독의 가벼운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과연 불륜도 사랑인가?'라는..
허진호 감독은 배용준, 손예진과 함께한 영화 [외출]에서 '불륜도 사랑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륜은 엄연한 범죄 행각이기에 이 문제에 대해선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누구의 시선에서 불륜을 보느냐가 관건이겠죠. 만약 불륜을 저지르는 당사자의 입장이라면 불륜은 이룰 수 없기에 더욱 애절한 사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배우자의 불륜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불륜은 파렴치한 가정 폭력의 하나일 테니..
물론 [바람피기 좋은 날]은 그런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지 않은 채 가벼운 코미디 영화답게 아주 살짝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는 재치를 보여줍니다. 그리곤 이야기하죠. '이런 문제는 너무 복잡하잖아. 그냥 우리 웃고 즐기자.'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면...

즐기기 위해 불륜을 저지르는 이슬과 사랑을 찾기 위해 불륜을 저지른 작은새. 하지만 영화는 끝나는 그 순간까지 이 두 여자에게 아무런 결말을 안겨 주지 않습니다. 대학생은 군대에 갔지만 이슬은 제2의 대학생을 찾아 나설 것이며, 작은새는 여우두마리와 헤어졌지만 또다시 사랑을 갈구하게 될 것입니다.
똑 부러지는 결말에 익숙하기에 이런 흐리멍텅한 결말에 '이게 뭐야?'라는 허무함이 밀려 올때쯤 영화의 첫 시작에서 울려 퍼졌던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영화의 마지막에 와서 다시 울려 퍼집니다. 이번엔 김혜수의 해맑은 웃음과 아기자기한 율동까지 곁들여져서...
어쩌면 '바람아 멈추어다오'라는 노래처럼 장문일 감독은 어두운 소재인 불륜을 오히려 밝게 그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메시지나 결말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냥 자유분방하게 쿨한 그녀들의 쿨한 불륜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냥 웃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일단 장문일 감독은 성공한 셈입니다. 김혜수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윤진서는 충분히 귀여웠습니다. 그들이 펼치는 소동극은 충분히 웃고 즐길 만 했습니다.
하지만 웃고 즐기는 것, 그 이상을 원했다면 이 영화는 아무런 해답을 내주지 못합니다. '불륜도 사랑이다. 아니다'라는 복잡한 질문 따윈 관심조차 없으니까요. [바람피기 좋은 날]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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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야
혹시나 하며 들어와봤는데..역시나 보셨꾼요..ㅋㅋ
좀전에 마지막 영화로 봤습니다.
김관장을 볼까.. 이걸볼까.. 고민하다 봤는데
음..전 재밌게 봤습니다.
걍 그렇다는 다른이의 스포가 있어 별기대도 없었던데다
생각보다는 작은 소동들이 꽤나 제겐 웃겼거든여
별생각없이 웃을수 있어서 좋았어여..
영화가 끝나고 엔딩이 올라가는데..
문득.. 그래서..? 말하고 싶은게 뭐지 ..?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냥.. 뭐 사랑은 착각이야..
라는 김혜수의 대사를 다시 생각하며..
꽤 괜찮았어.. 라며 웃으며 나왔답니다.
 2007/02/17   
쭈니 결국 이 영화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겠죠.
불륜... 그래 뭐라 하고 싶은데... 라는 공격적인 자세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다가 영화가 끝나고나면 그래 그냥 웃겼어... 라고 나오게 되는... ^^
 2007/02/17   
ssook
재밌는 영화다...........라는게 보고 나서 친구들과 나눈 얘기였습니다....
순진하지만 그래서 더 끝으로 달려가는 듯한 아짐 윤진서와 엄청 시니컬해 뵈는 아짐.. 글고 불륜은 비극이잖어요.. 왠지 그동안 봐온 드라마나 영화들에서 불륜은 엄청난 비극으로 끝을 맺었었는데... 이 영화는 그런 류의 비극은 아니더군요./..
아, 그리고 김혜수의 청바지 입은 모습이 너무너무 이쁘더라구요...ㅋㅋ
 2007/02/26   
쭈니 재밌는 영화... 이게 딱 맞는 표현일지도...
ssook님의 말씀대로 비극을 유쾌하게 끌고나간 것이 주효한듯 합니다.
 2007/02/26   
하늘이
말씀대로 재밌는 영화네....그랬어여^^  2007/04/18   
쭈니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을듯... ^^  2007/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