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청기
더빙 : 안정현
개봉 : 2007년 1월 18일
관람 : 2007년 1월 27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웅이는 영화광
웅이와 함께 [신나는 동물 농장]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겨울 방학 시즌이 끝나가서인지 더 이상 웅이가 볼만한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부그와 엘리엇]이 좀 더 극장에서 상영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로보트 태권 V]가 상영 중에 있지만 겁 많은 웅이가 무서워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천년여우 여우비]가 이제 막 개봉하였지만 웅이가 보기엔 조금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웅이와의 두 번째 극장 나들이는 여름 방학 시즌쯤으로 미뤄 두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웅이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미 극장 맛을 본 웅이는 자기 나름대로 두 번째 극장 나들이 영화를 고르고 있었던 겁니다. TV 광고에 [로보트 태권 V]가 나오자 '나, 저거 좋아하는데...'라며 살짝 구피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더라는 군요.
구피의 이 말을 전해들은 제가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웅이를 들쳐안고 극장으로 뛰어 [로보트 태권 V] 영화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스스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줄 아는 기특한 웅이를 보며 연신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 네가 드디어 내게 효도를 하는구나.' ^^;
어린 아이들도 로보트 태권 V를 알더라.
[로보트 태권 V]...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어린 시절 우리들의 영웅이었습니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V'로 시작되는 주제곡은 나이가 들어서도 간혹 제 입가에서 맴돌곤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종이에 태권 V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그립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마징가 Z는 잘 못 그리면서...
하지만 [로보트 태권 V]를 보기 전에 걱정이 앞서더군요. TV에서 세련된 일본산 애니메이션을 즐기던 어린 아이들이 과연 30년도 넘은 이 낡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할까? '엄마 재미없어. 시시해'라고 극장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30년만의 영웅의 귀환이 빛이 바래 버릴 텐데...
그러나 제 걱정과는 달리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립니다. '와! 태권 V다.' 심지어 제 뒤의 꼬마 아이는 주제곡을 너무나도 씩씩하게 따라 부릅니다. 다른 영화라면 시끄럽다고 짜증이 났을 텐데, 오히려 아이들의 그런 열광적인 반응에 나도 모르게 감동스럽기까지 했답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뛰어 넘은 태권 V를 사이에 둔 아이들과 어른들 간의 공감대. 어린 시절 제가 그랬듯이 우리들의 어린 아이들도 그렇게 똑같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로보트 태권 V]를 힘겹게 디지털로 복원한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그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저는 어린 시절의 영웅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며, 30년 터울의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지도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캐릭터가 살아있다.
그렇게 어린 아들과의 감동 공감대를 형성하며 보기 시작한 [로보트 태권 V]. 하지만 [로보트 태권 V]가 절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또 있습니다. 바로 악당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악당인 카프 박사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천재적인 두뇌와 실력을 가졌지만 작은 키와 못생긴 외모로 컴플렉스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무시하고 비웃었던 사람들을 향해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무시무시한 로보트 군단을 만듭니다. 카프 박사는 지구를 정복하려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닌 겁니다. 외모 지상주의의 피해자이자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불쌍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카프 박사의 인조 인간 메리는 비록 태권V의 설계도를 훔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김박사에게 접근하지만 진정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불쌍한 소녀입니다.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주인공들을 보는 듯한 메리라는 캐릭터는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정말 창조적인 악당 캐릭터입니다.
여기에 카프 박사가 만든 로보트 군단의 조종사들은 운동 경기의 패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승자가 아닌 패자로 이루어진 로보트 군단. 그렇기에 그들의 반란이 왠지 측은하게까지 느껴집니다.
30년 전에 저렇게 생생한 악당 캐릭터를 만들어 내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많은 분들이 [로보트 태권 V]가 [마징가 Z]를 표절했다며 그 가치를 깎아내리려 하지만 [로보트 태권 V]의 악당 캐릭터들을 보면 오히려 단순한 캐릭터를 지닌 [마징가 Z]보다 한수 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는 나의 영웅이 아닌 웅이의 영웅이다.
영화를 본 후 웅이는 처음 들었을 [로보트 태권 V]주제곡을 흥얼거립니다. 가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웅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웅이에게 노래를 한 소절 한 소절씩 불러줬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선 컴퓨터로 [로보트 태권 V] 예고편을 찾아 틀어줬습니다. 웅이는 '한번 더...'를 외칩니다. 결국 그날 [로보트 태권 V] 예고편만 수십 번을 봐야 했습니다. 그래도 웅이는 성에 안차는지 자꾸만 '한번 더...'를 외칩니다.
이제 곧 새로운 [로보트 태권 V] 시리즈가 만들어 진다는 군요. 그땐 무조건 웅이를 안고 극장으로 향할 것입니다. 30년전 나의 영웅이 이제 5살이 된 웅이의 영웅이 되는 그 순간을 지켜보며 웅이와 함께 태권 V를 따라 태권도 흉내를 내겠죠.
그리고 먼 훗날 웅이가 크면 [로보트 태권 V]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손자, 손녀들도 함께 동참한 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고요.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렇게 가슴 설레고 행복한 일입니다.
P.S. 영화가 끝나고 저는 습관처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웅이는 제게 '아빠 노래 다 듣고 나가자'라며 절 붙잡더군요. 결국 자막이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까지 웅이와 함께 극장의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했답니다.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영화가 끝나면 서둘러 극장 밖으로 나갔던 저는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웅이에게 한 수 배웠답니다. 진정 영화를 사랑하는 자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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