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스티브 오데커스
더빙 : 케빈 제임스, 커트니 콕스, 샘 엘리엇
개봉 : 2007년 1월 18일
관람 : 2007년 1월 20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저와 비슷한 것을 희망하고 있을 겁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감동을 공유하는 것. 그래서 저는 구피와 함께 영화 보는 것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웅이와 함께 영화를 함께 보는 그 날을 꿈꿨습니다.
작년 봄. 저는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아이스 에이지 2]를 예매했었습니다. 그날 저는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는 그 역사적인 날이 바로 오늘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하고 웅이도 생전 처음 보는 극장에서의 영화 보기에 잘 적응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속 빙하가 녹으면서 시작했습니다. 동물들이 녹아버리는 빙하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길을 떠나자 웅이는 구피에게 아주 심각한 표정을 물었습니다.
"왜 동물들이 도망쳐?"
"응, 그건 얼음이 녹아서 동물들이 안전한 곳으로 가는 거야."
"그럼 얼음이 녹기 전에 우리도 빨리 나가자."
구피는 열심히 우리는 안전하다고 설명해줬지만 이미 겁에 잔뜩 질린 웅이를 설득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빨리 나가자고 보채는 웅이. 결국 저는 [아이스 에이지 2]를 보지 못한채 중간에 극장에서 구피와 웅이와 함께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웅이와 함께 보고 싶었던 수많은 영화들을 '웅이가 더 큰 이후에...'라며 흘러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웅이와 함께 볼 최적의 영화를 발견했습니다. 웅이가 좋아하는 동물 농장(웅이는 동물 농장 놀이를 가장 좋아합니다.)을 소재로 한 [신나는 동물 농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직 무리일 텐데...'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구피에게 '웅이는 내 아들이니 분명 영화를 좋아할 거야'를 외치며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내 취향은 아니다.
전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인어공주]를 극장에서 본 이후 매년 1편 이상의 애니메이션을 꼭 극장에서 챙겨봅니다. 제 친구들은 '애들처럼 무슨 만화 영화를 극장에서 보냐'고 핀잔을 주지만 저는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봐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며 오히려 친구들을 설득했었죠.
그렇게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신나는 동물 농장]은 극장용이 아닌 비디오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기술력의 차이 때문이죠.
얼마 전 개봉한 [해피 피트]와 [부그와 엘리엇]등의 애니메이션은 일반 영화를 능가하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렇기에 매년 업그레이드되는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을 확인하는 재미는 나이 서른이 넘은 제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개봉할 때마다 소개되는 신기술들, 그리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적 재미, 그것이 제가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즐기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신나는 동물 농장]에는 새로운 기술 따위는 없습니다. 마치 TV에서 보는 평면적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그림만이 극장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그렇다고 성인 관객들도 좋아할만한 기발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의 의인화라는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아이들을 위한 따분한 교훈에 초점을 맞춥니다.
과연 이 영화를 시간을 내서 극장에서 볼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TV화면으로 보나, 극장 화면으로 보나 별 차이가 없다면 차라리 집에 앉아 편안하게 웅이와 단둘이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눈높이를 낮춰라.
하지만 이제 겨우 5살이 된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며 제 취향을 웅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겠죠. 분명 [아이스 에이지 2]와 [신나는 동물 농장]을 비교한다면 전 100번을 선택하라 해도 100번 전부 [아이스 에이지 2]를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웅이는 다르겠죠. [아이스 에이지 2]의 그 실감나는 영상이 아직 어린 웅이에게 두려움을 줬지만 [신나는 동물 농장]의 그 평면적인 영상은 웅이에겐 즐거움을 안겨줬으니 말입니다.
만약 [해피 피트]를 웅이와 함께 봤다면 화면 가득 펼쳐지는 남극의 풍경에 웅이는 [아이스 에이지 2]의 두려움을 기억해냈을지도 모르며, [부그와 엘리엇]을 봤다면 동물들의 털 한 올까지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이 영화의 신기술 때문에 웅이는 영화와 현실을 구별 못하고 곰이 무섭다며 울먹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나는 동물 농장]은 딱 웅이 나이 또래의 눈높이를 맞춘 애니메이션입니다. 코요테가 동물 농장을 습격할 때 겁 많은 웅이가 무섭다고 할지도 몰라 긴장했는데 웅이도 이건 현실이 아닌 그냥 만화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재미있게 보더군요.
10살 이상의 아이라면 요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신기술에 이미 익숙해져 [신나는 동물 농장]을 보며 시시하다고 투덜거릴지도 모르지만 10살 이하의, 특히 처음 극장에 가는 아이들에겐 [신나는 동물 농장]만큼 좋은 영화도 없을 듯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화의 감동을 공유하려면 제 취향만 강요하며 제가 느낀 영화의 감동만을 추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상대방의 취향도 고려하고, 상대방이 느낀 감동도 함께 공유해야만 진정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겠죠.
이제 웅이와 저는 함께 영화를 즐기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언젠가 웅이에게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사랑하는 연인이 생긴다면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웅이와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다면 제겐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웅이와 함께 즐길만한 영화가 1년에 몇 편이나 개봉될지... 아무래도 웅이가 좀 더 크기를 기다려야겠죠?
P.S. 아무리 눈높이를 낮춘 애니메이션이라 할지라도 소는 소답게 그려주길... 웅이는 오티스와 데이지의 키스씬을 보며 '왜 소하고 돼지하고 뽀뽀해?'라고 묻습니다. 제가 아무리 '저건 돼지가 아니고 소야'라고 설명해줘도 '아냐, 돼지야'라고 우기네요. 그러고 보니 돼지 같기도 하고... (바로 아래 스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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