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멜 깁슨
주연 : 루디 영블러드
개봉 : 2007년 1월 31일
관람 : 2007년 2월 1일
등급 : 18세 이상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빠는 되기 싫었다.
영화를 보러가는 그 순간까지 저는 [아포칼립토]와 [그놈 목소리]를 저울질하였습니다. 둘 다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닌 영화죠. 마음같아선 둘 다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일단 [아포칼립토]는 멜 깁슨 감독의 역동적인 액션 영화입니다. 액션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아포칼립토]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 만한 액션 영화였습니다. 게다가 영화는 마야 문명이라는 우리에겐 생소한 무대를 액션의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과연 멜 깁슨이 표현한 마야 문명에서의 액션은 어떤 모습일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궁금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에 반에 [그놈 목소리]는 박진표 감독의 영화라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죽어도 좋아], [너는 내 운명]을 통해 실화를 영화화하는데 그 능력을 발휘했던 박진표 감독. 비록 [죽어도 좋아]는 보지 못했고, [너는 내 운명]도 나중에 비디오로 확인했었지만 그의 연출력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놈 목소리]는 박진표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부성애의 결과가 제 선택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놈 목소리]의 한경배(설경구)는 유괴된 아들을 구하지 못했지만 [아포칼립토]의 표범발(루디 영블러드)은 모든 역경을 딛고 아들과 임신한 아내를 구합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 된 입장에서 유괴된 아들을 애타게 찾는 [그놈 목소리]의 한경배라는 캐릭터를 참고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비록 저는 보잘것없고 이기적인 나쁜 아빠지만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이라도 가족을 지키는 강인한 아빠가 되고 싶었기에 [아포칼립토]를 선택하게 된 거죠.
그들은 행복했었다.
영화의 오프닝... 불안할 정도로 조용한 밀림의 수풀 속에서 한 마리의 멧돼지가 뛰어 나옵니다. 그리고 마야인들의 원시적이면서도 잔인한 멧돼지 사냥이 시작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멜 깁슨 감독은 [아포칼립토]는 이런 영화라고 관객에게 선포합니다. 다른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의 화면을 가득 채운 화약 냄새대신 원시적인 잔인함이 난무하는 액션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찬 선포. 일단 그러한 멜 깁슨 감독의 야심은 신선해 보입니다. 잔인하긴 하지만 오히려 본능에 충실하기에 순수해 보이는 멧돼지 사냥. 영화는 곧이어 마야인들의 평화로운 마을로 무대를 옮깁니다.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한 밀림에서의 멧돼지 사냥과 마야인의 평화로운 마을은 마야인들이 우리와 다르면서도 결국은 같음을 보여줍니다. 잔인한 멧돼지 사냥을 보며 고개를 돌려버렸던 저 역시도 우리네 시골 마을과 비슷한 정겨움이 묻어나는 마을의 풍경을 보며 마야인들에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과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먹을 음식을 구해 의기양양하게 마을로 들어서는 남자들. 어느 정도의 차이는 물론 존재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와 어린아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돈을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하는 현대의 우리들보다 그들의 삶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현대의 우리가 돈 많은 사람에게 의해 돈 없는 사람들이 짓밟히듯, 마야인들 역시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힘없는 그들은 짓밟히고 맙니다. 그리고 영화는 잔인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온갖 끔찍한 장면들을 동원하며 영화를 보는 절 괴롭힙니다.
액션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지만...
영화는 여기에서부터 액션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위기를 모면한 주인공이 악인을 향해 반격을 가하는 순간들. 하지만 그러한 장면들에서 쾌감이 느껴지기는커녕 그냥 머릿속이 텅빈 듯한 멍한 기분만이 감싸 돕니다.
그렇게 영화는 무려 2시간 20여분동안을 멈추지 않는 잔인한 액션의 향연으로 가득 채웁니다. 분명 이건 액션 영화인데, 그렇다면 분명 주인공이 반격을 시도하고 악인들을 처치할 때 짜릿함을 느껴야하는데, 마지막 가족을 무사히 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마음속으로 박수를 쳐야하는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 존재하는 액션 그 이상의 무엇이 제 머리 속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몇 세기 이전, 지구의 반대편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멸망한 마야 문명. 분명 멜 깁슨이 마야 문명을 액션 영화의 무대로 선택한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습니다. 단지 독특한, 그리고 원시적인 액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상업적인 시도만은 아니라는 것이 영화를 보고난 후의 제 느낌입니다.
어쩌면 멜 깁슨은 마야의 원시적인 문명을 부각시킴으로 십자가와 화약을 앞세워 마야 문명을 멸망시킨 서구 문명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통해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멜 깁슨의 이력을 살펴본다면 이러한 가정이 결코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멜 깁슨의 의도가 어떠하든 문제는 제가 느낀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의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원시적이고 이질적인 마야 문명을 통해 바로 선진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서구 문명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저뿐일까요?
마야 문명의 잔인함을 두려워 하지마라.
이 영화는 마야 문명을 그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원시적인 그들은 자기 부족의 역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다른 부족을 잡아와 목을 잘라내고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칩니다. 잔인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한 이 장면은 마야 문명의 잔인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대륙을 점령한 서구의 선진 문명이 행한 만행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미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을 학살하고 내쫓은 그들은 결코 마야 문명보다 선진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야인들이 다른 부족을 사고파는 노예 시장 장면의 경우는 서구의 노예 시장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족을 구한 표범발의 활약에 박수를 칠 수 없었던 것은 앞으로 그들 가족에게 더 큰 고난의 길이 펼쳐 질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의 뒤를 쫓는 무시무시한 마야 전사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들보다 잔인하고 그들보다 불순한 의도를 지닌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이 마야 문명의 해안선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그 힘든 역경을 딛고 가족을 구출했건만 이제 표범발은 자기가 살던 땅을 이 낯선 서양인들에게 모조리 빼앗길 것이며 총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마야 문명의 잔인함이 무섭다고요? 아뇨. 전 앞으로 표범발에게 다가올 서구 문명의 잔인함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액션 영화이면서도 짜릿하지 않았고, 표범발이 추적자들을 전부 무찔렀음에도 박수를 칠 수 없었습니다. 멜 깁슨의 의도가 그것이었던, 아니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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