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상찬, 김현수
주연 : 차태현, 임채무, 이소연
개봉 : 2007년 2월 14일
관람 : 2007년 2월 24일
등급 : 12세 이상
정말 그들이 불쌍했다.
영화를 고를 때 많은 것들이 영향을 끼칩니다. 영화의 소재, 스토리, 장르, 주연배우, 감독 등등. 하지만 가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로 인하여 '이 영화 한번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 영화가 바로 [복면달호]입니다.
이 영화의 경우 제가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단지 불쌍해서입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소재도 아니고, 스토리도 뻔해 보이고, 코미디라는 장르는 극장보다는 비디오로 보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도, 그렇다고 유명한 감독이 연출한 것도 아닌 이 영화를 굳이 보게 된 이유는 바로 불쌍해서입니다.
[복수혈전]의 실패 후 TV에서 그토록 질리게 놀림을 받았으면서도 또 영화에 도전한 이경규가 불쌍했고, 한때는 잘나가는 흥행 배우였지만 너무 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해 최근엔 흥행에 연속 실패하고 있는 차태현이 불쌍했습니다.
그중 이경규는 불쌍하면서도 존경스러웠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하며 제작, 감독, 주연을 맡은 [복수혈전]이 사상 최악의 실패를 거둔 후 그 오랜 기간을 심기일전하여 다시 영화에 도전하는 그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결코 이루기 힘든 꿈이라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 시대 중년에게도 안겨주기를...
암튼 이렇게 [복면달호]를 선택한 것은 영화 외적인 요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정작 [복면달호]에 대해서는 쓴 소리를 해야겠군요. 이경규의 도전정신을 높이 살만하지만 그가 진정한 영화인으로써 인정받으려면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듯 하네요.
뽕짝은 유치하다?
일단 이 영화의 소재는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어린 시절엔 봉달호(차태현)처럼 뽕짝은 유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톱스타인 조용필보다는 그에 가려 언제나 2인자에 머물던 전영록을 더 좋아했으며,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의 노래는 유치하다며 듣기조차 거부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나도 모르게 뽕짝을 흥얼거리게 되더군요. 뽕짝의 그 구수한 멜로디가 언제부턴가 제 입에 착착 감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유치한 노랫말들은 아직도 적응불가이지만... ^^
그런 제게 [복면달호]는 시작부터가 꽤 흥미로웠습니다. 폼 나게 락을 하고 싶었으나 어쩌다보니 뽕짝 가수가 된 봉달호. 그는 TV에 나가는 것이 창피해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릅니다. 하지만 그의 가면은 오히려 신비주의 전략으로 크게 성공하고 달호는 이제 봉필이라는 최고의 뽕짝 가수로 우뚝 섭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과정을 코믹하게 포장합니다. 하지만 그 포장기술이 서툴기만 합니다. 달호가 뽕짝은 할 수 없다고 버럭버럭 우기다가 차서연(이소연)을 보고 첫눈에 반해 큰소리 기획에 남기로 결정하는 장면부터가 그렇습니다.
느끼한 표정으로 달호에게 뽕짝의 매력을 가르쳐주는 기획사 선배의 난데없는 진지모드, 가면을 쓴 달호에게 '이건 진짜 네 모습이 아니다'라고 충고하는 서연의 말도 안 되는 투정, 뭔가 할듯하다가 아무것도 안하는 달호의 라이벌들, 그리고 달호의 너무 뻔한 마지막 선택까지...
이제 제게 뽕짝은 유치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매우 유치하게 뽕짝이라는 영화의 소재를 표현합니다. 뽕짝의 구수한 매력처럼 영화도 좀 더 구수하게 치장할 수는 없었는지, 신인 감독들의 노련한 연출력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차선 다리'만은 좋았다.
영화가 뻔하다보니 코미디 영화이면서 웃음의 강도도 낮았습니다. 원래 코미디라는 장르를 내걸었고, 코미디의 달인이라는 차태현을 내세운 만큼 이 영화는 정말 쉴새 없이 관객을 웃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웃긴 장면은 몇 되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요즘 코미디 영화의 추세처럼 마지막 가슴 찡한 감동적인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잔잔하다'가 이 영화를 표현하는데 적합한 단어일지도...
하지만 그래도 '이차선 다리'라는 봉필이 부른 트로트만은 정말 좋더군요. 트로트면서도 트로트답지 않은 세련된 가사와 멜로디는 영화를 보고나오면서도 한동안 제 입가에서 맴돌았습니다. 마지막 '이차선 다리'의 록 버전도 영화를 멋지게 마무리해 줬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차선 다리'를 들으러 극장에 간 것은 아니니 그것만으로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듭니다. 그래도 [복수혈전]처럼 놀림거리가 될 영화는 아니니 이경규에겐 다음 영화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듯 하네요.
다음 영화엔 '정말 재미있다'라는 탄성이 나오길 기대하며, 이경규의 도전이 계속되길 마음속으로 응원해 봅니다. 더 이상 제가 '불쌍해서'라는 이유로 그의 영화를 선택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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