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아론
개봉 : 2007년 3월 22일
관람 : 2007년 3월 25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웅이와의 세 번째 영화 여행
이제 다섯 살 된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에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무엇보다도 극장에 가고 싶어도 볼 영화가 없다는 것이 문제죠. 방학시즌에 개봉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초등학생 정도의 눈높이에 맞춰져 과연 웅이가 재미있어 할지도 의문이고...
암튼 지난 1월에 때맞춰 개봉해준 [신나는 동물 농장], [로보트 태권 V]덕분에 웅이와 극장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저는 세 번째 극장 나들이를 위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라는 제겐 상당히 낯선 애니메이션의 개봉 소식을 들은 겁니다.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 어떤 애니메이션인지 제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인지가 가장 중요했죠. 영화를 예매하기 전 웅이에게 인터넷으로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주고 물었습니다.
"어때, 재미있을 것 같아?"
"응"
웅이의 그 짧은 한마디로 모든 준비는 끝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피는 웅이보다 내가 더 신나 보인다며 핀잔을 주지만 어쩌겠습니까? 웅이와의 극장 나들이는 언제나 제게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는 것을...
그런데 왜 빼꼼이가 주인공이야?
빼꼼이라는 캐릭터가 TV시리즈의 주인공인줄은 몰랐습니다. 영화의 홍보 문구 중 'EBS, 투니버스의 최고 인기작을 스크린에서 만나보다!'를 읽고 나서야, [빼꼼]이 현재 EBS, 투니버스에서 상영 중인 TV시리즈라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저도 가끔 웅이와 함께 EBS를 보는 편인데 왜 [빼꼼]은 한번도 보질 못했는지...
그러한 [빼꼼]에 대한 사전 정보 때문인지 저는 당연히 [빼꼼의 머그잔 여행]의 주인공이 실수투성이 북극곰 빼꼼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다보니 빼꼼은 거의 조연 수준이더군요.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인간 아기 베베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마법의 펜던트를 선물 받아 그 펜던트의 마법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거대한 머그잔을 타며 시작됩니다. 처음 머그잔이 도착한 곳은 북극곰인 빼꼼과 펭귄인 꽁꽁, 도도가 있는 북극. 그곳에서의 한바탕 소동 끝에 이번엔 빼꼼과 꽁꽁, 도도와 함께 다시 머그잔 여행을 떠난 베베는 이번엔 뜨거운 사막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사막의 방랑자인 도마뱀 후다닥과 오아시스에 사는 거대한 괴물 용용이를 만나게 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빼꼼과 꽁꽁, 도도는 북극에 데려다주고 베베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스토리를 쭉 나열하고 보니 주인공은 영락없이 베베입니다. 빼꼼은 베베의 머그잔 여행 도중 만난 여러 친구중 하나에 불과하죠. 게다가 빼꼼이라는 캐릭터는 짝사랑하는 도도를 위해 스토커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 그리 썩 매력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캐릭터더군요. 웅이도 '꽁꽁이가 제일 멋있어'라며 빼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을 보니 저만 그런 것은 아닌듯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는 '꽁꽁이가 제일 멋져!'를 연발했고, 저는 '제목을 [베베의 머그잔 여행]으로 지어야 하는 것인 아니야?'라며 딴지 아닌 딴지를 걸었지만,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영화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잘 만든 3D 애니메이션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만든 3D애니메이션이 있다.
솔직히 친구들이 제게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 재미있었어?'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응, 추천할만해'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같은 3D애니메이션이라도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나서는 '최고 였어'를 연발할 수 있지만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그러질 못하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어린아이를 위한 영화이니 어린아이들이 재미있어 한다면 그것으로 성공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보호자들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죠.
하지만 할리우드의 3D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분이라면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한번쯤 봐야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기술력이 할리우드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의 움직이라든가, 표정, 그리고 색감까지... 어느새 우리 3D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의 수준이 여기까지 왔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빼꼼의 머그잔 여행]의 그러한 기술력의 놀라움은 우리의 3D애니메이션 시장이 상당히 척박했기 때문에 더욱 희망적입니다. 셀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꽤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이성강 감독의 [천년여우 여우비]에 이르렀지만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이제 우리 3D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인 셈이죠.
시작이 이 정도라면 충분히 박수, 아니 기립 박수를 보낼 만합니다. 앞으로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보호자인 어른의 눈높이도 약간만 고려해주고 스토리와 캐릭터를 꾸준히 개발하며 3D기술력을 키운다면 언젠가는 픽사가 부럽지 않은 우리 3D애니메이션이 탄생하게 되지 않을까요? 2007년은 정말 우리 애니메이션에 여러번 희망을 느끼는 의미 있는 해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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