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안판석
주연 : 차승원, 조이진, 심혜진
개봉 : 2006년 5월 3일
관람 : 2006년 5월 3일
등급 : 12세 이상
지금까지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시사회에 당첨이 되어 부랴부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구피는 약속이 있어서 영화보러 못나온다고 하고, 다른 영화 파트너들도 그날따라 약속이 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저혼자 영화를 보러가야하는 상황. 다른 영화도 아닌 멜로 영화를 혼자 봐야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머쓱해졌지만 그래도 차승원의 영화를 놓칠 수는 없기에 팀 버튼의 [유령신부]이후 6개월만에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들 연인끼리 친구끼리 영화를 보러왔지만 혼자 그것도 회사에서 곧장 극장으로 간탓에 극장이라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차려 입고 극장 좌석에 앉아 있으려니 상당히 창피하더군요.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그러한 창피함은 순식간에 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국경의 남쪽]은 꽤 능수능란하게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처음엔 근래 보기드문 순수함으로 제게 미소를 안겨 주었고, 중반엔 분단의 아픔과 함께 서서히 제 눈가를 촉촉히 적시더니만, 결국 후반부엔 그동안 참고 참았던 제 눈물샘을 사정없이 자극하여 결국 제 눈에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게끔 만들어 버리더군요.
지금까지 제가 본 영화중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는 고등학교때 강남 동아극장에서 혼자 봤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습니다. 하지만 무려 20여년만에 바뀌었습니다. 이제 제가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며 본 영화는 바로 [국경의 남쪽]이랍니다.
순수함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국경의 남쪽]은 순수함으로 시작합니다. 서양의 연애문화에 어느덧 익숙해진 남한과는 달리 폐쇄된 사회덕분에 아직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북한의 연애문화를 낯설은 사투리와 70년대 우리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순수함으로 이 영화는 표현합니다.
제가 [국경의 남쪽]을 보기전 가장 많이 우려했던 것은 바로 차승원의 존재입니다. 물론 차승원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혈의 누]와 [박수칠때 떠나라]를 통해 그가 코미디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도 폭넓은 연기력을 발휘할줄 아는 배우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할지라도 멜로 영화에서의 차승원은 생소했기에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만약 [국경의 남쪽]이 멜로라 할지라도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애초부터 걱정따위는 않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고 노골적으로 관객들을 울리겠다고 선언한 최루성 멜로 영화입니다. 쿨한 젊은 관객들이 관객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 상황에서 최루성 멜로라는 장르는 왠지 시대착오적인 장르처럼 인식이 되고 있으며 아직은 웃기는 배우로 강한 인상이 남아있는 차승원이 최루성 멜로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차승원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도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걱정따위는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차승원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 순수한 사랑을 연기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조이진이라는 신인급 배우가 완벽하게 차승원의 연기를 뒷받침해주고 있었습니다.
'조이진... 그녀가 누구지?' 제가 [국경의 남쪽]을 보고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조이진이라는 배우가 어디에 나왔던 배우인지 검색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낯은 익은데 어느 영화에서 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이 생소한 배우는 [태풍태양]에 출연했을뿐인 완전 신인급 배우더군요. 하지만 그녀는 [국경의 남쪽]을 통해 완전 절 매료시켰습니다. 그녀의 그 커다란 눈망울이 얼마나 절 울렸는지...
이렇게 [국경의 남쪽]은 멜로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차승원과 이전에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조이진의 완벽한 앙상블로 순수함이라는 영화의 테마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제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너무 멀리 와 버린 선호와 연화의 사랑, 그리고 남과 북.
[국경의 남쪽]의 초반이 순수함을 무기로한 멜로라면 중반은 이젠 왠만큼 식상해질만한 분단 드라마로 전개됩니다.
분단이라는 소재는 1999년 [쉬리]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우리 영화의 주요 소재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분단을 소재로한 영화들은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미스터리 드라마에서부터 [남남북녀], [휘파람 공주], [간큰 가족], [동해물과 백두산이]와 같은 코미디, [이중간첩]과 같은 첩보 액션 영화까지 여러 장르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몇몇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분단 소재의 영화들은 이 비극적인 소재를 주류 장르인 코미디속에 엮어 넣으려는 시도들을 통해 어이없는 코미디 영화들이 만들어지며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경의 남쪽]은 장르를 잘 선택한 셈입니다. 비록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분단을 세련된 겉포장으로 치장하지는 못했지만 분단이 가지고 있는 비극을 한 개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표현함으로써 분단과 코미디의 결합이라는 잘못된 만남은 피했던 겁니다.
어쩔수없는 상황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탈북해야 했던 선호(차승원)는 북에 남겨두고온 약혼녀 연화(조이진)를 데려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버립니다. 하지만 남한이라는 곳은 선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너그러울 정도로 순수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남한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은 사기를 당해 모두 날려버리고 돈을 모으기위해 죽기살기로 일하지만 연화를 남으로 데려오기위한 돈을 모으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연화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을때쯤 선호에게 경주(심혜진)라는 한 여자가 나타납니다.
초반의 순수함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중반의 상황은 남과 북이라는 결국 같은 나라이면서도 서로 너무 멀리 와버린 현실을 선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잘 표현해 냅니다. 그렇게 선호는 점차 남한에서의 생활에 젖어 북한에 두고온 순수한 사랑을 잊어버리며 살아갔던 겁니다. 마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노래는 부르지만 북한과의 통일에 대해서 별 감흥이 없는 우리 젊은 세대들처럼...
그 사랑이 날 울린다.
이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이 보입니다. 초반에 연화에 대한 사랑으로 방황하던 선호도 경주를 만나 안정을 되찾고 선호의 가족은 북한 음식점을 차려 남한의 생활에도 점차 적응해 갑니다. 비록 연화와의 그 애절한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선호는 그냥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하지만 어느날 잊었던 아니 너무 힘들어 잊고 싶었던 사랑이 그를 찾아 옵니다.
가족을 버리고 온갖 어려움을 헤쳐 선호에 대한 사랑 하나만을 믿고 남한으로 온 연화. 그러한 연화앞에 선호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녀에 비해 자신은 얼마나 손쉽게 사랑을 포기했던가요. 하지만 선호는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연화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그에겐 이미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경주가 있기에...
이때부터 [국경의 남쪽]은 본격적으로 관객을 울리기 시작합니다.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연화가 초췌한 모습으로 선호앞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들은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코 차승원과 조이진은 관객앞에 목놓아 울지 않습니다. 그 슬픔을 가슴속에 깊이 묻어둔채 울음을 계속 속으로 삼켜 버립니다. 그래서 더욱 슬픕니다. 답답한 가슴이 펑 뚫릴 정도로 시원하게 울수조차 없는 그들의 슬픔은 제게 전이되어 제 가슴속 깊숙한 곳의 눈물을 밖으로 끌어냅니다.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분단이라는 조국의 운명으로 인하여 결코 이룰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되어 버립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국경의 남쪽]이 비록 한 남자의 슬픈 사랑으로 분단이라는 현실을 표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 결합되길 간절하게 원하고 있지만 주변국의 상황으로 인하여 결코 결합이 쉽지만은 않은 남과 북의 현실을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생각되더군요.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이데올로기와 하찮은 철조망에 가로막혀 서로에 대한 짝사랑밖에 할 수 밖에 없는 남과 북. 선호와 연화의 사랑처럼 우리 남과 북도 이룰수 없는 사랑으로 이렇게 끝나는 것인지... 더 큰 아픔과 슬픔이 있기전에 이 사랑이 어서 이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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