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I'm O.K
감독 : 김태균
주연 : 칼윤, 소유진
내가 김태균 감독을 잘못 봤나보다.
KT에서 '집번호를 준다는 것은'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3가지 단편중에서 첫번째 이야기는 [늑대의 유혹],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연출한 김태균 감독의 [I'm O.K]입니다. 헐리우드에서 활동중인 한국계 배우 칼윤과 TV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소유진을 캐스팅한 이 영화는 어렸을적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아 낯설은 고국인 한국을 찾은 격투기 선수 윤(칼윤)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스튜어디스 은영(소유진)의 뜻하지 않은 동거 생활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I'm O.K]에서 김태균 감독은 '집번호를 준다는 것은'에 대해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은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격투기 선수인 탓에 언제나 상처 투성이인 윤에게 은영은 집전화번호를 적어줍니다. '무슨 일 있으면 이리로 전화해'라며. 어렸을적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서 혼자의 힘으로 어머니를 찾아야 하는 윤에게 은영은 유일하게 자신을 걱정해주고 지켜주는 존재였을 겁니다. 그녀가 전화번호를 적어 주는 그 순간부터...
하지만 윤과 은영의 동거 생활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처음보는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사는데 아무런 고민의 흔적도 없어 보이며 마지막 윤의 비극은 처음부터 너무 뻔하게 예상됩니다. 김태균 감독은 너무 뮤직비디오같은 멋진 화면과 비극에만 신경쓴 나머지 윤의 애틋한 사연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저는 언젠가 김태균 감독이 예전의 [박봉곤 가출사건]과 [화산고]같은 톡톡 튀는 영화로 복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단편 영화에서조차 그는 10대 감성의 예쁜 팬시같은 영화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는 그러한 장르의 영화들로 앞으로의 필모그래피를 가득 채울 생각인가 봅니다. 제가 김태균 감독을 잘못 봤나봅니다.
제목 : 기억이 들린다
감독 : 곽재용
주연 : 손태영, 이천희
곽재용 답다.
두번째 이야기인 [기억이 들린다]는 [엽기적인 그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감독 곽재용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들린다]는 과연 곽재용 감독다운 영화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곽재용 감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국내 감독중 싫어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김기덕 감독과 더불어 곽재용 감독이라 말할 정도로 그를 싫어합니다. 제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소녀적 감수성과 엽기발랄한 상상력의 유치한 결합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엽기적이 그녀]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 그냥 원작대로만 흘러가더라도 절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었습니다.(전 원작의 열렬한 팬입니다.) 하지만 곽재용 감독은 원작에 자신만의 엽기발랄한 상상력을 결합시킵니다. 그 결과 탄생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원작의 소녀적 감수성보다는 곽재용표 코미디만 난무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엽기적인 그녀]의 이전 이야기인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까지 만들며 절 경악하게 했었죠.
[기억이 들린다] 역시 다분히 곽재용스럽습니다. 소녀적 감수성이 다분한 스토리 라인에 '기억은행'이라는 곽재용스러운 상상력을 결합시킨 이 영화는 '집번호를 준다는 것은'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형의 죽음으로 조직 폭력배의 길에 들어선 경민(이천희)은 학창시절 첫사랑인 유미(손태영)를 우연히 만납니다. 그는 동료와 내기를 합니다. 그녀가 날 아직 사랑한다면 집번호를 알려 줄것이라고. 그는 유미에게 무작정 달려가 말합니다. 집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그리고 경민을 남몰래 짝사랑하던 유미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줍니다. 이렇게 유미로부터 사랑을 확인한 경민은 자신의 죽음을 앞둔 그 어느날 마지막으로 유미의 집을 찾고 그곳에서 아주 짧지만 생애 가장 행복한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을 기억은행에 남겨 유미에게 1년후 선물합니다.
[기억이 들린다]에서 곽재용 감독의 상상력은 단편영화라는 특성과 어울리며 제게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곽재용 답다라는 것이 이런 의외의 재미로 다가올줄이야...
제목 : 폭풍의 언덕
감독 : 정윤철
주연 : 정의철, 이혜상, 차아름
두 말할 필요없이 최고다
[I'm O.K]가 실망스러웠고, [기억이 들린다]가 외외로 괜찮았다면 [폭풍의 언덕]은 그야말로 최고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말아톤]의 장윤철 감독은 전화번호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독특한 상상력과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말을 통해 짧은 시간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정윤철 감독이 말하는 '집번호를 준다는 것은'은 '새로운 인연'입니다. 인연을 믿는 승민(정의철)은 어느날 결코 낯설지 않은 전화번호와 어느 여인에 대한 꿈에 시달립니다. 그는 꿈 속의 전화번호에 전화를 겁니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고 나온 여인은 이제 겨우 중학생인 꼬마 여자아이(차아름). 하지만 그는 인연을 믿기에 여자아이와의 인연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어머니(이혜상)를 만난 승민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꿈 속의 여인은 바로 여자아이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였던 겁니다. 12살 연상의 여인과 12살 연하의 여인 사이에 끼어버린 승민... 그리고 놀라운 전화번호에 얽힌 인연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이전 영화들은 스토리가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I'm O.K]에서는 너무 예상 가능한 스토리 라인이 짜증났었고, [기억이 들린다]는 약간의 의외이긴 했지만 그래도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폭풍의 언덕]은 시종일관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상이 불가능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정의철 감독은 제 예상에서 벗어난 스토리를 제시하며 단편 영화의 특성을 잘 살립니다. 장편 영화와 비교한다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안에 그는 최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영화의 주제를 제게 각인시킨 겁니다. 역시 [말아톤]을 보면서도 최고라고 느꼈는데 그 능력은 단편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네요. 대단합니다. 정의철 감독님.
영화 감상은 ... http://www.ktfil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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