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대우
주연 : 한석규, 이범수, 김민정
개봉 : 2006년 2월 23일
관람 : 2006년 3월 9일
등급 : 18세 이상
난 사극 열풍이 반갑다.
2005년의 마지막 주부터 불기 시작한 [왕의 남자]의 열풍은 결국 [태극기 휘날리며]를 훌쩍 뛰어넘어 우리나라의 최고 흥행작에 오르는 대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여기 [왕의 남자]의 열풍이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편의 사극이 개봉하여 박스오피스를 평정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음란서생]입니다.
사실 저는 영화계에 부는 이러한 사극 열풍이 반갑습니다.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에서부터 사극의 무궁무진한 영화 소재로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저는 그 이후로 쭈욱 [영원한 제국]을 잇는 웰메이드 사극 영화를 목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다림이 이루진 것은 [영원한 제국]이 개봉한지 거의 10여년이 흐른 2003년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이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2003년엔 꽤 많은 사극 영화들이 다양한 형태로 개봉하였습니다. 사극의 블럭버스터화를 선언했던 [청풍명월]과 [천년호], 사극과 코미디의 결합을 시도했던 [낭만자객]과 [황산벌] 등. 그러나 제 기대감을 채워준 것은 [스캔들]뿐이었으니 2003년의 사극 열풍은 제게 그리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하지만 [스캔들]은 [영원한 제국]이후 잊고 있었던 사극의 진정한 재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 제겐 아주 소중한 영화였습니다.
이렇듯 전 사극에 진중한 드라마와 아름다운 비극이 곁들여져야 재미를 느끼는 편입니다. [영원한 제국]도 그랬고, [스캔들]도 그랬으며, [왕의 남자]도 그랬습니다. 그렇기에 [음란서생]이 개봉했을 때 보고는 싶었지만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코미디적 분위기가 제 취향과는 맞지 않았죠. 하지만 사극 열풍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로 [음란서생]을 선택하였습니다.
내 눈엔 비극이 보이더라.
[음란서생]을 보기 전 몇몇 영화 사이트에서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읽었었는데 거의 대부분 '영화의 후반부에 갑자기 생뚱맞게 진지해져서 아쉬웠다'라는 평이 지배적이더군요. 하지만 제가 비극이 곁들어진 사극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전 다분히 코미디스러웠던 [음란서생]의 초반부터 비극의 씨앗이 보였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지만 당대 최고의 소심남이기도 한 윤서(한석규)입니다. 그는 우연히 음란한 소설의 세계와 만나게 되고 그러한 소설을 통해 마음속 깊숙이 꺼내지 못했던 자신의 욕망을 밖으로 표출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비극의 씨앗은 이러한 윤서의 짜릿한 일탈에서 비롯됩니다. 그의 과감한 일탈은 감히 왕의 여자인 정빈(김민정)을 자신의 음란한 소설의 소재로 이용하면서 필연적으로 촉발된 것입니다.
[스캔들]도 그랬고, [왕의 남자]도 그랬듯이 [음란서생]역시 해서는 안될 사랑이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조원(배용준)과 숙부인(전도연), 그리고 조씨부인(이미숙)의 엇갈린 사랑이 [스캔들]의 비극의 씨앗이 되었듯이, 연산(정진영), 장생(감우성), 공길(이준기)의 서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왕의 남자]의 비극의 씨앗이 되었듯이, 윤서와 정빈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 영화의 필연적인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던 겁니다.
여기에 [스캔들]의 각본가이기도 했던 김대우 감독은 [스캔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좀더 치밀하게 [음란서생]의 마지막 비극을 준비합니다. 그것은 왕(안내상)과 사가에서부터 정빈을 모셨던 조내관(김뢰하)이라는 캐릭터의 존재입니다. 최고의 권력가이지만 정빈의 진정한 사랑만큼은 받지 못했던 왕과 정빈을 가까이서 보기위해 자신의 남성성을 포기하고 내관이 되었던 조내관의 안타까운 사랑은 이 영화의 비극이 생뚱맞다라고 불평하신 분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비극의 또 다른 씨앗입니다.
그들은 사랑했을까? 아니 그녀만 사랑했다.
아직까지 이 영화 속 비극의 씨앗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제가 느낀 그대로 이 영화 속 비극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부분부터는 영화의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오니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의 비극은 윤서와 정빈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아니 좀더 세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정빈의 짝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제가 보기엔 윤서는 결코 정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윤서의 이야기를 해보죠. 그는 동생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서 상서하나 올리지 못하는 소심남입니다. 오죽했으면 그의 부인이 그의 소심함을 질타할 정도죠. 그런 그가 음란한 소설들을 통해 그동안 꾹 참아왔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소설을 통해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지만 점차 대담해져 왕의 여자인 정빈을 탐하고 그녀를 소설에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윤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음탕한 욕망인지 모르겠다고 실토하죠. 문제는 관객들 스스로 그것이 사랑이라고 결론내리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영화의 그 어디에도 윤서가 정빈을 사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결국 윤서의 정빈에 대한 진심은 음탕한 욕망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정빈은 윤서를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조내관의 말처럼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든 갖고야 말았던 정빈은 갖고 싶지만 위험이 따르는 윤서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이 점차 사랑으로 변합니다. 그러한 정빈의 사랑은 윤서가 정빈을 탐한 후 정빈의 변화로 표현됩니다. 산책씬에서 느껴지는 정빈의 그 행복한 표정으로...
하지만 윤서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정빈은 윤서에게 복수하려하고 그 복수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 왕과 조내관을 이용합니다. 결국 윤서의 비극은 정빈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빈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며 그렇기에 이 영화는 관객들이 좀처럼 찾기 어려운 비극적 씨앗을 몰래 숨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음란에 집착하지 마라.
하지만 [음란서생]이 비극적인 사극 영화로써 제대로 관객들에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영화 스스로 파놓은 함정 때문입니다.
김대우 감독은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영화 중반 분위기까지 영화의 코믹함을 드러냅니다. 명망 높은 사대부의 선비가 음란소설이라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며 벌어지는 해프닝은 관객들을 웃깁니다.
그리고 여기엔 코믹 연기의 대가인 이범수를 비롯하여 오달수, 김기현, 우현 같은 감초 조연 연기자들의 힘이 컸습니다. 특히 이범수와 오달수는 이 영화에서도 그 진가를 맘껏 발휘하는데 문제는 그들이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후반부의 비극과는 너무나도 분위기가 맞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활약이 크면 클수록 [음란서생]은 후반부 비극의 힘을 점점 잃어버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거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 영화 속 음란은 윤서의 감추어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끄집어서는 안될 욕망이 끄집어내지며 벌어지는 엇갈린 사랑의 비극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속 비극은 윤서를 향하기 보다는 윤서의 욕망 때문에 사랑에 상처를 입은 정빈과 정빈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의 복수에 이용당해야 했던 왕과 조내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왕과 조내관이 이야기가 좀더 심층있게 영화에서 펼쳐졌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이처럼 관객 스스로 영화 속 음란에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어쩌면 보기드문 화려한 색체와 함께 엇갈린 사랑이 정밀하게 맞물린 또 하나의 웰메이드 사극 영화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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