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크 포스터
주연 : 조니 뎁, 케이트 윈슬렛, 줄리 크리스티, 더스틴 호프만
개봉 : 2005년 2월 25일
관람 : 2005년 2월 27일
어렸을적 저는 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습니다.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보다는 방에 처박혀 장난감 로봇들을 정열해놓고 그 장난감 로봇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영화의 스토리를 구성하며 혼자 노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 당시에 제 상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마징가 Z], [짱가], [그랜다이저], [그레이트 마징가]와 같은 공상과학만화들이었습니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 사춘기가 되었을때 제 상상은 주로 슬픈 사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상상속의 저는 슬픈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기도 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공책에 3류 연애소설을 썼었으며, 외우지도 못하는 시집을 들고다니던 문학소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상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 [잃어버린 너]류의 슬픈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더 나이가 들어 어른이된 후 제 상상은 더이상 공상과학만화도 아니었고, 슬픈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돈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복권에 당첨되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을 꿈꿨으며, 그 돈으로 멋지고 폼나게 살아가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잠시나마 지긋지긋한 현실의 세계에서 도피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제 상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일확천금을 얻은 사람들의 경험담이었습니다.
이렇듯 한때 상상력이 풍부했다고 자부했던 저는 어른이 되어가며 어렸을적 순수했던 상상의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폈던 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결국 일확천금을 꿈꾸는 속물로 변해버린 제 자신을 보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왜이렇게 변했을까?' 그러나 '어렸을적 순수한 상상을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라며 제 스스로 위로하곤 했죠.
하지만 여기 어렸을적 상상의 세계를 어른이 되어 멋지게 이루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배리입니다. 어렸을적 꿈꿨던 네버랜드를 어른이 되어서 '피터팬'이라는 멋진 동화로 이룩해낸 그의 이야기를 마크 포스터 감독은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통해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이야기합니다. '상상의 힘을 믿으세요.'라고...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제임스 배리(조니 뎁)가 쓴 새로운 연극의 현장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회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극장을 찾고 제작자인 찰스(더스틴 호프만)와 제임스의 아내인 메리는 분주하게 손님을 맞이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제임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무대의 뒷편에 숨어서 관객들의 반응을 훔쳐보며 초조해합니다. 그런 제임스의 첫 등장은 [네버랜드를 찾아서]가 밋밋한 영화일것이라는 선입견으로인해 이 영화를 보기전까지 망설였던 제게 좋은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에 초조해하는 제임스의 반응이 너무나도 정감이 갔기 때문입니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영화에대한 이야기를 쓰는 저는 이곳저곳 영화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몇일간 초조해하며 다른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핍니다. 간혹 '잘 쓰셨네요'라는 칭찬이라도 들으면 기운이 쏟지만 악플이라도 달려져있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도 악플은 제 글을 다른 분들이 읽었다는 증거이니 조금 낫습니다. 아무도 읽지않고 아무런 리플조차 달리지 않으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꺾이고 맙니다. 취미생활로 글을 쓰는 저도 이런데 자신이 쓴 연극에 대한 관객들의 첫반응을 살피는 제임스는 얼마나 초조했을까요? 그래서 제임스의 그 소심한 모습을 보며 저는 그를 좋아하게 될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연극의 실패후 제임스와 찰스는 이런 대화를 나눈니다. '연극은 즐기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변질되었다.' 그들은 그 모든 책임을 '평론가 때문에...'라고 단정짓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 초심을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게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제임스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미망인 실비아(케이트 윈슬렛)와 그녀의 네명의 아들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작품에 돌입합니다. 드디어 그는 '즐기는 연극'에 대해서 스스로 실천에 들어간 것입니다.
영화의 중반은 제임스와 실비아,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의 순수한 우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조니 뎁은 마치 어른이 되어버린 피터팬처럼 순진하고 장난꾸러기같은 모습으로 아이들과 장난을 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제임스와 아이들의 모습에서 '피터팬'의 장면들을 군데군데 숨겨놓습니다. 저 역시 '피터팬'을 좋아하기에 영화속에 숨겨진 '피터팬'의 장면들을 찾아내며 왠지모를 행복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그토록 주장하는 상상의 힘일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잔잔한 행복을 안겨주지만 극적인 영화의 힘은 많이 부족한 영화입니다. 요즘 헐리우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실존 인물들을 그린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도 그러한 사실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흑인에 시각장애인이었지만 그 모든 편견을 딛고 음악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레이 찰스의 일생을 그린 [레이]와 영화 제작자이며, 모험가이고, 항공업계의 기린아였던 하워드 휴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에비에이터]만해도 그들의 인생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영화라는 생각이들 정도로 극적이었습니다. 세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기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린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또 어떻고요. [네버랜드를 찾아서]와 비슷한 소재를 가졌으면서도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이룰수없는 사랑이라는 완벽한 영화적 재미를 갖추었었죠.
그러나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영화적인 재미를 갖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써야한다는 제임스의 미치광이적인 열정도 없었고, 유부남인 제임스와 미망인인 실비아의 가슴아픈 사랑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치열하다'와는 전혀 상관없는 잔잔하기만한 제임스의 일상은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지루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치열함'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버리고 제임스와 실비아와 그녀의 아이들의 우정을 즐기듯이 지켜본다면 마지막에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네버랜드를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실비아에게 활짝 펼쳐져있는 환상의 세계 네버랜드. 아이들은 성장을 멈추고 그 속에서 상상을 나래를 활짝 펴며 맘껏 하늘을 날 수 있는 곳. 힘든 사회 생활속에서 마음속 깊숙히 자기 자신만의 네버랜드를 간직하고 계신 분이라면 꼭꼭 숨어있는 마음속의 네버랜드가 자신의 앞에 활짝 펼쳐지는 환상의 경험을 하게 될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마지막의 환희를 느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작품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본후 저는 제임스 배리의 일생이 궁금해져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실제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임스와 실비아가 처음 만나 우정과 사랑을 나누었을때 영화와는 달리 실비아의 남편인 아서는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와 제임스의 우정(혹은 사랑)을 못마땅해했지만 실비아와 제임스의 관계는 지속되었다는 군요.
그리고 더욱 재미난 사실은 제임스가 실비아와 그녀의 아이들과의 우정으로 인해 '피터팬'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되었지만 그후 마치 저주처럼 실비아의 가족들은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아서는 '피터팬'이 공연되고 몇년후 죽었고, 실비아 역시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제임스는 실비아의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지만 그들의 불행은 끊이지 않아 첫째인 조지는 23살에, 넷째인 마이클은 21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익사하였다고 군요. 제임스는 특히 마이클을 총애했는데 마이클의 죽음이후 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했다고 합니다. 영화속 '피터팬'의 모델이었던 피터는 제임스와의 관계가 소원해져, 제임스와 가족들이 교환한 편지들을 불태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말았답니다.
제임스 배리는 말년에 '피터팬'으로 얻은 수익과 저작권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영국의 한 어린이 병원에 모두 기증했다고하니 제임스와 아이들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느낄수 있습니다.
결국 영화속에서는 멋진 친구이며 아버지였던 제임스와 아이들의 관계는 현실에선 그러지 못했나봅니다. 상상의 힘은 각박한 현실에서 네버랜드를 펼쳐낼수 있을만큼 대단했지만 불행한 현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 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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