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에비에이터] - 정말 파란만장하다.

쭈니-1 2009. 12. 8. 17:58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베킨세일
개봉 : 2005년 2월 18일
관람 : 2005년 2월 28일

우리 시간으로 2005년 2월 28일 오전에 제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하였습니다. 비록 세계 영화제도 아니고, 우리 영화제는 더더욱 아니지만 세계 영화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헐리우드의 영화 축제이기에 당연히 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관심을 가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회사에 출근해야하는 관계로 OCN의 실황중계는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수상 소식을 꼼꼼히 챙겨보았습니다.
저는 이번 아카데미에서 최후의 승자는 [에비에이터]일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후보작들도 분명 쟁쟁했지만 아카데미의 취향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에비에이터]라고 생각한 겁니다. [사이드웨이]는 분명 잘만든 영화였지만 아카데미가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를 선택할리는 만무해 보였고,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너무 잔잔했기에 일찌감치 수상 확률이 상당히 낮아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레이]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에비에이터]가 경합을 벌일텐데... [레이]는 흑인 가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안락사를 미화하는 급진적인 영화의 시선이 아카데미 수상의 걸림돌이라 생각했죠. 이렇게 다른 후보작들을 지워나가지 않더라도 [에비에이터]는 분명 아카데미가 좋아할만한 모든 것들을 갖춘 영화입니다. 스텍타클과 감동, 그리고 실화라는 점. 게다가 아직 아카데미는 거장 마틴 소콜세지에게 상을 안겨주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상기한다면 이번이야말로 아카데미와 마틴 스콜세지가 화해할만한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수상 소식을 꼼꼼히 챙겼던 저는 점점 제 예상이 빗나가고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에비에이터]가 편집상, 촬영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할때까지만해도 제 예상이 적중할것만 같더니 남우주연상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닌 [레이]의 제이미 폭스가 수상할때부터 불길했습니다. (아무래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카데미를 수상하지 못하는 톰 크루즈 꼴이 될것만 같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감독상이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넘어가고, 작품상마저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수상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아카데미 수상에 이견은 없습니다. [레이]를 제외하고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들을 모두 감상한 저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거장다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솜씨를 느낄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안타까운 일이네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는 오손 웰즈가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던 것처럼 미국의 살아있는 거장 중의 한명인 마틴 스콜세지와 아카데미의 엇갈린 운명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카데미의 결과가 발표되던 28일, 저는 [에비에이터]를 예매했습니다. 당연히 [에비에이터]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 믿었던 저는 [에비에이터]를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예매하고 몇시간후 아카데미의 최후의 승자가 [에비에이터]가 아닌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참 난감하더군요. 그래도 [에비에이터]는 개봉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예매를 취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대신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3시간짜리 영화. 만약 다음날이 휴일만 아니었다면 러닝타임의 압박은 아마도 또다시 절 포기하게 만들었을겁니다. 하지만 다음날 늦잠을 잘수있다는 생각에 부담없이 극장에 갈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3시간이라는 긴긴 시간동안 졸음을 참아야 할것을 미리 각오는 했습니다. 요즘들어 제 집중력은 2시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드디어 영화가 시작합니다.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어린 시절의 잔상들을 오프닝으로 준비한 이 영화는 하워드의 그 병적인 결벽증이 죽은 어머니의 영향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관객에게 밝혀둡니다. 곧바로 당시 파격적인 제작비를 들인 대작 [지옥의 천사들]의 전쟁과도 같은 촬영 현장이 이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고 싶었던 그의 모험가적인 기질이 펼쳐집니다. TWA항공사를 인수하여 굴지의 항공사인 팬암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장면이 이어지더니, '헤라클레스'라는 불가능할것만 같았던 어마어마하게 큰 비행기의 제작 성공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정말 파란만장합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저렇게 파란만장할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놀라운 마음으로 영화에 집중하는 사이 갑자기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벌써?' 이것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입니다. 3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에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몇분전만 같았는데 어느새 영화는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끝내고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영화적인 재미면에서 정말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에비에이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상당히 파란만장한 영화입니다. 영화속 주인공인 하워드 휴즈는 평범한 제가 보기엔 정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영화의 제작비앞에서도 '내가 가진게 돈밖에 더 있냐?'며 여유롭게 농담을 건네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만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돈만 많은 졸부는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야심가이며 죽는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열성적인 모험가였습니다. 비행기에 대한 애착이 TWA항공사의 인수로 이어지고 곧이어 팬암의 거센 공격으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것만 같더니만 멋진 카리스마로 반격에 성공하여 자신의 명예를 지켜내는 모습을 보며 '와! 정말 멋진 인물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런 하워드 휴즈의 일생을 영화화하며 그를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듯이 보입니다. 관객들이 '우와 멋지다'라고 생각할만하면 병적인 결백증으로 괴로워하는 그의 다른 이면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팬암의 음모로 청문회에 출두할 위기에 봉착한 하워드의 그 병적인 모습은 그동안 '멋지다'라고 생각했던 제 마음을 충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왜 저렇게 숨어만 있을까? 당당하게 팬암의 음모를 밝히지는 못하는 걸까?' 그의 약한 모습에 실망을 하고있으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또다시 청문회에서 멋지게 반격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줘 다시금 '멋지다'를 외치게 만들고, '헤라클레스'라는 최대 비행기의 성공앞에서 그의 멋진 모습이 절정에 달했을때는 또다시 그의 병적인 모습을 내비치며 영화를 끝내버립니다.
이렇듯 하워드 휴즈에 대한 '멋지다'와 '실망이야'의 대립되는 감정이 반복되며 영화는 그렇게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관객들을 스크린에 잡아두는 힘을 발휘합니다. 만약 '멋지다'라는 감정이 3시간동안 지속되었다면 과연 저는 3시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지 의문이네요. 그런 면에서 역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역량은 빛을 발했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백만장자의 멋진 모습과 모성애 부족으로 인해 한없이 나약했던 한 남자의 자화상을 동시에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최고라고 할만 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에비에이터]이전에 [갱스 오브 뉴욕]이라는 영화를 통해 독특한 블럭버스터를 완성했었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여전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 했었으며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은 여전히 관객들을 압박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콤비작을 앞으로도 몇편 더 볼 수 있을거라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만남에 우려를 나타냅니다. 이들이 함께 영화를 만들때마다 이상하게 마틴 스콜세지의 이름은 점차 지워지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만이 깊게 새겨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한때 로버트 드니로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였다면 이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의 새로운 페르소나일뿐 달라진것은 없는 셈입니다. 단지 감독보다는 주연배우의 이름에 더 비중을 두는 관객의 입장에서 [타이타닉]의 세계적인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이 먼저 들어오는 것 뿐입니다.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만 보더라도 이들의 콤비가 얼마나 잘 조화가 되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음에 분명한 이들 영화에서 과연 그 어떤 제작사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름에 이 거대한 제작비를 댈 수 있을까요? 그는 거장임에는 분명하지만 흥행성에서는 입증이 안된 감독이기도 하니까요. 결국 마틴 스콜세지는 돈의 제약으로인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포기해야만 했을겁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출세작인 [타이타닉]은 너무 크게 성공했습니다. 한동안 그는 [타이타닉]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구해준것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입니다. 과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아니라면 그 누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1840년대의 그 지저분한 뉴욕의 뒷골목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요? 과연 마틴 스콜세지가 아니라면 그 누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병적인 결백증으로 괴로워하는 하워드 휴즈의 이면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이 두사람의 결합은 결국 특수효과만 난무하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의 현실속에서 진지한 드라마가 결합된 완벽하게 새로운 블럭버스터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둡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의 스펙타클을 좋아하며 앞으로 그들이 함께 할 영화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