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인게이지먼트] - 진정한 행복 바이러스는 쥬네 감독이다.

쭈니-1 2009. 12. 8. 18:00

 

 



감독 : 장 삐에르 쥬네
주연 : 오드리 또뚜, 가스파르 울리엘
개봉 : 2005년 3월 11일
관람 : 2005년 3월 9일

너무나도 쟁쟁한 8편의 영화가 일제히 개봉하는 3월 11일. 예매율 1위는 아카데미의 승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우리 영화의 영원한 주류인 코미디 영화 [마파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진정 제가 가장 기대하고 기다렸던 영화는 [인게이지먼트]라는 낯설은 프랑스 영화입니다. 개봉 첫주 예매율에서 하위권에 처져 있는 [인게이지먼트]는 그러나 그리 만만하게 볼만한 영화가 아님에는 분명합니다.
[인게이지먼트]의 홍보사는 이 낯설은 프랑스 영화를 일반 관객들에게 알리기위해 [아멜리에]와 오드리 또뚜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행복 바이러스'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국내에서도 꽤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둔 [아멜리에]는 분명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 차별되는 독특한 상상력과 재미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다빈치 코드]에 톰 행크스와 함께 캐스팅됨으로써 화려하게 헐리우드에 입성한 오드리 또뚜는 [인게이지먼트]의 유일한 스타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인게이지먼트]를 그토록 기대했던 것은 결코 [아멜리에]때문도, 오드리 또뚜 때문도 아닌 바로 장 삐에르 쥬네 감독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멜리에]는 장 삐에르 쥬네 감독의 영화중 3번째로 재미있는 영화에 불과할 정도로 장 삐에르 쥬네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제게 완벽한 재미를 안겨주었습니다.
쥬네 감독의 영화중 제게 최고의 영화는 단연코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입니다. 이 영화를 봤을때가 고등학교 시절이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고전(?)이네요. 당시 저는 별 기대없이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을 봤다가 이 매력적인 영화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었습니다. 과연 그 누가 이처럼 암울한 내용의 영화를 이토록 활기차게 만들수 있을까요? [아멜리에]의 '행복 바이러스'는 이미 쥬네 감독의 데뷔작인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에서부터 퍼지고 있었던겁니다.
쥬네 감독의 영화중 두번째로 좋았던 영화는 [에이리언 4]입니다. 이 영화의 연출을 위해 절친한 친구이자 영화적 동반자인 마크 카로와 결별을 하면서까지 애착을 보였던 쥬네 감독은 [에이리언 4]가 흥행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얻음으로써 헐리우드 입성에는 실패라는 결과만을 안고 프랑스로 되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서 [에이리언 4]는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빗 핀처 등 현재 헐리우드 최고의 감독들이 만들었던 이전작보다 휠씬 좋았습니다. 엔딩에서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에이리언을 처치하는 장면에서는 한줄기 눈물까지 흘리며 영화를 봤었죠.
비록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을 했지만, 4편의 연출작중 [아멜리에]를 포함해서 무려 3편의 영화에 완벽한 영화적 재미를 안겨주었던 쥬네 감독의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 제겐 커다란 흥분이었으며, 기쁨이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이 너무 설레여서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죠. ^^


 


  
쥬네 감독의 매력은 언제나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들지만 그 영화속에 담긴 웃음과 행복은 한결같다는 겁니다. 인육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즐겼던 그 유쾌한 웃음, 너무 독특해서 보는 사람마저 그 독특함에 중독되게 만들었던 아멜리에의 귀여운 사랑 만들기, 그리고 이번엔 1차 세계대전이라는 가장 추악한 시절을 배경으로 했으면서도 마띨드(오드리 또뚜)의 그 씩씩한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인게이지먼트]는 [델리카트슨의 사람들]과 [아멜리에]를 교묘하게 섞은 듯한 영화입니다. [델리카트슨의 사람들]과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영화의 배경이 닮았으며, [아멜리에]와는 한 여자의 진실한 사랑이 닮았습니다.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은 시대를 알수 없는 미래의 어느 마을이 배경입니다. 식량이 턱없이 부족해서 인육을 즐기는 이 무시무시한 마을에 일자리를 위해 서커스의 광대 뤼종(도미니크 피뇽)이 들어섭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마을 사람들과 뤼종간의 포복절도의 코미디로 관객을 안내합니다. [인게이지먼트]의 배경은 결코 [델리카트슨의 사람들]보다 낫다고 할수 없습니다.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은 그래도 먹고 살기위해 사람을 죽이지만 [인게이지먼트]에서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채 강제로 징집되어 서로 죽여야하는 끔찍한 전쟁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내몹니다. 쥬네 감독은 환상적인 화면으로 관객들을 환타지의 세계로 안내했던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전쟁씬을 리얼하게 재현함으로써 처참한 전쟁의 실상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느끼게 합니다. [아멜리에]식의 이쁜 팬시같은 사랑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이 당혹해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띨드의 사랑은 이 추악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관객들에게 행복을 안겨줄 정도로 강력하니까요. 바로 그것이 [아멜리에]와 닮아있습니다. [아멜리에]는 결코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습니다. 독특한 외모의 아멜리에를 비롯해서 그녀가 행동하는 그 주책맞은 사랑을 보면서 정해진 틀속에서 정해진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헐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느꼈었습니다. [인게이지먼트]도 그렇습니다. 마띨드는 전통적인 전쟁 드라마의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울면서 연인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연인인 마네끄(가스파르 울리엘)를 찾아나서고 사랑을 찾기위해는 어떠한 위험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변호사의 동정심을 구하기위해서 필요도 없는 휠체어에 앉아 연약한척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 슬픈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터져나옵니다. 절박한 상황이지만 마네끄가 살아있는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기위해 아주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띨드의 모습을 보며 그 작은 희망이 너무나도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한가지 이 영화를 보기전에 유의할 것은 영화 오프닝 장면을 유심히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중 자해 혐의로 사형이 언도된 5명의 죄수들을 차례로 소개하는 마띨드의 나래이션은 [인게이지먼트]를 즐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제 경우는 그 부분을 얼렁뚱땅 보는 바람에 영화의 재미를 상당부분 놓치고 말았습니다. 분명 마네끄를 제외한 4명의 죄수들의 이름은 프랑스식이라 너무 외우기 어렵고, 관심이 마띨드와 마네끄에 집중되다보니 다른 이들의 사연을 그냥 흘려 들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오프닝씬은 영화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장면임에는 분명합니다.
이것이 [인게이지먼트]의 또다른 재미입니다. 쥬네 감독은 마치 스릴러 영화를 만들듯이 여러 단서들을 영화의 초반부터 흩트려놓고 마띨드가 마네끄를 찾아나설때쯤에 초반의 단서들을 하나둘씩 짜맞춰나갑니다. 하나의 섬세한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춰지는 이 영화의 단서들을 보며 쥬네 감독이 스릴러 영화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들은 단서를 흩트려놓는 것은 잘하지만 그것을 제 자리로 맞추는 일에는 서투릅니다. 최근에 개봉한 [쏘우]와 [숨바꼭질]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쏘우]는 영화 전반에 걸쳐 상당한 단서들을 흩트려 놓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때쯤에 제 자리로 맞춰져 있는 단서는 몇 안됩니다. 커다란 퍼즐판에 퍼즐이 반밖에 안맞춘 형상입니다. 그래서 [쏘우]의 반전은 생뚱맞고 허점 투성이입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해석을 내렸던 [숨바꼭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 역시 꽤 많은 단서들 흩트려놓지만 막상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 단서들이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고 엉뚱한 자리에 틀리게 놓여있음으로써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관객들에게 혼돈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스릴러도 아닌 로맨스 영화인 [인게이지먼트]는 다릅니다. 영화속의 아주 작은 단서들은 마지막 마네끄의 행방을 찾게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차츰 이 단서들이 차례로 제 자리를 찾아갈때쯤 저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렇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퍼즐을 맞춰나가다니...
영화 초반을 놓친 댓가로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제가 놓친 단서들을 다시 생각해내느라 고생을 했지만 그 단서들이 완벽하게 맞춰진 후의 쾌감은 그 어떤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짜릿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초반 제가 놓쳤던 단서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위해서라도...


 


  
처음엔 결코 희망을 잃지않고 사랑을 찾아나선 끝에 기적을 이뤄내는 마띨드의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장 삐에르 쥬네 감독에 대한 이야기만 실컷 해놓았네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장 삐에르 쥬네 감독은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행복을 제게 안겨줬다는 겁니다. 제게 있어서 쥬네 감독이야말로 '행복 바이러스'인 셈이죠.

P.S. 이 영화엔 두명의 스타가 깜짝 출연합니다. 첫번째 깜짝 스타는 마리옹 꼬띠아르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만으로는 기억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프랑스 이름은 너무 어렵거든요.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게된다면 '많이 본 얼굴인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녀는 [택시]에서 스피드광인 택시 운전사 다니엘(사미 나세리)의 여자 친구로 등장했으며, [빅피쉬]로 헐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제가 그녀를 좋아하게된 영화는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인데 이 영화에서 마리옹 끄띠아르는 오드리 또뚜를 능가하는 독특한 매력을 보여줬었죠. [인게이지먼트]에서 그녀는 마띨드와 마찬가지로 자해 혐의로 살인 선고를 받은 애인을 찾아나서는 강인한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그녀의 위험한 매력은 [인게이지먼트]의 또다른 재미중의 하나입니다.
두번째 스타는 조지 포스터입니다. 아마도 [인게이지먼트]를 보신 분이라면 '어디에 조디 포스터가 나왔지?'라고 하실분들도 꽤 있으실 겁니다. 제 경우는 구피가 '조디 포스터다.'라고 영화 도중 알려줬지만 '설마 그냥 닮은 여자겠지'라고 일축했다가 영화가 끝난후 망신을 당했죠. 마치 젊었을때의 모습으로 회춘한 조디 포스터의 모습을 이렇게 기습적으로 보게 되다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그녀는 프랑스말도 잘하더군요. 암튼 헐리우드의 지성 답습니다.^^


 



    

IP Address : 218.39.52.160 
kino1009
nkino에서 쭈니님이 "인게이지먼트" 에 별5개를 주셧길래(저도5개ㅋ) 쭈니님의 블러그를 통해 이곳까지 왔습니다..^^;
이영화 참 잘만들어졌는데 많은 분들이 못 알아봐서 섭섭하던 차에 님의 글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내요^^
저도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암튼 구경 잘하고 갑니다!!
 2005/03/16   
쭈니 감사합니다. 이 영화는 분명 별다섯을 주고도 남을만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개봉첫주 흥행결과가 거의 참패수준이군요. 조금이라도 이 영화가 많은 분들께 알려져서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  200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