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플로렝 에밀리오 시리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케빈 폴락, 벤 포스터
개봉 : 2005년 3월 18일
관람 : 2005년 3월 14일
오랜만에 개봉되는 액션 영화인 [호스티지]는 명백히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입니다. [다이하드]와 [아마겟돈]으로 한때 독보적인 액션 영웅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브루스 윌리스. 그러나 어느덧 50살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로 인해 그는 더이상 날렵한 액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그의 최근작들은 제겐 너무나도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밴디트], [하트의 전쟁], [태양의 눈물]등 [나인 야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흥행 실패작의 멍에를 써야만 했던 브루스 윌리스. 급기야 그의 최근작인 [나인 야드 2]는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개봉했다가 어느덧 조용히 사라져 버렸네요.
그러한 브루스 윌리스의 실망스러운 행보 때문에 저는 [호스티지]에 대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요즘들어 너무 축 쳐진 영화들을 많이 본 것같아서 오랜만에 화끈한 액션 영화로 기분 전환이나하자는 마음가짐으로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과연 이 영화가 화끈한 액션 영화일런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저는 점점 영화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제가 기대했던 화끈한 액션 영화는 아닙니다. [다이하드]때처럼 일당백으로 활약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듬직한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단지 가족을 인질로 잡히고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모습만이 자주 눈에 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화끈한 액션은 없지만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잘 유지해주는 영화이며, 특히 후반부에 가서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무서운 장면들이 느닷없이 펼쳐져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도 부리니까요.
[네스트]로 기름끼를 쫙 뺀 담백한 프랑스 액션 영화를 선보였던 플로렝 에밀리오 시리 감독은 데뷔작의 성공이후 헐리우드로 진출해서도 여전히 담백한 액션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호스티지]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최고의 액션 영화는 아니지만 최선의 영화적인 재미를 이끌어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암튼 오랜만에 브루스 윌리스가 이름값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
[호스티지]의 시작은 불안했습니다. 어느새 액션 영화의 공식이 되어버린 주인공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시작하는 오프닝씬을 이 영화 역시 너무나도 뻔하게 적용시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인질들을 죽인 제프(브루스 윌리스)가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LA의 인질협상가라는 직업을 버리고 시골 마을의 평범한 경관이 된다는 설정은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눈앞에 휜하게 펼쳐지는 꼴입니다. 저는 이젠 제프가 과거의 죄책감을 떨치고 다시 영웅이 되는 길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제 예상이 맞다고 맞장구라도 치는 듯이 이 영화는 그 이후에도 전형적으로만 흘러갑니다. 요새와도 같은 주택을 점거한 10대 소년들의 인질극, 그리고 정체모를 괴한들에게 납치된 제프의 가족들. 과거의 상처때문에 괴로워하는 제프는 모든 아픔을 떨쳐버리고 홀홀단신으로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며 다시 액션 영웅적인 면모를 갖추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분명 [호스티지]는 영화의 전반부만으로는 그렇게 흘러갈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브루스 윌리스에게 영웅의 모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이 괴한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때 제프가 처음 보인 반응은 바로 울음이었습니다. 17년전 [다이하드]에서 아내가 테러리스트들의 인질이 되었을때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냉정하게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아내를 구해냈던 브루스 윌리스가 이번엔 나약한 눈물을 흘리며 허둥거립니다. 괴한들이 제프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요구한 DVD를 구하기 위해 제프는 용감하게 요새와 같은 대저택에 잠입하여 직접 DVD도 가져오고 인질들의 생명도 구하기는 커녕 어렵사리 도망친 꼬마 아이에게 DVD를 찾으라는 위험천만한 짓을 시키며 자신은 저택의 밖에서 안절부절하며 10대 인질범들을 설득하기만 합니다.
플로렝 에밀리오 시리 감독은 [호스티지]의 연출을 하며 가장 먼저 해낸 일이 바로 브루스 윌리스라는 헐리우드적인 액션 스타에게 액션 영웅적인 면모를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화끈한 액션 영화는 되지 못했지만 최소한 결말이 눈에 보이는 뻔한 액션 영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브루스 윌리스도 어울리지 않던 코미디 연기나, 이젠 힘겨워보이는 액션 영웅 연기에서 벗어나 인질범에게 눈물을 보일만큼 나약하지만 결코 가족들을 포기하지 않는 평범하지만 강인한 한 가정의 가장 연기를 해냄으로써 제게 깊은 인상을 안겨줬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브루스 윌리스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악당들도 처치하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솔직히 할말은 없습니다. 그 정도의 사건 해결도 없이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될수는 없는 법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브루스 윌리스의 활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대저택에 잡힌 인질들과 자신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은 괴한들의 요구사이에서 당황하던 제프가 처음으로 행한 행동은 인질범들을 설득하여 부상을 당한 저택의 주인 스미스(케빈 폴락)를 밖으로 데려나오는 일입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부상자를 최우선적으로 구출하고 그 다음엔 노약자들과 어린이, 여자들을 구출하는 것이 순서죠. 그런데 스미스를 밖으로 데려나온 제프는 그를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하지않고 스미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서 괴한들이 요구하는 DVD의 정체를 캐내려합니다. 스미스의 묵숨보다는 가족의 안위가 더 중요했던 겁니다. 액션 영웅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행동이지만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제프가 여느 액션 영웅과 달랐던 이유는 많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질범들에게 겨우 도망친 어린 꼬마 아이를 감언이설로 꼬셔 DVD를 찾게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은 물론이고, 10대 인질범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얍삽함마저 보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하이라이트는 10대 인질범중의 한명인 마스(벤 포스터)가 저택에 불을 지른후 제프가 저택에 침입하는 장면입니다. 입에 피를 흘리며 불길속을 헤치고 유유히 걸어오는 마스의 그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와 비교해서 제프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해보이던지... 괴한들의 총에 맞고 순순히 DVD를 건네주는 제프의 약한 모습과 마치 슬래셔 무비의 초인적인 살인마를 보는 듯한 마스의 여유만만한 습격을 비교해보면 제가 브루스 윌리스에게 이전 영화의 영웅다운 면모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겨우 10대 인질범에게 압도당하는 주인공의 카리스마라니...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재미있으며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예측할수 없기에 장면 하나하나에 스릴을 맛보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 영화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액션 영화인 이유입니다. 이제 브루스 윌리스의 불후의 히트작인 [다이하드]의 네번째 이야기 [다이하드 4]가 조만간 개봉된다니 그땐 최고이면서 최선의 액션 영화를 맛볼 수 있겠죠.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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