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여자, 정혜] - 답답함도 매력이 될수있다면...

쭈니-1 2009. 12. 8. 17:59

 

 



감독 : 이윤기
주연 : 김지수, 황정민
개봉 : 2005년 3월 10일
관람 : 2005년 3월 7일

작년 가을쯤 [여자, 정혜]라는 영화를 처음 알았었습니다. 아마도 종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신문기사였던것 같습니다. 암튼 그때의 첫 느낌은 '이런 영화를 돈주고 보는 사람이 있을까?'였습니다. 제목도 너무 평범하고, 스토리 라인도 거의 굴곡이 없어 보이며, 스타급 배우라고는 TV에서 활약했던 김지수뿐이니...
그리고 몇달이 흘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 정혜]는 개봉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해외 영화제의 수상 소식만이 들려왔습니다. 그때부터 슬슬 이 영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어떤 영화이길래 이토록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아내는가?' 그 순간 평범해 보이던 영화의 제목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 멋진 제목처럼 보였고, 거의 굴곡이 없는 스토리 라인은 코미디 영화 일색인 우리 영화에 신선한 충격을 줄만한 색다른 스토리 라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제가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 배우였던 김지수는 또 왜그리 매력적으로 보이던지... ^^;
그러던중 어느 신문에서 김지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녀는 [여자, 정혜]를 한마디로 '답답한 영화'라고 표현하더군요. 영화를 찍는내내 정혜라는 캐릭터에 얽매여 정말로 답답했었다고... 기술 시사회때 딱 한번 이 영화를 보고 그 이후엔 도망다녔다고...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주연을 맡은 배우가 스스로 그것도 너무나도 당당하게 '답답한 영화'라는 평가를 내리는 걸까요? 분명 통상적인 의미에서 '답답한 영화'는 곧 '재미없는 영화'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척이나 재미가 없다는 뜻인데, 영화를 홍보해야할 배우의 입에서 그런 의외의 평가를 듣고나니 당혹스러워 지더군요.
암튼 이런 저런 복잡한 심정으로 [여자, 정혜]의 시사회장에 들어갔습니다. '재미없는 영화'라는 첫인상에서부터 시작하여, 해외 영화제를 수상한 '작품성있는 매력적인 영화'를 거쳐, '답답한 영화'라는 김지수의 말이 계속 제 귓가에서 맴돕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드림 시네마의 그 딱딱한 의자에 앉으면서도 제 머릿속에는 [여자, 정혜]에 대한 궁금증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시작은 제 첫인상과 맞물립니다. 도저히 영화적인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편취급소 여직원 정혜(김지수)의 평범한...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을 조용히 잡아낸 이 영화는 마치 '오늘은 아무일도 없었다'라는 한줄로 쓰여진 일기장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간혹 정혜의 우편취급소 동료로 나오는 김미성이 예기치못한 웃음을 안겨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슬슬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영화가 중간으로 흐를수록 김지수가 이야기한 '답답한 영화'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답답합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서투른 정혜라는 캐릭터는 남자인 제가 보기엔 답답함 그 자체입니다. 어렸을적 충격적인 사건을 가슴속에 묻어둔채 그냥 그렇게 답답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정혜. 그녀의 좁고 지나치게 조용한 아파트 광경과 그러한 아파트의 풍경을 깨는 자명종 시계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오히려 영화를 보는 제 마음에 답답함이라는 지울수없는 상처를 냅니다.
영화가 중반이 되면 정혜는 그 답답한 일상을 깨고 한 남자(황정민)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정혜와 남자의 사랑 역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잠이 들어서 정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어색하게 웃는 이 답답한 남자를 보며 어쩜 저렇게 끼리끼리 만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답답한 영화'... 김지수가 인터뷰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이 영화를 이렇게 정의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 영화에서의 답답함은 마치 영화적인 전략처럼 보입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답답함을 내세우는 이 영화는 '당신을 닮은 그녀 이야기'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움으로써 '당신의 일상도 이렇게 답답하지 않느냐?'며 관객에게 묻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이게 뭐야'라는 투덜거림으로 이윤기 감독의 물음에 강하게 부인했지만 그래도 영화가 끝난후 가슴 한켠에 영화에 대한 약간의 떨림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영화의 일상이 나의 지루한 일상과 전혀 동떨어지지는 않았나봅니다. 암튼 답답함을 영화적인 전략으로 삼은 이윤기 감독의 그 뚝심은 대단하다고 안할수 없네요.


 



물론 이 영화에도 클라이막스는 있습니다. 정혜가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자신의 과거 상처의 원흉인 고모부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한순간 이 영화가 답답함을 벗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관객들에게 안겨주기도 합니다. 비록 그런 관객의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장면도 답답함으로 마무리짓지만 확실한 것은 그렇게 조용하게 절 긴장시키는 장면은 극히 드물었다는 겁니다. 뭔가 일어날듯한 그 침묵. 김지수의 그 작은 떨림 하나하나에 영화를 보는 제가 숨을 쉴수 없을 정도로 긴장을 하며 정혜의 선택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의 긴장감... 아마 평생 잊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일단 이윤기 감독은 상업영화와는 전혀 동떨어진 영화를 만들었음에 분명합니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LJ필름의 이승재 대표는 이윤기 감독을 김기덕 감독처럼 해외 영화제에서 브랜드화 할 수 있다고 공언했었습니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우리 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최근 행보를 본다면 이승재 대표의 이런 야심찬 공언은 분명 우리 영화에 대단한 희망인것 같습니다.
분명 우리 영화는 최근들어 상당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관객의 마음을 잡아내 관객에게 영화적인 재미를 주는 상업영화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처럼 관객에게는 불친절하지만 작가주의적인 행보를 통해 세계 영화제와 평론가들에게 주목을 받는 영화도 필요합니다. 이윤기 감독이 제 2의 김기덕 감독이 될지는 그의 두번째 영화 [러브 토크]를 본 후 판단해야할것 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자, 정혜]는 확실히 관객이 좋아할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세계 영화제에는 통하고 있는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김기덕 감독보다 관객에게 친절하다면 저도 가끔 이런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볼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여자, 정혜]는 영화를 보는내내 답답함을 제게 안겨줬지만 영화를 본 후에는 약간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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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지선
지루하지만 저는 왠지 이런 영화들이 좋더라구요..
중간에 졸다가 다시 봐야 했지만요..
 2007/04/12   
쭈니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극장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졸았음직한... ^^;
 2007/05/10   
바이올렛
그 답답함은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작가가 바라는 답답함이었을 거에요, 엔딩을 위한...

정혜야, 답답해라, 내가 널 구출해줄게...
 2007/07/10   
쭈니 하지만 결국 그 답답함에서 구출되지 않았잖아요?
제가 기억하는 [여자, 정혜]는 답답함으로 그냥 끝을 내버린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2007/07/10   
바이올렛
본지 좀 돼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황정민...을 통해서 구출작전이 시작되었던것 같은데...

거의 마지막 즈음에 황정민이 오해를 풀어주잖아요.

맞어, 황정민이 있었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정혜라는 여자, 용감하기도 했군요.ㅎㅎ
여자, 정혜... 참....

곱씹어 보니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
 2007/07/11   
쭈니 그랬던것 같기도 하고...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
 2007/07/12   
쥴리
조용히 토요일 오후에 DVD로 봤는데....저는 괜찮던데요...여자라서 그런지.....정혜에 몰입되어서 정혜를 쫓아다니며 봤던 영화예요^^ 남들은 지루하다 하지만 왠지 저는 보고나서 계속 남는 영화네요...  2008/05/15   
쭈니 여성분들이라면 공감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그랬군요. ^^  2008/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