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 힐러리 스웽크, 모건 프리먼
개봉 : 2005년 3월 10일
관람 : 2005년 2월 22일
2005년 2월 22일. 여느날과 마찬가로 출근을 하기위해 오전 7시 정각에 눈을 떴습니다. 씻고, 면도하고, 옷을 입고, 생식과 우유한잔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그날의 시작은 다른날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방을 챙겨들고 현관문을 나섰을때 저는 멈칫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에선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던겁니다. 겨울내내 볼 수 없었던 눈이었는데, 2월의 막바지에 이렇게 보게될줄이야...
회사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았지만 좀처럼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창밖 세상을 하얗게 색칠하고 있는 눈을 멍하니 바라보며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왠지 마음이 무겁고, 이유없이 우울하고, 괜히 짜증이 났었습니다. 저는 때늦은 눈 때문일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내게 이런 감수성이 남아있던가?' 저는 제 자신이 신기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오후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창밖엔 한동안 멈췄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저는 인터넷 서핑을 하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네이버 카페에서 이상한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게시물엔 영화배우 이은주의 사진과 함께 그녀가 자살했다는 글이 쓰여있었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장난이 심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이런 무책임한 장난을 하다니... 댓글로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습니다. 상대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사실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던겁니다.
다시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네이버의 뉴스 페이지에 '이은주 자살'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클릭을 해보았지만 서버가 다운이 되었는지 기사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오보일꺼야', '말도 안돼', '자살을 시도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겠지'... 기사는 계속 열리지 않았고, 저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설마...'
회사의 동료들이 '영화인의 입장에서(동료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저를 영화인이라며 놀립니다.) 이은주의 자살에 대해 한마디 해보라'며 농담을 걸어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다른 여배우들이 예쁜 팬시같은 영화에서 자신의 재능을 썩히고 있을때 이은주만은 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영화가 때로는 흥행에 실패하긴 했지만 그녀의 연기만은 언제나 빛을 발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죽음은 제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입니다. 단지 한명의 스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영화를 이끌어나갈 한명의 배우가 죽었다고 생각되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2005년 2월 22일. 그날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시사회가 있는 날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그렇게도 좋아하지만 오늘만큼은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잔의 술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였던 이은주를 회상하며 맘껏 슬픔에 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겐 혼자 슬퍼할 공간조차 없습니다. 기혼인 30대의 몸으로 여배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제겐 사치였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기로 결심을 한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 생애 단한번뿐인 백만불짜리 눈물'이라는 이 영화의 포스터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눈물이었고, 어두운 극장이라는 공간과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슬픈 영화는 제게 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구피는 왠지 뽀루뚱해보입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나봅니다. 하지만 지금 제겐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습니다. 다시는 이은주의 해맑은 미소와 멋진 연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만이 마음속에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시작했습니다.
늙은 복싱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와 30대의 가난한 여자복서 매기(힐러리 스웽크)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죽음을 때로는 박진감 넘치게, 때로는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골든 글로브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등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답게 영화를 보는내내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버드]와 [추악한 사냥꾼]으로 세계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용서받지 못한 자]로 아카데미마저 거머쥔 그는 헐리우드에서 살아있는 거장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감독중의 한명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겐 감독으로써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닌 배우로써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더 익숙했고 [용사받지 못한 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앱솔루트 파워], [사선에서]등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그의 연기는 제겐 그리 감명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분명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는 감독으로써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제게 확실히 인식시켜준 영화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그는 주연배우까지 겸했지만 영화의 시선이 그가 연기한 프랭키가 아닌 비운의 여자복서 매기에게 더 기울어있음으로써 감독으로써의 그의 재능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입니다.
프랭키는 유능한 복싱 트레이너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선수에 대한 애정때문에 선수들을 타이틀전에 내보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는 절친한 친구이자 능력있는 복서였던 에디(모건 프리먼)가 무리한 타이틀전때문에 경기도중 한쪽 시력을 잃고 패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기에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선수들에게 위험한 모험을 차마 할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한 그에게 매기가 찾아옵니다. 여자복서를 안키운다고 프랭키는 딱잘라 말하지만 매기는 끊질기게 프랭키의 체육관에서 혼자 묵묵히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프랭키는 매기에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줍니다. 이렇듯 영화의 초반은 프랭키와 매기에 대한 이야기가 꽤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매기를 받아들이고 매기의 복싱경기가 진행되는 영화의 중반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액션배우출신이라는 점이 새삼느껴질 정도로 박진감넘칩니다. 갸날픈 여성의 몸에서 품어져나오는 다이나믹한 액션은 영화를 보며 마치 내 자신이 복싱 경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움찔거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후반입니다. 세계 챔피언과의 타이틀전도중 상대의 반칙으로인하여 중상을 입는 매기. 전신마비가 되어 병원의 침대에 몸을 맡겨야하는 그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봐야하는 프랭키. 프랭키는 자신이 매기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자책하지만 오히려 매기는 프랭키에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식당종업원에 불과했을거라고... 당신덕분에 나는 꿈을 이뤘고,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된것에 아무런 후회가 없다고...
요즘 저는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책에는 세상을 구경하고 싶은 욕망때문에 양을 치는 산티아고라는 청년이 나옵니다. 그가 양을 치는 일에 길들여져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고 살아갈때 현자가 나타나 자아의 신화를 이루라고 말합니다. 청년은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위해 자기 자신이 길들여져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낯선 새로운 세상으로 나서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어렸을때부터 자아의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었던 그 모든 것들, 그것이 자아의 신화죠.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직장을 다니게되고 그 직장에 길들여지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아의 신화는 그저 이룰수없는 꿈으로 평생 간직한채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매기는 그러한 두려움을 깨고 식당종업원으로 길들여진 자신을 버리고 복서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뛰어듭니다. 그녀는 최소한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가 참혹하다 할지라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을 것이며, 그 선택을 도와준 프랭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매기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온 몸이 마비가 되어 침대에 몸을 의지하며 살아야하고, 스스로 숨쉬는 것조차 불가능한 매기는 몸이 썩어들어가 두 다리마저 잃게 됩니다. 게다가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재산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영화는 점점 매기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매기는 프랭키에게 죽게 도와달라고 애원합니다.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간직하고 편안하게 죽게 해달라고... 이렇게 의미없는 목숨으로 인하여 자신이 힘겹게 이룬 소중함들을 잃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영화는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논란에 휩싸입니다.
매기는 죽기를 원하고, 프랭키 역시 그녀의 자살을 도와줍니다. 이렇듯 이 영화를 통해 안락사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보수 사회단체와 영화평론가, 언론 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거장이라는 칭송이 부끄럽지않게 용감하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설파합니다. 자신의 영화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해버린 거죠.
솔직하게 저는 아직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서 진지한 생각을 해보지않았습니다. 게다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극단적으로 미화했기에 이 영화만으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보장되어야한다고 생각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른 영화를 봤을때보다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22일 하루종일 절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이은주의 자살과 함께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의 죽음은 묘하게 맞물립니다.
과연 이은주도 매기처럼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요? 자신의 남은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매기에겐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더이상 아무것도 이룰수가 없었지만, 이은주에겐 아직 영화가 있고,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이 있으며,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영화속 매기의 자살과 현실속 이은주의 자살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지만 이은주의 죽음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저로써는 밤새 이런 무의미한 의문만이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매기의 자살 이전에 매기의 가족들을 돈에만 환장한 쓰레기같은 인간들로 그림으로써 매기와 그녀의 가족들을 완전히 갈라놓습니다. 하지만 진정 매기를 아끼고 사랑했던 프랭키의 아픔은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까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를 자신의 손으로 떠나보내야했던 프랭키의 아픔...
'전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을 잃은 것이 진정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이기적입니다. 조금이라도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려주었다면 그렇게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텐데... 당신을 잃고 슬퍼할 사람들의 아픔을 아주 조금만이라도 헤아려 주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