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뷰티풀 마인드>- 영웅이 되고 싶었던 천재

쭈니-1 2009. 12. 8. 14:13

 



감독 : 론 하워드
주연 :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에드 해리스
개봉 : 2002년 2월 22일

어렸을때 친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꿈속에서 머리가 엄청나게 큰 사람을 보게되면 그 사람은 천재라고...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어린 마음에 저는 그 얘길 믿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믿음은 머리 큰 난쟁이가 절 쫓아오는 그런 꿈을 꾸게되며 확신으로 다가왔죠.
"그래! 난 천재인지도 몰라!!!" ^^;
이러한 나의 확신은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 되었죠. 그때 제가 들었던 소리는 AB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 소리였습니다. 혈액형이 AB형이었던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자신이 바보는 아닌것 같았기에 그럼 난 천재라고 믿었었습니다. 사실 난 천재이지만 아직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제는 그런 말따위는 믿지도 않고 제가 아주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지만 어렸을땐 내가 천재라는 상상만으로 무수한 상상속의 모험담을 만들 수 있었죠.
그리고 여기에 제가 어렸을때 그토록 상상해왔던 천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뷰티풀 마인드>죠.
<뷰티풀 마인드>는 존 내쉬라는 미국의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 영화를 한번이라도 접해본 분들이라면 존 내쉬가 어떤 인물인지 지겹도록 들었을테니 저는 존 내쉬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죠.
하긴 제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존 내쉬라는 뛰어난 수학자의 일생을 그렸다는 이유는 분명 아닙니다. 솔직히 전 존 내쉬라는 인물에게 관심조차 없고, 그가 썼다는 신경제학이 무엇인지 영화를 보고 난후에도 전혀 모르겠으며 별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올해의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반지의 제왕>에 맞설 강력한 후보이며, 러셀 크로우라는 배우가 예전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연기변신을 했다는 지극히 헐리우드 키드적인 호기심 덕분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이 영화가 실존 인물의 전기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스릴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전기 영화에 스릴러를 끼워 맞출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제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제일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 차근 차근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뷰티풀 마인드>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전기 영화이면서도 스릴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매우 특이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존 내쉬는 그야말로 수학의 천재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천재들이 가지고 있는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죠. 대학 동기들과도 잘 어울릴수 없고 기숙사에 틀어박혀 유리창에 수학공식을 쓰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찰스라는 괴짜 친구가 생깁니다. 찰스는 내쉬가 힘들어할때 진정한 친구로써 그의 곁에 있어 줍니다. 대학에 졸업한 후 그는 프린스턴 교수로 승승장구하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윌리암 파처라는 국가 고위 간부는 내쉬에게 소련의 암호 해독을 부탁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프린스턴 교수와 미국의 비밀 요원으로 아슬아슬한 삶을 살던 그에게도 운명적인 사랑은 옵니다. 그녀가 바로 그의 제자였던 알리사입니다. 내쉬는 알리사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지만 소련 스파이에게 쫓기는 불안함 속에 결국 암흑속으로 빠집니다.
이런 이 영화에대해 이야기하자고 해놓고선 이 영화의 줄거리만 나열한 꼴이 되었군요.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줄거리를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할것 같아서...
암튼 초반부까지의 내용을 얼핏 보면 이 영화는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무슨 냉전시대의 스파이 영화같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부에 들어서면 이 영화는 하나의 반전을 맞이합니다. 바로 내쉬의 스파이 생활이 실 생활이 아닌 그의 상상속에서 벌어졌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과의사가 내쉬를 치료하며 그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를 설명해도 관객의 입장으로써 잘 믿어지지 않죠. 그것은 내쉬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인물들인 룸메이트 찰스와 그의 어린 조카, 그리고 국가 고위 간부 인 윌리암 파처라는 캐릭터가 너무나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속 반전의 반전에 익숙한 저로써는 영화속의 설정을 그리 쉽게 믿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존 내쉬가 실생활과 허구의 생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제게도 내쉬의 실생활과 허구의 생활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물론 영화의 후반부에 들어서며 이러한 경계는 확실해지고 영화도 존 내쉬가 자신의 정신적인 병을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 영화의 중반부까지 이어지던 이 매력적인 스릴러 요소는 후반부에 들어서며 완전히 없어지고 아주 평범한 전기 영화로써의 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도 새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죠.


 

 

 


자! 이제 이 영화에 대해서 다르게 이야기해보죠.
제가 어렸을때 난 천재라고 생각하며 제가 겪게되는 수많은 모험담들을 상상했었다는 이야기는 위에서 이미 했었죠? 어렸을때 저는 상상력이 무지 풍부했었습니다. 내성적이어서 친구들도 없었고 그냥 집안에 틀어박혀 공책에 그림그리고 상상하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였죠. 그렇다고 제가 존 내쉬처럼 천재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마 저는 실생활과 상상속의 생활을 구분못하고 존 내쉬처럼 정신병에 시달렸을겁니다. 하지만 저는 말짱한걸요. ^^;
제가 이 영화를 보며 흥미로웠던 것은 존 내쉬의 상상속의 생활이 제가 어렸을때 상상했던 천재의 삶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사선을 넘마들며 나의 천재성을 발휘하고 목숨과도 바꿀수 있는 진정한 친구와 위험한 사랑... (어린나이에 별걸 다 상상했었다고요? 제가 조금 조숙했거든요. ^^) 이렇게 제가 상상했던 것을 나열해보니 제가 원했던 것은 천재가 아니고 영웅이었던 것 같군요. 이 영화속의 존 내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존 내쉬라는 인물에게 느낀것이라면 그의 천재성보다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천재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조금 엉뚱한 이야기같긴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보죠.

 

 


존 내쉬가 한참 활약하던 시기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가 한창이던 그런 시대입니다. 이 영화속의 존 내쉬의 상상속의 생활이 실제였다면 아마도 존 내쉬의 그러한 상상은 냉전이라는 시대와도 맞물려있는 듯 합니다.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존 내쉬는 어쩌면 적극적이고 용감한 영웅이 되고 싶었을테죠. 친구조차 없는 그는 일단 찰스라는 진정한 친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는 냉전 시대의 최대 적인 소련의 암호를 추적하는 영웅으로써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낸것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에게 부족한 면들을 상상속에 채워 넣은 것입니다. 그는 천재이기는 했지만 소심한 인물이었기에 자기 자신을 적극적인 스파이로 형상화함으로써 그 허구의 삶을 즐겼고 결국엔 허구의 삶들이 실제의 삶을 위협하는 지경에 처한 것입니다.
러셀 크로우라는 배우가 존 내쉬역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러셀 크로우하면 강한 남성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프루트 오브 라이프>에서의 그의 모습을 보세요. 평범한 협상가이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적지에 뛰어들어 갑자기 람보로 변신했던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강함이 절로 느껴지더군요. 최근작인 <글래디에이터>에서의 그 카리스마는... 아직도 잊혀지지않는 군요.
그러한 그가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처럼 구부정하게 걸으며 자기 자신의 내면속에 빠져있는 그런 소심한 천재의 역을 맡았습니다. 저는 영화의 초반엔 이러한 러셀 크로우의 모습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 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내쉬가 이중 생활을 시작하며 저는 내쉬의 모습에서 영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러셀 크로우를 캐스팅하며 관객인 저에게도 내쉬의 실생활과 허구의 생활을 구분할 수 없게끔 함정을 판거죠. 그와 동시에 영웅의 이미지가 강한 러셀 크로우에게 천재의 역을 맡김으로써 존 내쉬에게 천재의 모습과 영웅의 모습을 같이 뽑아낸것입니다. 아마 러셀 크로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콜래트럴 데미지>에서 평범한 소방관이 테러로 인하여 가족이 죽자 돌연 영웅으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미국 관객들은 그러한 영화에 환호하고요... 아마 미국만큼 영웅에 대한 동경심이 많은 나라도 드물겁니다. (<슈퍼맨>, <배트맨>, 이젠 <스파이더맨>까지...) 그러한 그들의 심리는 어쩌면 천재보다도 영웅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천재였던 내쉬조차 영웅이 되고 싶어 정신병에 시달렸는지도...
너무 엉뚱한 이야기인가요? ^^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것만 보게 되는..
해킹 공부를 하는 사람이면 모든 현상이 해킹처럼 보이고
게임만 미치도록 한다면 길가다가도 게임처럼 느껴질수 있다는

아주 재미있던 영화 ^^
 2006/05/08   

쭈니
정말 공감이 되는 군요. ^^  2006/05/08    

후반부까지 저조차도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쭈니님도 마찬가지였군요.. ㅎㅎ
솔직히 반전에 하도 길들여져서 그런가.. 정신병원에서도 아마 소련의 음모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2007/04/21   

쭈니
소련의 음모... ^^
그렇게 흘러갔더라도 재미있겠네요. ^^
 2007/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