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3년 영화이야기

[영어완전정복] - 특이함이라는 미덕을 갖춘 로맨틱 코미디.

쭈니-1 2009. 12. 8. 16:27

 



감독 : 김성수
주연 : 이나영, 장혁
개봉 : 2003년 11월 5일
관람 : 2003년 11월 19일


저희 집의 단골 손님이라면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는 동안 감회가 새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영화게시판' 76번째 글 참고). 그 동안 저와의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아무리 보려고 몸부림처도 볼 수 없었던 영화 [영어완전정복]. 오랜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인연이 닿지 않는 영화는 아무리 보려고 애를 써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저는 아쉽지만 일찌감치 [영어완전정복]을 극장에서 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평일에 데이트를 신청하는 구피... 이제 다시 회사일을 시작하기 위해 책을 사려고 갑자기 영등포로 데이트를 신청한줄로만 알고 약속장소에 나갔던 저는 그녀의 한마디에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습니다.
"[영어완전정복] 6시 20분표 있더라."
허걱! 이 말은 [영어완전정복]을 보러 가자는 말??? 그 동안 이나영에 대한 나의 애정을 시기하여 [영어완전정복]을 못보게 하는데 앞장섰던 그녀가 왜 갑자기 맘이 변한건지... 아마도 '영화게시판'에 써놓은 저의 구구절절한 안타까운 사연을 읽고 감동(?)을 했기 때문은 아닌지... ^^;
암튼 구피의 배려 덕분에 이미 극장에서 보기를 포기한 [영어완전정복]을 극장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답니다. 아무리 깨기어려운 징크스라도 지극한 사랑이 있다면 이렇게 쉽게 깰수 있다는 것을... 푸하하하~ (윽! 닭살!!! ^^;)


 



[영어완전정복]은 정말로 특이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등 선이 굵은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액션 영화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던 김성수 감독이 느닷없이 소녀 감성이 풍기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도전한 것도 특이했고, CF의 요정자리를 굳게 지키던 어여쁜 이나영이 한없이 망가진 모습으로 코믹 연기를 하는 것도 특이했으며,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에다가 '영어'라는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음직한 콤플렉스를 끌고 들어온 것도 특이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홈페이지에 펼쳐진 그 특이한 플래쉬 자료들까지... 이 영화는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에다가 온갖 특이함을 버무려서 결코 범상치않은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영화의 특이함은 일단 김성수 감독의 연출력에서부터 나옵니다. 단편 영화 [비명도시]로 주목을 받은 후 이병헌과, 김은정 주연의 [런 어웨이]로 장편 영화 데뷰를 치른 이 걸출한 감독은 [런 어웨이]의 실패 이후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만남으로써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를 연달아 연출하며 한국적 액션 영화의 중요한 획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무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미지근한 흥행 성적을 보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 겠다는 매너리즘을 깨고 싶었던 감독 스스로의 욕심 때문인지, 그는 갑자기 자신이 연출했던 영화들과 눈꼽만치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는 코미디 [영어완전정복]을 관객앞에 내놓았습니다.
솔직히 김성수 감독이 코미디 영화를 만든다고 그랬을때 저는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영화를 좋아했던 저는 김성수 감독의 차기작으로 [무사]처럼 대작 액션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코미디 영화의 연출 소식을 접한 겁니다. '코미디 영화라면 그가 만들지 않더라도 다른 감독이 한도 끝도 없이 만들고 있는데 김성수 감독까지 굳이 코미디 영화 행렬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가 바로 저의 실망 이유였습니다.  
만약 [영어완전정복]이 다른 로맨틱 코미디처럼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며 웃음을 유발시키고, 예쁜 화면을 통해 로맨틱을 완성했다면 제 실망은 더욱 커졌을 겁니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은 그런 평범함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영화속에서 문수(장혁)에게 '쉬-이즈-노르말(She is normal : 그녀는 평범하다)'이라는 말을 듣고 격분하는 영주(이나영)처럼 [영어완전정복]은 평범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겁니다. 김성수 감독은 온갖 만화적 상상력과 번뜩이는 유머로 가득 넘치는 특이한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 냈으며 저는 김성수 감독의 또다른 면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남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외칠만 합니다.


 



김성수 감독이 특이함이라는 영화의 틀을 만들어 줬다면 그 틀속에서 이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완성한 사람은 바로 이나영입니다. [예스터 데이]의 김선아와 맞먹는 [천사몽]의 어이없는 실패 이후 [후아유]로 멜로 영화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그녀는 CF 요정으로서의 위치를 지키며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이라는 캐릭터로 연기 내공을 다지더니 결국 [영어완전정복]에서 대형 사고를 친 겁니다.
만약 이나영이 없는 영주라는 캐릭터는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 엉뚱함과 바보스러움에 관객들은 영주라는 캐릭터를 도저히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무리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주인공이 관객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거의 사형선고와도 같습니다. 여주인공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로맨틱 코미디를 즐길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김성수 감독의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라 할지라도 그것은 안될 말이죠.
하지만 이나영이 든든하게 영화속에 버텨주며 영주라는 특이한 캐릭터를 완성해주었기에 [영어완전정복]은 진정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로 우뚝 설수 있었습니다. 그 촌스러운 헤어 스타일과 패션 감각, 별난 성격에다가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꼴통 근성까지 갖춘 그녀는 [아멜리에]의 오도리 토투을 넘어설 정도로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푼수에 공주병에 노르말하기까지한 영주라는 캐릭터는 [영어완전정복]이 이루어놓은 가장 성공적인 특이함의 성과이며 이나영이라는 배우의 내공의 힘이 있었기에 그것은 가능했던 겁니다.
물론 장혁이 능글맞은 연기로 이나영의 뒤를 받쳐주었고 다른 조연 배우들까지도 모나지 않는 연기로 이나영의 특이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기에 이 영화에서의 이나영의 특이한 연기는 가능했겠지만 암튼 [영어완전정복]을 통해서 이나영을 진정한 배우로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영어완전정복]의 특이함은 충분히 그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적 액션 영화 감독의 소녀적인 취향이 물씬 풍기는 특이한 연출에서부터, CF 요정의 한없는 망가짐으로 이루어 놓은 특이한 캐릭터를 완성한 이 영화는 스토리 전개에서조차 노르말을 거부합니다. 분명 한명의 여자와 남자가 만나고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사랑을 느끼고 잠깐의 오해로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결국 로맨틱하고 해피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방식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답습하는 듯이 보이는 이 영화는 하지만 '영어'라는 소재 하나로 스토리의 특이함도 이루어 놓고 맙니다.
요즘은 말을 배울때쯤이면 영어를 가르쳐서 어린 아이들도 왠만한 영어는 술술하는 세상이지만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서 A, B, C, D를 배웠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본 영어 시험이라는 것이 A를 쓰는 순서등을 묻는 그야말로 어이없는 문제들이었기에 저는 100점 만점을 받고 '영어 그거 아무것도 아니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아이 엠 어 보이', '유 아러 걸'등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저는 곧바로 영어를 포기하고 말았고 이렇게 영어가 만연하는 시대가 올줄도 모르고 '영어 그 따위 몰라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없어'를 외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 당당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로 바뀌었고, 영어 학원에 등록하고, 길거리에서 왠 여자한테 붙잡혀 고가의 영어 테잎 세트를 구입하면서까지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한번 빠진 콤플렉스는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김성수 감독은 바로 이러한 평범함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한 겁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영어 학원에 등록한 갖가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는 영어에 미친 사회를 은근히 풍자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어를 배척하는 비현실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습니다. 영어와 사랑에 콤플렉스가 있던 영주가 사랑을 이루어가며 서서히 영어도 깨우치는 과정을 통해서 감독은 사랑과 영어를 동일시하며 용감한 자가 사랑을 얻듯이 용감한 자가 영어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다며 유쾌하게 말합니다.
로맨틱 코미디가 사랑 제일주의만을 이야기하는 속빈 영화 장르라는 사실을 일시에 날려버리며 알꽁달꽁한 로맨틱 코미디를 완성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영어 만능 주의 은근히 풍자하며 그 속에서 인생의 교훈까지 전해주는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속에 담겨진 특이함은 어쩌면 저처럼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가련한 30대에겐 정말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오랫동안 포기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이 영화의 특이함은 제게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 왔답니다. (물론 아직 시작은 하지 못했답니다. 하루도 채 지나지 못해서 또다시 밀려오는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


 



[영어완전정복]은 이렇게 감독에서부터 배우, 그리고 소재와 스토리 라인에 이르기까지 특이함으로 범벅이 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이함을 유치함으로 받아들인다면 분명 이 영화는 어이없는 코미디 영화로 머물게 될 겁니다. 우린 아직 이 영화가 그려내는 특이함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가 유치하다며 외면해 버릴 영화인지는 분명 다시 생각할만 합니다. 남성적 액션 영화에 전통한 감독이 그린 소녀 취향적인 만화적 상상력은 유치해 보이면서도 유쾌한 웃음을 가져다 주었고, 이쁘기로 따진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배우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잔뜩 망가진채 멍청한 행동만을 일삼은 그 불협화음은 묘한 매력을 안겨 주었으며, '영어'라는 소재만으로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벗어나는 주류 장르의 파괴는 통쾌한 쾌감을 안겨 줍니다. 분명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적 재미는 아니지만 저는 정말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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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의꿈
모야...반은 이나영 칭찬이쟎아...쥔장님 웬만하면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야하지 않나요...
좀 독특하고 재미있었던건 사실이지만...위에서 언급했던대로 이나영은 한국판 아멜리에 였다우...감독이 오두리 도투를 연상하며 영주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건 아닌지...
 2003/11/24   
쭈니 이쁜 이나영 모략하지마.
이 정도면 최고지 뭐... ^^;
 2003/11/25   
oks
저도 정말잼있게 봤답니다.^^ 쭈니님 정말 글 잘쓰시네요..^^  2004/06/24   
쭈니 뒤늦게 답글 발견... 이게 제 사는 낛입니다. ^^;  200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