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유위강, 맥조휘
주연 : 진관희, 여문락, 증지위, 황추생, 유가령, 오진우
개봉 : 2003년 12월 5일
관람 : 2003년 11월 17일
SBS에서 일요일 낮 12시 10분에하는 '접속 무비월드'의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솔직히 별다른 기대없이 시사회에 응모했었는데 떡하니 당첨이 되고 말았네요.
지난 2월 4일에 보았던 [투게더] 시사회가 제겐 마지막 시사회였으니 정확히 9개월하고도 13일만의 시사회 관람이었으며, [투게더] 시사회 당첨의 경우 제가 된것이 아니고 다른 분이 당첨된 것을 제가 대신 가게 된것이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저의 시사회 당첨은 2001년 12월 26일 [디아더스]가 마지막이었으니 무려 1년하고도 10개월 22일만의 일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
[무간도 2]는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번 시사회가 아니었다면 극장에서 볼 영화는 아니었답니다. 물론 전편인 [무간도]를 재미있게 보았지만 1편의 히어로인 유덕화와 양조위가 빠지고 여문락, 진관희라는 생소한 이름의 젊은 배우들이 채워진 [무간도 2]는 이 젊은 배우들의 생소한 이름처럼 전혀 제게 기대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일찌감치 디빅 버전을 다운받은 상태이니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극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컴퓨터 의자에 앉아 관람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생긴 공짜 시사회표이니 작은 컴퓨터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을터... 결국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홍콩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었답니다. (얼마만에 홍콩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된것인지는 차마 계산이 되지 않네요. ^^;)
이렇게 시사회에 당첨되었다는 기쁨과 영화에 대한 낮은 기대감으로 본 [무간도 2]는 그러나 정말 굉장한 영화였습니다. 홍콩 영화를 보며 이렇게 커다란 재미와 감동을 느꼈던 것이 정말 얼마만인지...(이것 역시 전혀 계산이 안됩니다.) [무간도]를 보며 홍콩 느와르가 부활했다고 열광했던 저는 [무간도]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음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무간도 2]는 수년동안 제 마음속에 쌓였던 홍콩 영화에 대한... 유위강 감독에 대한... 홍콩 느와르에 대한... 제 편견을 순식간에 없앴을뿐더러 [무간도 3]를 간절히 기대하게끔 만들었습니다.
1. 홍콩 영화에 대한 편견 : 홍콩 영화의 속편은 재미없다.
홍콩 영화의 오랜 팬으로써 지금까지 분명했던 것은 속편은 보지 말라는 겁니다. 홍콩 영화가 한참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도 속편 영화에 대한 제 편견은 유효했었습니다.
주윤발의 그 처절한 죽음이 인상적이던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 [첩혈쌍웅]의 속편이라며 대대적인 광고를 했던 [첩혈속집]의 경우 오우삼 감독, 주윤발 주연이라는 [첩혈쌍웅]의 양대 스타를 고스란히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절 실망시켰었죠. 하긴 어쩌면 [첩혈속집]은 애초에 [첩혈쌍웅]의 속편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첩혈쌍웅]의 속편인줄 알고 보았던 10년전 그때 느꼈던 영화에 대한 배신감은 아직도 생생할 정도입니다.
절 실망시켰던 홍콩 영화의 속편은 그 외에도 부지기수입니다. 도박 영화의 시초인 [지존무상]의 경우 [지존계상], [지존무상 2] 등이 서로 [지존무상]의 속편임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그 무엇도 [지존무상]의 아류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왕조현의 매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천녀유혼]은 정소동 감독과 왕조현 주연의 틀을 유지하며 3편까지 나왔지만 모두 [천녀유혼]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악영향만 끼쳤었습니다. 그 외에도 전편의 명성에 먹칠을 가한 속편 영화는 [95 천장지구], [동방불패 2] 등 한도 끝도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홍콩 영화의 속편으로 전편을 뛰어넘는 아니 최소한 전편의 재미를 간직하는 영화는 [영웅본색 2]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웅본색] 역시 3편에 가서는 완벽하게 절 실망시키며 역시 홍콩 영화의 속편은 절대로 봐서는 안된다는 편견만 남겨 주었습니다.
[무간도 2]는 바로 20년 가깝게 제게 남겨졌던 이 편견을 일시에 부수는 놀라운 파괴력을 과시했습니다. 솔직히 전편의 유덕화와 양조위라는 스타급 배우들의 매력적이며 허무에 찬 연기에 빠져들었던 저로써는 여문락, 진관희라는 새로운 주연 배우의 이름은 [무간도 2] 역시 [무간도]의 흥행을 등에 업고 돈벌이나 해보자며 마구잡이로 뛰어든 어설픈 속편 영화가 아닌가하는 우려를 안게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몇분이 지나기도 전에 이러한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양조위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여문락과 유덕화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진관희는 [무간도]의 명성에 편입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배우의 발견이라는 환희를 제게 안겨주었고, 만년 조연으로만 머물던 증지위, 황추생과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오진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유덕화와 양조위가 빠진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영화의 재미를 주도했습니다.
결국 [무간도 2]는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무간도]의 재미를 뛰어넘었으며 영화적 재미와 영화를 본 후의 여운까지도 전편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며 홍콩 영화의 속편은 재미없다는 오랜 편견을 부수었습니다.
2. 유위강 감독에 대한 편견 : 유위강 감독의 영화는 스토리가 약하다.
맥조휘 감독과 함께 공동 감독을 맡은 유의강 감독은 [풍운], [중화영웅], [결전] 등을 만든 감독으로 몇년전만해도 홍콩 영화의 새로운 주류였던 SF 무협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SF 무협 영화들은 비록 국내에선 홍콩 영화의 예전 인기를 회복하는데엔 실패를 거두었지만 홍콩에선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홍콩 영화를 단번에 일으켜세우는 공로를 이루었습니다.
[동방불패]와 같은 예전의 무협 영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과 화려한 특수효과로 홍콩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위강 감독의 SF 무협 영화들은 그러나 한가지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그 풍부한 스토리를 살리지 못하고 특수효과만 난무하는 속빈 SF 영화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들 영화의 약점은 금새 관객들을 질리게 했고 결국 유위강 감독이 주도했던 SF 무협 영화의 전성기는 몇년을 넘기지 못하고 새천년과 함께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유위강 감독은 [무간도]에서 서로 신분이 바꾼 두 사나이의 운명을 풍부한 스토리 라인으로 그려내는 솜씨를 과시하더니 [무간도 2]에서는 이 두 주인공의 과거라는 단순한 플롯만으로도 전편을 뛰어넘는 스토리 라인을 선보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솔직히 [무간도 2]는 제가 보기엔 더이상 할 이야기꺼리가 없었습니다. 관객들은 이미 [무간도]를 통해 경찰이면서도 폭력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야만 하는 진영인(양조위)과 폭력 조직의 조직원이면서도 경찰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유건명(유덕화)의 뒤바꾼 운명을 보았습니다. [무간도 2]는 이들의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어쩌더가 이들의 운명이 이렇게 뒤바꿨는지 이야기하지만 이미 [무간도]를 통해 어느정도의 사정을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간도 2]는 할 이야기가 없으면서도 억지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그런 영화로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유위강 감독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합니다. 유건명의 보스인 한침(증지위)과 그의 아내이며 유건명의 첫사랑인 메리(유가령), 그리고 삼합회의 보스이며 진영인과는 이복 형제 사이인 예영효(오진우)와 야심에 찬 경찰 간부인 황국장(황추생)을 등장시켜 이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속에서 진영인과 유건명의 뒤바꾼 운명이라는 단순한 플롯을 탈피하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를 파생시킵니다.
[풍운], [중화영웅], [결전]에서도 유의강 감독의 이러한 풍부한 스토리 감각이 발휘되었다면 아마도 우린 SF 무협 영화의 전성기를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3. 홍콩 느와르에 대한 편견 : 홍콩 느와르 영화의 생명은 난무하는 총탄이다.
주윤발의 휘날리는 바바리 코트와 쌍권총, 그리고 빗발치듯이 쏟아지는 총탄과 일당백으로 싸우는 허무한 모습의 영웅들. 홍콩 느와르 영화를 몇마디 말로 정의하라면 전 당연히 이러한 것들을 제시할 겁니다. 그러나 몰락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뒤 [무간도]를 통해 부활한 홍콩 느와르는 바로 자신의 가장 큰 트레이드 마크인 빗발치는 총탄과 일당백의 영웅들을 삭제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무간도]는 정말로 색다른 홍콩 느와르 영화였습니다. 비극적인 영화 분위기와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영화속 캐릭터들은 영락없이 홍콩 느와르이건만 시끄러운 총격씬과 춤추듯이 총을 꺼내들던 주인공들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의 신분을 속인채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그로인한 아슬아슬한 스릴만이 남겨졌던 겁니다.
[무간도 2]는 여기에서 한발자욱 더 나갑니다. 이 영화에서 총격씬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간혹 나오는 총격씬마저도 복수를 위한 단호한 몇발의 총성만이 울려퍼질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허무합니다. 사랑하는 보스의 아내를 위해서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고서도 끝내 그녀를 잃고마는 유건명의 모습도 허무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자신의 신명을 지키기위해 가족을 배신해야하는 그러나 결국 나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진영인의 모습도 허무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총격씬은 버리고 허무주의는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며 이전의 홍콩 느와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변신은 다분히 헐리우드적입니다.
솔직히 [무간도 2]를 보며 제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영화는 [영웅본색], [첩혈쌍웅]과 같은 홍콩 느와르의 전설적인 영화들이 아닙니다. 우습게도 헐리우드의 갱스터 무비인 [대부 시리즈]였습니다. 예영효가 주도면밀하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는 장면에서 [대부]의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의 모습을 발견한 겁니다.
결국 [무간도]가 지향한 홍콩 느와르의 변신은 헐리우드의 갱스터 무비의 또다른 홍콩판인 셈입니다. 홍콩의 유명 감독과 배우 영화 스텝진들이 헐리우드에 진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요즘, 홍콩에서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 부활을 외치며 홍콩 느와르의 화려한 부활을 이룩한 영화가 헐리우드 갱스터 무비의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 이러한 홍콩 느와르의 변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장엄하면서도 허무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무간도 2]를 보며 홍콩 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간도]의 세번째 이야기인 [무간도 3 : 종극무간]이 조만간 개봉한다고 합니다. 2편에서는 과거로 날아갔던 영화가 3편에 와서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인 미래를 그려낸다는 군요. 솔직히 이 영화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들었던 두명의 주인공중 하나인 진영인이 이미 죽은 상태에서 이들의 미래 이야기는 조금 무의미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이야기가 없어보였던 과거의 이야기인 [무간도 2]에서조차 놀라운 스토리 감각과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던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과연 이미 끝난 이야기로 보이는 미래의 이야기인 [무간도 3]에서는 또 어떠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지 자뭇 기대가 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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