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3년 영화이야기

[위대한 유산] - 웃음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준...

쭈니-1 2009. 12. 8. 16:25

 



감독 : 오상훈
주연 : 임창정, 김선아
개봉 : 2003년 10월 24일
관람 : 2003년 11월 1일


한때 저도 집안에서 처치곤란한 백수였습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회사에서 8개월만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면목아래 거의 1년 6개월을 놀았으며, 군대 제대 후 복학할때까지 6개월을 놀았고, 대학 졸업후에도 틈틈이 이 직장 저 직장을 옮겨다니며 꽤 많은 시간을 백수로 지내왔습니다. 구피를 만나기전에도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한 후 백수로 빈둥빈둥거리며 놀고있었으니 그런 백수건달을 사랑해준 구피가 지금도 고맙고 감사하답니다.
암튼 이렇게 백수 경험이 풍부한 제 입장에서 [위대한 유산]은 정말로 마음에 와닿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유산]이 개봉되었을때 이 영화는 제 기대작에 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백수 시절의 그 갑갑하고 막막하던 시절을 다시 회상하고 싶지 않은 생각때문이었으며, 임창정의 코믹 연기가 이젠 식상하고, 김선아의 코믹 연기는 못미덥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청년실업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코미디로 풀겠다는 이 영화의 의도가 전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유산]을 본 회사동료의 '웃겨 죽는줄 알았다'라는 말한마디가 이 영화에서 못마땅했던 요소들이 갑자기 기대되는 요소들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갑갑하고 막막했던 백수 시절의 기억은 회사업무에 지친 제겐 정겨운 추억이 되어버렸으며, 임창정의 코믹 연기는 듬직해보였고, 김선아의 코믹 연기는 신선해 보였습니다. 청년실업을 코미디로 풀겠다는 이 영화의 의도 역시 기발하게만 보였으니...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쉽게 뒤바뀌니 말입니다. 결국 그러한 이유로 염치없게도 웅이를 장모님께 맡기고 어렵게 낸 시간에 본 영화가 애초의 제 기대작인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가 아닌 [위대한 유산]이 되고 말았답니다.


 



1. 초반 : 백수, 백주라는 캐릭터 설정으로 웃음을 유발하다.

옆집 꼬마를 봐준다는 면목아래 알바비타서 경마장에서 돈날리고, 백화점 시식 코너에서 배채우고, 집에 들어와선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구박당하고, 심지어는 형수(신이)의 구타까지... 그러나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뒹굴 저리뒹굴... 이것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보여지는 창식(임창정)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 세상 모든 백수가 이렇게 한심한 모습을 하고있지는 않지만 한번쯤 장기적인 백수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갈만한 모습입니다.
미영(김선아)의 하루 역시 창식과 마찬가지입니다. 연기자라는 허황된 꿈을 좇아 오늘도 연기연습에 몰두하지만 막상 오디션을 보라가면 설사때문에 맘대로 실력발휘도 못하고 엉덩이를 움켜잡고 뛰쳐나와야 하는 그녀. 집에선 거스름돈을 타기위해 언니(조미령)의 담배 심부름을 해야하고, 자기보다는 고스톱에 더욱 관심이 있는 어머니(김수미)의 무관심에 울분을 토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아직 창창한 청춘이건만 꼬이는 남자라고는 100원가지고 시비나 거는 백수건달 창식과 아무 여자한테나 집적대는 짜장면 배달부(공형진)뿐입니다.  
이렇게 한심한 백수와 백조 커플을 영화의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들의 한심한 하루하루만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위대한 유산]의 초반은 청년실업을 아주 제대로 코미디라는 장르안에 풀어넣습니다. 아주아주 능력이 있어서 백수 백조 시절 한번 당해보지 않은 관객들이야 모르시겠지만 막막하기만 하던 백수 백조 시절을 몸소 체험한 저같은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충분히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쓴웃음일지라도...
그만큼 이 영화는 장기적인 백수 백조의 생활과 심정을 코미디 영화치고는 꽤 진솔하게 잡아냅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하루하루. 그리고 영화는 그들에게 기적을 일으켜 줍니다.


 


  
2. 중반 : 뺑소니 사고, 백만장자의 잃어버린 아이 사건으로 흥미를 유발하다.

임창정의 타고난 코믹 연기와 김선아의 놀라운 코믹 연기로 백수, 백조 캐릭터를 완성한 이 영화는 뺑소니 사건이라는 에피소드를 통해 본격적으로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하필 뺑소니 사고를 낸 장본인이 어벙한 조폭이라는 설정을 통해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에서도 주류 장르로 통하던 조폭 코미디를 자연스럽게 이 영화속에 삽입하고, 뺑소니 사고를 당한 장본인이 아이를 잃어버린 백만장자 할아버지라는 설정을 통해 이 영화는 뺑소니 사고 에피소드의 뒤를 받쳐줄 새로운 에피소드를 준비하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입니다. 이렇게 이 영화를 받치고 있는 것이 두개의 다른 에피소드이지만 서로 맞닿아있는 이 두개의 에피소드는 서로 상관없는 에피소드의 나열로 인하여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던 기존의 캐릭터 코미디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합니다.
특히 두번째 에피소드의 영화적인 재미는 [위대한 유산]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과 맞물려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미영이 진짜 백만장자 할아버지가 잃어버린 딸인지... 창식과 미영은 과연 백만장자 할아버지의 이 영화의 제목처럼 '위대한 유산'을 받고 지금까지 자신을 무시하고 핍박했던 사람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할 것인지... 다른 캐릭터 코미디 영화가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코믹함에 기대어 그 호흡 시간이 짧았음을 기억한다면 러닝타임이 2시간에 가까운 이 영화는 계속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제시함으로써 영화적 재미를 길게 이끌어나갑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위대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도 본래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 코미디의 묘미를 잃기는 커녕 더욱 발전을 시킨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임청정과 김선아의 연기는 영화의 초반에 보여줬던 놀라움에서 벗어나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특히 임창정의 코믹 연기는 워낙 정평이 나있어서 별로 못느끼겠지만 김선아의 그 망가짐은 정말 왠만한 여배우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 천연덕스러운 코믹 연기... 솔직히 그녀의 연기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위대한 발견을 이룬 영화인 셈입니다.


 



3. 후반 : 코믹함을 잃지않으며 자연스럽게 로맨틱 코미디로 전환하다.

이제 모든 에피소드가 우여곡절끝에 지나고나면 이런 류의 영화를 많이 접한 관객이라면 창식과 미영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할 것임을 눈치챌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도 중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충분히 그러한 것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입니다. 백수, 백조라는 한심한 캐릭터에서부터 시작하여 에피소드를 통해 충분히 관객들앞에 망가진 모습을 보여줬던 이들이 과연 어떻게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감동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것이 이 영화 후반의 촛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임창정의 전작인 [색즉시공]의 경우,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섹스 코미디로써의 재미가 영화 후반의 은식(임창정)과 은효(하지원)의 사랑 이야기를 방해합니다. [색즉시공]에서의 은식의 그 바보스러움은 로맨틱 코미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은효가 마지막에 은식을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은효가 정말 은식을 사랑하는 것인지 저로써는 의심스럽기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색즉시공]은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코미디적인 요소에서는 [위대한 유산]보다 휠씬 재미있었습니다.) 제 기억속에는 마지막에 로맨틱 코미디로의 자연스러운 전환에는 실패한 영화였습니다. 김선아의 전작인 [몽정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지식한 고등학교 교사인 병철(김범수)이 귀여운 교생인 유리(김선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너무 극적인 탓에 영화 초반의 코미디와 작은 충돌을 이룹니다.
하지만 [위대한 유산]은 그러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심각해야하는 그 순간에 조차도 코미디 영화의 본연의 임무인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코미디 영화이면서도 감동스러운 영화인척 하지 않는 겁니다. 미영의 어머니가 미영에게 출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그 장면만 보더라도 진지해야할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김수미와 김선아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마지막 창식이 미영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퀴즈가 좋다'장면에서도 감동스럽다기 보다는 코믹스러으며, 마지막 키스씬조차 이 영화는 코믹함을 잃지않습니다.
코미디 영화로써 괜히 진지한척 하지 않으며 감동적이어야하는 마지막까지 코믹함을 잃지 않는 이 영화에서 어쩌면 다른 분들은 너무 가벼운 웃음을 발견하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코미디 영화로써 그 임무에 최선을 다한 진솔함을 발견했습니다.


 



4. 영화가 끝나고...

이 영화를 보기전에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쓰레기같은 코미디 영화라는 평과 시종일관 정말 웃긴다는 평을 보았습니다. 너무 가벼운 코미디... 분명 이러한 요소는 이 영화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은 코믹함에 웃지만 보고나면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라는 여러 관객들의 평가는 분명 저 역시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만약 기억에 오래 남는 감동적인 영화를 원하셨다면 왜 하필 코미디 영화를 보았을까요?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임무는 결국 관객을 웃기는 것이지 오랫동안 기억에 나는 감동적인 영화가 아닌 겁니다. 물론 코미디 영화이면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명작도 있지만 모든 코미디 영화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코미디 영화는 킬링타임용 영화인 셈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위대한 유산]은 제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코미디 영화로써의 본연의 임무를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지켰던 이 영화는 소위 슬픈 코미디라는 이상한 장르를 선택했던 다른 코미디 영화보다 진솔합니다. 분명 며칠후면 이 영화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았던 2시간동안 맘껏 웃었던 기억만은 선명하게 남을 것이며, 이 바로 그것이 이 영화가 남겨준 '위대한 유산'은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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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로
정말 요즘은 극장에 한국영화만 보러가게 되네요. 외국영화의 말도안되는 사랑얘기보다는(만나고 바로 사랑에 빠지는) 우리에 정서에 맞는 한국영화가 좋아지는게 당연하겠지만요.
물론 극장에서 앞자리에 앉아도 자막걱정안해도 되고요^^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정말 오랜기간 백수생활을 했네요.(지금도..쿨럭~ㅡㅜ) 준비해온 날이 다가오네요. 행복한 겨울동면이 될지. 악몽과 같은 겨울동면이 될지 지금 같아서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싶은....쿨럭 이건 취소^^
 2003/11/03   
쭈니 요즘 한국 영화에 대한 점유율이 높은 이유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디빅덕분이 아닐런지...
요즘 왠만한 외국 영화는 비딕으로 볼 수 있으니 그만큼 한국 영화로 관객들이 몰리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우리 영화 수준이 그만큼 높아진 이유도 있고요.
미니로님...
요즘 백수생활중???
솔직히 부럽습니다.
어디 돈주면서 백수시키는 그런 직장은 없는지... ^^;
암튼 빠른 시일내에 백수생활 청산하시길 빌며 준비하시는 일이 잘 되길 빌겠습니다. ^^
 200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