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3년 영화이야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세련됨을 지나, 유치함을 넘어, 비극으로...

쭈니-1 2009. 12. 8. 16:24

 



감독 : 이재용
주연 : 배용준, 이미숙, 전도연
개봉 : 2003년 10월 2일
관람 : 2003년 10월 24일


[스캔들]을 결국 보고야 말았습니다. 이 영화가 보고싶었던 구피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인하여 이 영화가 개봉된지 3주가 지난후에야 결국 보고 말았습니다. 금요일 저녁... 업무끝나고 술한잔하자던 직장 동료들의 유혹을 어렵게 뿌리치고, 영등포에서 미리 영화를 예매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구피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구피가 영화를 예매한 극장은 영등포의 경원극장. 겉보기에는 허술해보이는 3류 극장이지만 극장의 안은 넓고 시설도 좋다는 구피의 말을 믿었건만 경원극장은 제게는 미아리 대지극장과 더불어 최악의 극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1관은 넓고 시설이 좋은지 몰라도 [스캔들]이 상영하던 2관의 규모는 그야말로 3류 극장 수준이었습니다. 한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탓에 스크린의 높이가 낮아 앞 사람의 머리때문에 영화가 잘 보이지 않았으며, 작은 스크린은 영화의 화면을 전부 담지조차 못했으며,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자세마저도 엉망이었습니다. 수시로 왔가갔다하는 나이드신 아저씨 아줌마 관객에서부터 시작하여, 휴대폰을 진동으로 하지 않아 영화 도중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젊은 관객까지... 수근거리는 소리는 작은 극장안에서 자주 울려퍼졌으며, 심지어는 '유치해'라고 큰소리로 말함으로써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다른 관객들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싸가지없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스크린의 크기와 극장의 규모, 시설은 어쩔수없다지만 이런 관객의 무매너는 정말 참기 힘들더군요. 이상하게 시설이 좋은 시내 극장으로 가면 관객의 질도 좋아지는데 왜 이렇게 약간 변두리에 있는 시설이 떨어지는 극장에선 관객의 질마저도 떨어지는 걸까요.
이러한 악상황에서 본 [스캔들]은 그러나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배용준은 의외로 사극 연기가 어울렸고, 이미숙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기대이상이었으며, 전도연의 정절녀 연기도 좋았습니다. 중간 중간 관객들을 웃기는 이재용 감독의 연출력도 좋았고, 아름다움이 가득 베인 화면도 멋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비극은 정말 최고였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 실망을 하셨지만 (구피도 재미없었다고 그러더군요) 전 나름대로 너무나도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1. 역사적인 사건을 포기함으로써 얻어낸 세련된 화면.

[스캔들]은 사극입니다. 요즘 갑작스럽게 사극 열풍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이재용 감독이 만들어낸 [스캔들]은 정말 특별한 사극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다른 사극과는 전혀 다른 차별화된 스토리 라인과 세련된 화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개봉된 사극인 [청풍명월], [황산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사극은 역사적인 사건에 픽션을 가미하여 영화적인 재미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스캔들]은 다릅니다. 이 영화는 사극으로는 처음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지 않고, 1782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피에르 쇼데르로스 드 라클로의 'Les Liaisons Dangereuses'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습니다. 이 소설은 [위험한 관계], [발몽],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등 이미 여러차례 서양에서 영화화된 작품으로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꽤 익숙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재용 감독은 바로 이 서양의 고전을 원작으로 삼겠다고 선언을 한겁니다. 정말 이재용 감독이 아니라면 할 수 없었을 대단한 모험인 셈입니다.
이렇게 [스캔들]은 애초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의 재해석이라는 사극이라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함이 마땅한 영화적인 재미를 처음부터 포기하고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스캔들]이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것은 의외로 큽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틀에 얽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황산벌]은 좋은 예입니다. [황산벌]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사극에 접목시킴으로써 새로움을 추구했지만 황산벌 전투의 비극성으로 인하여 결국 영화의 후반부는 코미디가 아닌 비극으로 끝을 맺어야만 했습니다. 만약 [황산벌]이 황산벌 전투를 모티브로 삼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영화는 완벽한 코미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스캔들]은 역사적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그로인하여 자유롭게 새로운 사극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영화가 추구한 새로움은 앞에서도 언급한 세련된 화면으로 잘 표현됩니다. 한복의 그 우아한 아름다움과 우리의 금수강산을 유려하게 잡아낸 화면은 역사적인 사건에 얽매여 스토리 라인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던 다른 사극 영화와 완전히 차별되는 새로운 재미였습니다. 특히 역사라는 무거운 주제에서 해방된 캐릭터들의 자유로움을 한복을 통하여 표현한 세련됨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2. 서양식 사랑이라는 소재를 택함으로써 짊어지게된 유치함.

[스캔들]은 기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춘향뎐]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은 비틀어진 욕망과 쾌락에 대한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스캔들]에게는 유치함이라는 어쩔수없는 취약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는 희대의 바람둥이 조원(배용준)과 사대부가의 안방마님과 요부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조씨부인(이미숙), 그리고 9년간의 수절로 나라로부터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숙부인(전도연)으로 이루어집니다. 조원은 숙부인을 꼬시기로 조씨부인과 내기를 걸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지만 그만 숙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이르고 조씨부인의 계략에 의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입니다.
이렇듯 서양의 고전을 원작으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영화속의 사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지고지순한 사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한참을 벗어나 있습니다. 조원과 조씨부인은 사촌지간이면서도 서로를 원하며 조씨 부인은 자신의 몸을 내걸고 조원과 내기를 하기에 이릅니다. 게다가 조원은 매형의 소실로 들어올 소옥(이소연)의 몸을 탐하고 결국 그녀를 임신시키기에 이르니 이 영화속 사랑은 조금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도가 지나친 이 영화의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재는 서양식인데 그것에 대한 표현은 동양식으로 하는 것이 이 영화가 유치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인 겁니다. 조원이 숙부인을 꼬시는 과정이라던가 조씨 부인의 악녀적인 계략 등, 관객의 입장에선 고전적인 한복을 입고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양적이며 현대적인 비틀어진 사랑 게임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유치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유치함속에서 새로운 사극의 재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유교 사상에 얽매여 자유롭게 섹스를 즐기던 남성과는 달리 정절을 강요받았던 그 시대의 여성들... 이재용 감독은 다른 사극에서는 고려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억압받았던 여성의 삶을 엉뚱하게도 서양의 소설속에서 찾아냈으며, 아직은 어색하지만 사극이라는 장르속에 그러한 요소들을 삽입시키려 노력한 겁니다. 많은 관객들이 지적했듯이 그러한 노력들이 유치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이 영화가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폭발적인 흥행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실패라고 할 수는 없는 듯이 보입니다.


 



3. 그리고 남겨진 아름다운 비극.

이 영화는 비극일 수 밖에 없습니다. 원작이 비극적으로 끝을 맺기도 하지만 원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비극으로 끝을 맺어야만 합니다.
유교가 국교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적 상황에서 관직을 마다하고 자유롭게 여성들과의 섹스를 즐기는 조원이나 사대부가의 안방마님임에도 불구하고 뭇남성들과 문란한 섹스를 즐기는 조씨 부인, 첫날밤도 치루지 못하고 남편과 사별했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유부녀인 입장에서 조원의 사랑을 받아들인 숙부인 등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그 시대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인물들 뿐이며,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영화속 캐릭터들이 비극에 치닫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말일겁니다.
문제는 이 영화속 비극이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느닷없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아름다운 색체와 이 영화속 캐릭터들의 사랑 게임에 정신을 팔려 이 영화가 간직하고 있는 비극을 미쳐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비극성을 일찌감치 알아챈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비극이 얼마나 서서히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며 이재용 감독은 그러한 비극마저도 아름답게 치장합니다.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는 그 순간에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 조원의 그 안타까운 눈동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소식을 듣고 죽음으로써 그의 사랑을 이루려하는 숙부인의 마지막 선택, 자신의 비틀어진 욕망과 질투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스스로도 파멸을 맞이하는 조씨 부인의 초라한 행색에 이르기까지... 이재용 감독이 표현한 이 영화속 비극은 아름답다못해 가슴을 파고들을 안타까움으로 제게 남습니다.
이재용 감독은 진정으로 새로운 사극을 만들었으며 그러한 그의 새로움이라는 도전은 많은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못함으로써 비롯된 유치함이라는 느낌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최소한 제겐 새로움과 함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언제나 안타까운 법입니다. 그것이 조선시대의 바람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조선시대의 요부라 할지라도... 그것이 조선시대의 정절녀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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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의꿈
스캔들...기억에 남는건 정말 아름답게 그려진 포스터들...
그리고 배용준의 그 아슬아슬하고 실한 몸매....ㅋㅋㅋ
지지부진 시간을 끌길래 엔딩이 어찌될까 보면서도 참 궁금했는데 초라한 비극이어서 조금은 으아했네요. 한 남자에 대한 여자의 사랑이란...참...무서운 집착속에 널부러진 질투....-.-
 2003/10/27   
쭈니 ㅋㅋㅋ
그렇게 재미없었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이렇게 틀리다니...
암튼 오랜만에 기대하고 본 영화인데 재미없어서 어쩌냐.
담엔 너에게 꼭 재미있는 영화보자.
 2003/10/28   
쩡이
나도 이 영화가 재미가 없었던 이유가 뭘까? 오히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 훨씬 더 재미있었던 것 같으니.. 아무래도 같은 스토리 때문이였나.. 라이언필립이 배용준보다 더 멋있었던것 같고, 리즈위더스푼이 전도연보다 더 이뻤던거 같고, 이미숙의 연기는 노련했다고는 하지만, 어떤점이 더 나은건지 찾기가 힘들었어... 영화보는 시각이 많이 떨어져버렸남.... 웬지 씁쓸한 뒷끝이 남는 허전한 영화였다고나 할까...^^  2003/10/28   
쭈니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 더 재미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원작인'위험한 관계'가 조선시대보다는 미국의 비버리힐즈가 더욱 잘 어울렸기 때문일거야.
아무래도 서양적인 원작과 동양적인 원작이 충돌을 일으켜서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
 200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