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흥순
주연 : 신은경, 박준규
개봉 : 2003년 9월 5일
정말 세상엔 자신의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모양입니다. 일찌감치 올 추석에 개봉되는 그 수많은 영화중에서 [캐러비안의 해적]을 낙점해놓고 인터넷 예매의 순간까지 갔었지만 제 아들 웅이가 2주나 먼저 태어나는 바람에 결국은 컴퓨터로 캠버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추석 개봉작중 소위 빅 4([캐러비안의 해적], [오! 브라더스], [불어라 봄바람], [조폭 마누라 2])중에서 가장 기대도가 낮았던 [조폭 마누라 2]는 얼떨결에 극장에서 보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영화보는 것마저 내 뜻대로 안되다니...
정말로 정말로 [조폭 마누라 2]는 전혀 극장에서 볼 마음이 없었답니다. 2001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전편마저도 극장에서 보지 않았던 제가 조폭 코미디라는 이제는 한물간 장르와 속편이라는 올여름내내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로 지긋지긋하게 체험한 식상함으로 무장한 이 영화를 다른 쟁쟁한 영화들을 제치고 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러한 제 선택을 호락호락하게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사촌동생들과 오전부터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12시를 향했고 서서히 술기운도 올라오던 그때, 사촌동생 하나가 영화를 보러가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영화에 굶주려있던 저로써는 사촌동생의 제의가 반갑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창 연애중인 사촌동생은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이미 극장에서 보고 [조폭 마누라 2]만 보지 못한 상태였던 겁니다. [캐러비안의 해적], [오! 브라더스], [불어라 봄바람]을 이미 봤다는 사촌동생은 [조폭 마누라 2]를 보자고 제의 했으며 다른 사촌동생들 역시 별다른 반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난히 [조폭 마누라 2]가 보기싫었던 제가 한가지 생각해낸것이 무작정 극장으로 가고 그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중 시간대가 맞는 영화를 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극장은 집에서 가까운 대지극장. 상영관이 2개뿐이기에 선택의 폭은 상당히 좁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저는 대지극장에 다른 영화가 상영중이기를 은근히 바랬습이다. 하지만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대지극장엔 [조폭 마누라 2]가 상영중이었으며, 그것도 저희가 극장에 간 시간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간대에 상영하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저는 두 손, 두 발 전부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까짓거 어찌되었건간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화는 보게 되었으니...
[조폭 마누라 2]는 역시 제 미덥지근한 기대(?)에 철저하게 부흥하는 영화였습니다. 도대체 이 영화에 기대해야할 영화적 재미가 무엇인지 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1. 업그레이드는 없다.
속편 영화의 확고부동한 철칙은 전편에 대한 업그레이드입니다. 물론 [반지의 제왕]처럼 아예 3부작으로 기획이 된 영화들은 예외겠지만 대부분의 속편 영화들이 전편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제작되는 것이 기본이며 그렇기에 전편에서 벌어들인 넉넉해진 제작비와 전편으로 인하여 무한정 올라가버린 관객들의 기대에 부흥하고자 속편 영화들은 전편이 가지고 있었던 영화적인 재미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전전긍긍합니다.
[조폭 마누라 2]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01년 여름의 최후의 승자로 판가름날 정도로 메가히트작인 전편의 흥행 성공 덕분에 제작사인 현진 시네마는 전편의 동업자인 서세원 프로덕션의 자금 지원이 없이도 수많은 투자자들의 넉넉한 투자금으로 [조폭 마누라 2]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연예계 비리사건으로 폭삭 망해버린 서세원 프로덕션만 불쌍하게 되었군요. 쯧쯧쯧~) 하지만 이렇게 넉넉해진 제작비로 이 영화가 이루어 놓은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4억원이라는 여배우로는 최고의 개런티를 받은 신은경의 몸값과 이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할 깜짝 스타인 장쯔이의 출연료만으로 넉넉해진 제작비를 모두 써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전편에서 웃음을 책임졌던 박상면 대신 박준규가 새롭게 투입이 되었지만 박준규의 어벙한 연기는 아직 박상면과 비교해서 한참 떨어지는 수준으로 보이며, 안재모, 김인권 등 전편에서 톡톡히 한 몫을 했던 조연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출연진의 업그레이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액션과 영화의 규모면에서 약간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긴 한 듯 보이지만 2년동안 액션의 규모에 대한 눈이 높아진 관객의 입장에서 그 업그레이드를 느끼기엔 미비한 수준이며, 전편의 흥행을 이끌어냈던 포복절도할 웃음 역시 이 영화는 오히려 뒤로 후퇴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전편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이루지 못한 속편 영화는 이미 그 영화적인 재미를 절반 이상 상실한 것과도 같습니다. 이 영화는 넉넉해진 제작비로 신은경의 몸값을 올리는 것 이외에 관객을 위한 다른 특별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습니다.
2. 전편이 가지고 있던 영화적인 재미를 잃다.
[조폭 마누라]가 가지고 있었던 영화적인 재미는 역할 뒤집기를 통한 웃음이었습니다. 조폭이라면 당연히 험상궂게 생긴 덩치가 산만한 남자들을 상상하던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신은경이라는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배우를 조폭 두목으로 분장시킴으로써 관객들이 가지고 있던 상식을 뒤집고 웃음을 유발했습니다. 그러한 역할 뒤집기는 박상면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릅니다. 얼떨결에 조폭 두목을 마누라로 얻은 이 소심한 남자의 에피소드는 관객들에게 예기치못한 웃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조폭 마누라 2]는 전편의 이러한 상황 설정을 모두 버리고 전혀 새로운 상황을 연출합니다. 그것은 기억을 잃어버린 차은진(신은경)의 기억 되찾기라는 전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스토리 라인인겁니다. 하지만 차은진이 기억을 잃어버렸듯이 이 영화는 전편이 가지고 있던 영화적인 재미를 잃어버렸으며, 그렇다고 새로운 영화적인 재미를 창출하지도 못했습니다.
분명 어떠한 방식으로든 전편에 대한 스토리 라인의 변경은 불가피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편을 통해 역할 뒤집기의 재미를 만끽한 관객들이 또다시 속편에서도 그와 똑같은 재미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편과 똑같은 영화라면 그것은 이미 속편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며, 그것은 곧 전편에 대한 업그레이드라는 속편의 법칙에도 위배되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스토리 라인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전편이 가지고 있던 영화적인 재미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새로운 재미와 전편이 가지고 있던 재미를 적당한 비율로 섞는 것도 속편 영화가 이루어야 할 숙제인 겁니다. 하지만 [조폭 마누라 2]는 전편의 영화적인 재미를 송두리째 버림으로써 저를 실망시키더니 기억상실증이라는 판에 박힌 이야기를 새로운 영화적 재미로 제시함으로써 또다시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도대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위해 말도 안되는 발버둥을 치는 차은진의 모습이 조폭 마누라와 소심한 남편이라는 역할 뒤집기의 묘미에 비해서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가 해낸 것인지...
결국 전편의 영화적인 재미도 잃고, 새로운 영화적인 재미도 구축하지 못한 이 영화는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라는 속설보다는 '우리나라는 속편 영화를 제대로 만들줄 모른다'라는 씁쓸함만 안겨주었습니다.
3. 온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가문의 영광]으로 2002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던 정흥순 감독은 [조폭 마누라 2]의 메가폰을 잡으며 '전편의 저질스러운 재미를 배제하고 추석을 맞이하여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연출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정녕 이 영화가 온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흥순 감독의 의도가 정말 궁금해지는 군요.
확실히 [조폭 마누라 2]는 전편에 비해서 섹스 코드와 불필요하게 난무하는 욕설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재철(박준규)과 그의 딸인 지현의 존재는 이 영화가 가족 코미디로 보이기에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이 영화는 외형적인 모습만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일뿐 그 속을 들여다보면 관객 웃기기에만 급급한 또한편의 저질 코미디일뿐입니다.
이 영화가 온가족이 볼만한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에는 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조폭 코미디 영화의 어쩔수없는 문제점인 폭력의 미화입니다. 물론 [조폭 마누라 2]처럼 가볍게 보고 즐길만한 영화에 폭력 미화가 어쩌구 저쩌구하는 판에 박은 듯한 잔소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태연하게 '온가족을 위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다'라는 정흥순 감독의 그 뻔뻔스러움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한마디하고 넘어갈렵니다.
이 영화의 주요 무대는 재개발의 위기에 몰린 대전의 한 중소 상가입니다. 이곳엔 조폭과 상가 주민간의 상하관계가 확실하게 잡혀있는 곳이며 주민들은 조폭의 횡포속에 자신의 생활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가 주민의 위기를 도와주는 이가 바로 조폭 두목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차은진이 백상어파와의 최후의 혈전을 벌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드러집니다. 백상어파와의 전쟁을 선포한 은진에게 은진의 심복인 마징가는 소득이 없는 전쟁이라고 만류합니다. 하지만 은진은 '이곳도 내 구역이다'(영화속에선 구역을 조폭들의 속어로 표현되었는데... 나와바리라고 했던가???)라며 백상어파와의 혈투를 벌입니다. 그것은 결국 조폭과 상가 주민과의 상하관계가 백상어파에서 가위파로 넘겨지는 조폭들의 세력다툼일 뿐인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현이 인질로 잡혔다는 둥, 상가 주민을 위한 일이라는 둥, 이 조폭간의 세력 다툼에 온갖 미화를 해댑니다. 이러한 미화는 교내 폭력 서클에 들어가지 않기위해 온갖 곤욕을 치루던 지현이 결국 은진의 밑에서 조폭이 되어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잘 나타납니다.
쓸데없는 흠잡기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폭 코미디에서 조폭에 대한 미화는 당연한 것일테니... 하지만 정흥순 감독님... 온가족이 즐길수 있는 코미디라는 발언은 앞으로 조심해서 해주세요. 오늘 고등학생인 사촌 동생들과 이 영화를 보며 감독님에게 정말로 짜증이 났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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