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얀 드봉
주연 : 안젤리나 졸리, 제라드 버틀러
개봉 : 2003년 8월 1일
언제나 그랬지만 올해는 특히 헐리우드의 블럭버스터중에서 속편 영화가 강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올해 썸머시즌들어서 제나 극장에서 본 속편 영화만해도 [엑스맨 2]를 시작으로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미녀삼총사 2 - 맥시멈 스피드],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등 수편에 이르며, 아직도 헐리우드는 [나쁜 녀석들 2], [분노의 질주 2]등 수많은 속편 영화로 국내 관객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은 없다'라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속편 영화들은 대부분 전편의 흥행을 뛰어넘지 못하고 관객들에게 실망만 안겨주었습니다. 그도그럴것이 전편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유지한채 스케일 키우기에만 급급하다보니 스토리는 없고 특수효과만 있는 속빈 블럭버스터의 전형을 이루기 일쑤였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관객들에겐 식상함만을 안겨준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는 꾸준히 속편 영화를 제작하고 있으며, 관객들 역시 꾸준히 속편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아이디어가 바닥이 나버린 헐리우드의 말 못할 속사정도 있겠지만, 전편의 성공으로 어느정도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의 속편을 만듬으로써 안정적인 흥행을 이루려는 장삿속도 있을겁니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검증되지 않은 영화에 비싼 극장비를 투자하기보다는 이미 전편의 성공으로 어느정도의 영화적인 재미가 검증이 된 속편 영화를 선택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겁니다.
암튼 그러한 이유로 저 역시 꾸준히 여름 극장가를 가득 채운 헐리우드 속편 블럭버스터를 거의 매주 보고 있습니다. 전편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해서 특별한 재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면서 단지 한 여름의 짜증을 잠시나마 날려버리기 위해 꾸준히 속편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전편을 통해 이미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적합한 영화라는 검증은 이미 받은 상태이며, 속편의 법칙상 전편보다 스케일과 액션의 강도가 커졌을테니 한여름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데 속편 블럭버스터만큼 적합한 영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툼레이더 2 - 판도라의 상자]를 봤습니다. 이미 2년전 라라 크로포트의 활약상을 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던 저는 2년전보다 더 큰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있으며 결국 전편보다 업그레이드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툼레이더 2]를 선택함으로써 업그레이드된 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 한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선택한 정확하게 들어맞았지만 한편으로는 올여름만큼은 이제 더이상 엇비슷한 속편 블럭버스터를 보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도 생기더군요.
일단 [툼레이더 2]는 관객들에게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처음부터 섹시한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관객들 앞에 등장한 라라 크로포트(안젤리나 졸리)는 전편보다 더욱 섹시해지고 강력한 액션으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녀가 몸에 착 달라붙은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알렉산더 대왕때 지어진 루나 신전을 찾아 잠수하는 장면에선 내 자신이 시원한 바닷속으로 깊숙히 빨려들어가는 시원함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판도라의 상자라는 영화속에서나 가능할법한 말도 않되는 전설속의 물건을 찾기위해 그리스, 중국, 아프리카 등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라라의 모험담은 이 영화의 존재의 이유를 확실하게 설명합니다.
결국 이 영화에게 '스토리가 황당하다', '진행이 짜임새없다'는 등의 불평불만은 전혀 쓰잘데기없는 짓거리에 불과합니다. 이 영화는 어차피 짜임새있는 내용 전개를 내세운 스릴러 영화가 아닐뿐더러 리얼틱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영화는 더더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은 '액션이 얼마나 시원하고 멋있었나', 혹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버릴 정도로 재미있었나'라는 물음에서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위해선 일단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이라도 판도라 상자의 존재를 믿어야 하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총알도 피해다니는 라라의 말도 안되는 액션 따위는 눈감아 줘야합니다. 그러고난다면 [툼레이더 2]는 꽤 재미있는 영화가 됩니다. 완벽하게 여전사 라라 크로포트를 연기한 안젤리나 졸리의 그 섹시하고 위험해 보이는 매력도 좋았고, 그리스의 그 장대한 바다와 홍콩의 빼곡한 빌딩숲, 킬리만자로의 자연의 위엄적속에서 펼쳐지는 각각의 액션씬이 가지고 있는 개성은 이 영화가 얼마나 훌륭한 썸머시즌용 블럭버스터인가를 증명해 보입니다.
[스피드], [트위스터]등의 영화로 액션 블럭버스터에 일가견이 있는 얀 드봉 감독은 [스피드 2], [더 헌팅]의 실패이후로 오랜만에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며 [툼레이더 2]를 완성해냈습니다.
그는 속편의 법칙에 충실하게도 전편에도 비해서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스케일과 전편에서 단지 게임 캐릭터에 불과했던 라라 크로포트의 캐릭터를 블럭버스터에 맞게끔 완벽하게 구축했으며, 테리(제라드 버틀러)라는 라라의 새로운 파트너를 새롭게 투입함으로써 영화의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전편에서는 라라의 일인극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전편에서도 분명 라라의 파트너가 있기는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존재조차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 존재감은 미미했습니다. 그만큼 안젤리나 졸리의 존재가 다른 캐릭터들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2편에서 라라의 새로운 파트너로 낙점이 된 테리는 라라만큼의 강력한 액션과 위험천만한 매력을 지님으로써 더이상 라라를 외로운 여전사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어쩌다가 영국 정부를 배신하고 범죄자가 되었는지 그 뚜렷한 동기는 알수 없어 캐릭터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암튼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한 테리는 라라의 파트너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듯이 보입니다.
전편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좀더 경쾌해진 라라의 액션도 얀 드봉 감독이 창조해낸 업그레이드된 [툼레이더 2]의 장점입니다. 전편에서 아버지가 남기고 간 트라이앵글의 비밀을 벗기는 라라의 모습은 왠지 아버지의 유물이 남기고 간 위험에서 지구를 지켜야한다는 조금은 무거운 의무감을 안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라라는 그냥 위험을 즐기듯이 기꺼이 판도라의 상자를 찾아 나섭니다. 오프닝씬에서 악당들에게 죽음을 당한 동료들에 대한 복수심도 어느순간 사라지고 단순하게 위험을 즐기는 라라의 모습만이 남습니다. 이러한 라라의 캐릭터 완성은 이 영화를 더욱 완벽한 썸머시즌용 블럭버스터로 만들어 냅니다. 어차피 시원시원한 액션을 펼칠바에야 라라에게 과거에 대한 아픔과 영웅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을 안겨줄 필요는 없는 겁니다. 이 영화는 [엑스맨]이나 [매트릭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은 의외의 결말로 치달아 절 어리둥절하게 했지만(그 결말도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니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 영화는 반전을 위한 영화는 아니니...) 암튼 단순해진 라라의 캐릭터에 대한 완성과 테리라는 새로운 라라의 파트너는 [툼레이더 2]를 게임의 영화화라는 전편에서 벗어나 휠씬 즐길만한 블럭버스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미녀 삼총사 2], [터미네이터 3]등 엇비슷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연달아 감상한 후 이 영화를 감상하고나니 예기치못한 부작용도 따르더군요. 솔직히 이 영화들은 주인공과 약간의 영화적인 성격만 다를뿐 관객들에게 영화적인 재미를 안겨주는 방식은 서로 같습니다. 특히 섹시한 미녀 세명을 내세운 [미녀 삼총사 2]와 [툼레이더 2]는 어찌나 비슷하던지... 물론 전체적인 영화의 성격은 [미녀 삼총사 2]가 더욱 경쾌하며, 액션의 강도와 스케일면에서는 [툼레이더 2]가 앞서긴 하지만 어차피 이 두 영화 모두 여자 주인공을 내세워 지금까지 나약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여성을 액션 히로인으로 내세웠으며 그와 동시에 여성의 섹시한 몸을 볼거리로 제공하는 양동 작전을 펼침으로써 영화적인 재미를 획득한 겁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툼레이더 2]를 보고나서도 자꾸 [미녀 삼총사 2]와 [터미네이터 3]와 헷갈리는 현상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아직 짜증날정도의 무더위는 분격적으로 시작도 안되었으며 회사에서 안아야할 스트레스도 채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 더이상 속편 블럭버스터를 보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의 재미도 재미이지만 영화를 보고난후 오랫동안 영화적인 재미가 느껴질 그런 블럭버스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인지... 아직 수많은 헐리우드 속편 블럭버스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뭔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는 블럭버스터를 찾는 것은 역시 지나친 욕심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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