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문생
목소리 주연 : 최지훈, 오인성, 은영선
개봉 : 2003년 7월 17일
우리나라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제게 실망만을 안겨주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블루시걸]이 그러했고, 이현세 원작의 SF 장편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이 그러했으며, 고전을 독특한 형식으로 애니메이션화한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 그러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소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헝그리 베스트 5]가 그러했습니다. 이들 영화들은 하나같이 스토리가 부실하거나 아니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맹목적인 따라하기로 인하여 독창성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었습니다. 이러한 연이은 흥행 실패는 한동안 불어닥친 국내 애니메이션의 바람을 순식간에 잠재웠고 결국 몇년동안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은 조용히 자취를 감춰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개봉된 [마리 이야기]는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인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등 해외 시장에서 먼저 극찬을 받으며 국내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게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 이야기]는 국내 흥행에서 실패함으로써 반쪽짜리 성공만을 이루는 아쉬움을 안겼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마리 이야기]의 흥행 실패는 시사하는바가 큽니다. 그것은 헐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즐겼던 국내 관객들의 입맛이 세계 비평가들보다 까다롭다는 겁니다.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의 기술력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기자기한 재미에 길들여진 국내 관객들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가 결국 우리나라의 장편 애니메이션의 과제인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봉된 [원더풀 데이즈]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기로에 선 작품입니다. 7년간의 제작기간동안 126억이라는 전대미문의 제작비가 들어간 [원더풀 데이즈]의 실패는 곧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 뻔하며 그러한 위축은 결국 세계 시장에서 점차 그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성장을 순식간에 멈추게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3D와 2D, 그리고 미니어쳐까지 사용하여 세계 최초의 멀티 메이션으로 기록될 [원더풀 데이즈]는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얻으며 꽤 높은 수출 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국내 흥행 기록입니다. [원더풀 데이즈]도 결국 [마리 이야기]처럼 반쪽짜리 성공만을 거둘 것인지... 아니면 이 영화의 광고 카피처럼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바꿀 것인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끊임없이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저로써는 정말 [원더풀 데이즈]의 흥행 기록이 궁금합니다.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며 극장을 찾은 제 첫 느낌은 일단 희망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어색한 점들이 발견되는 아쉬움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굳이 평가하자면 대체적으로 지금까지 봐왔던 우리나라의 장편 애니메이션중에서는 가장 큰 영화적 재미를 지니고 있다고 자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헐리우드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보다 재미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에 약간은 불안하기도 합니다.
[원더풀 데이즈]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쓰며 정말로 칭찬만 잔뜩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이쁜 아이에게 매 한대 더 때린다'는 심정으로 이 영화에서 느꼈던 어색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3D, 미니어쳐를 따라가지 못한 2D의 어색함...
[원더풀 데이즈]는 인물은 2D로, 배경은 3D로, 그리고 건물과 소품은 미니어쳐로 완성한 '멀티 메이션'입니다. 일단 이러한 시도에 대한 독창성을 [원더풀 데이즈]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정교하고 웅장한 3D와 미니어쳐에 비해서 2D로 그려진 인물의 모습은 예전의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스토리의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판타지]가 제게 인상깊었던 이유는 바로 사람보다 더욱 사람같은 3D로 창조한 영화속 캐릭터들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보다 더욱 사람같은 영화속 캐릭터들의 그 섬세한 표정 하나하나가 제겐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저런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원더풀 데이즈]는 오히려 인물 묘사에서 눈에 띄는 기술력 향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3D로 표현한 배경이 너무나도 환상적이었으며, 미니어쳐로 표현된 건물의 정교함이 상상이상이어서 오히려 인물묘사가 어색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배경과 건물에 비해서 인물의 묘사에 어색함이 느껴진다면 관객의 영화에 대한 몰입은 방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애초에 인물 묘사를 3D로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혹시 '멀티 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고싶은 욕심때문에 굳이 인물 묘사를 어색한 2D로 한 것은 아닌지...
2. 더빙에 대한 어색함...
지금까지 저는 애니메이션은 자막을 보는 것에 익숙했었습니다. 헐리우드의 애니메이션이 가끔 우리말 더빙으로 개봉되기는 했지만 우리말 더빙은 어린이용으로 치부하며 절대 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습관이 이 영화의 우리말 더빙에서 어색함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암울한 배경과 비극적인 분위기속에서 캐릭터들이 우리말로 대사를 하니 어찌나 어색하던지... 물론 그러한 어색함을 우리나라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적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고려할지라도 이 영화의 더빙은 분명 어색합니다.
헐리우드의 애니메이션의 경우 전문 성우가 아닌 스타급 연기자들이 더빙을 맡아도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최근에 개봉된 [신밧드 - 7대양의 전설]이 가장 좋은 예일겁니다. 브래드 피트, 캐서린 제타 존스, 미셀 파이퍼 등 더빙 경험이 전무한 배우들이 더빙을 맡은 이 애니메이션은 그러나 마치 그들의 목소리가 영화속 캐릭터의 목소리인양 너무나도 어울렸습니다. 그것은 더빙을 맡은 배우들이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목소리에 맞춰 영화속 캐릭터들의 입모양을 맞춘 그 섬세한 노력 덕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더풀 데이즈]는 전문 성우가 더빙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속 캐릭터들과 목소리의 주인공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입모양도 가끔 따라노는 것 같고, 목소리와 캐릭터의 성격이 잘 부합되지 않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어색햇던 것은 어린 캐릭터들의 목소리입니다. 나이 많은 성우가 아이 목소리를 낸 것인지, 아니면 진짜 어린 성우를 데려다가 더빙을 시킨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린 캐릭터가 나와 대사를 할때마다 그 어색함에 귀를 막아버리고 싶더군요.
좀더 세세한 곳에서 관객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했으면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너무나도 뻔한 캐릭터들에 대한 어색함...
오염된 지구... 그러한 오염을 먹고 자라는 도시 에코반... [원더풀 데이즈]는 분명 독창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하이랜더 3]의 스토리와 조금은 비슷한듯이 보이지만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를 내놓았던 이전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한다면 [원더풀 데이즈]의 스토리는 분명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러한 독창적인 스토리위에 앉아있는 캐릭터들은 전혀 독창적이지 못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수하(최지훈), 제이(은영선), 시몬(오인성)의 삼각관계는 [원더풀 데이즈]의 독창적인 스토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뻔한 설정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장 TV를 켜면 이 영화속의 삼각관계와 너무나도 비슷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는 TV 드라마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아름답고 청순한 여주인공이 있고, 그녀가 사랑하는 남주인공이 있고, 멋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겉보기엔 완벽하지만 내면의 세계에 삐툴어짐을 지니고 있는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악역 남자 조연이 있고... 이러한 삼각관계는 끝이 뻔히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원더풀 데이즈]는 바로 이러한 뻔한 삼각관계를 영화속의 갈등구조로 삼은 겁니다.
이 영화의 선악 구조 역시 너무나도 뻔합니다. 에코반의 에너지원인 오염물질을 배출하기위해 마르를 불태우려는 에코반의 실세인 부관의 그 극단적으로 비툴어진 모습은 이 영화의 선악 구조가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주는 한 예일겁니다. 헐리우드의 그 뻔한 블럭버스터에서 조차도 악역에게 무조건적인 악당의 이미지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자부심, 혹은 악당이 될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동정심을 심어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더풀 데이즈]는 7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때문인지 예전과 같은 흑백논리에 의한 극단적인 선악구조를 보여준 겁니다.
최소한 이 영화는 부관에게 그 뺀질뺀질한 미소보다는 '에코반을 위해...'라는 잘못된 충성심에 사로잡힌 굳은 신념을 심어줘야 했습니다. 시몬에게도 수하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를 죽이려했던 어이없는 과거보다는 현재의 질투심에 중점을 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독특한 상황설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뻔한 캐릭터 설정과 그에 따른 삼각관계를 제시함으로써 독특한 스토리 전개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웠던 점을 나열하다보니 마치 제가 이 영화에게 엄청나게 실망한 듯한 모양새군요. 하지만 분명 이 영화는 아쉬웠던 점도 많았지만 희망적인 부분도 많았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3D장면은 우리나라도 결코 헐리우드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미래 도시에 대한 그 독창적이고 섬세하며 스펙타클한 장면들... [원더풀 데이즈]는 분명 우리나라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약간은 어색했던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러한 점들을 점차 개선하며 좀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간다면 분명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세계 시장에서 결코 뒤떨어지지않을 경쟁력을 지니게 될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 관객들의 몫입니다. [원더풀 데이즈]를 보고 발전적인 쓴소리를 하며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함께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애니메이션은 안돼'라며 애초에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인지... 그건 여러분들의 선택입니다.
IP Address : 211.211.3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