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3년 영화이야기

[헐크] -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답지않은 블럭버스터.

쭈니-1 2009. 12. 8. 16:17

 



감독 : 이안
주연 : 엘릭 바나, 제니퍼 코넬리, 닉 놀테
개봉 : 2003년 7월 4일

제가 초등학교때 (아마도...) TV외화 시리즈 [두얼굴의 사나이]는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였습니다. 평소엔 착하고 온순하다가도 화가나면 괴력의 사나이 헐크로 변해서 악당들을 무찌르는 브루스 배너의 모험담은 당시엔 [슈퍼맨], [원더우먼],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등등 TV 브라운관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하던 초인적인 영웅중의 하나였으며, 저는 나중에 커서 그러한 영웅들의 되겠다는 다분히 어린아이다운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십년이 흐른 지금 저는 이제 성인이고 한 가정을 이룬 가장이 되었습니다. 초인적인 영웅이 되고 싶다는 어렸을때의 꿈은 단지 추억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사회라는 전쟁터속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일을 하며 보내고, 제가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단란한 가정은 단지 잠을 자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회사에서 일을하며 돈을 버는 우리 시대의 가장들... 그러나 가정을 위해 시작된 직장 생활은 오히려 과다한 업무로 인하여 가정에 소홀하게 만드는 모순을 안겨주었습니다.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하여 가정을 소홀하게끔 만드는 그러한 모순된 회사에 분노하면서도 돈을 벌기위해서라는 명분아래 분노를 참아야만 하는 무한 경쟁 시대의 가엾은 가장들... 저도 그러한 가장의 반열에 이제 막 들어섰고, 결혼하기전처럼 아무런 미련없이 회사보다는 내 개인의 삶을 선택했던 그때와는 달리 회사라는 공간을 끔찍히도 싫어하면서 안짤리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만 합니다.
이러한 제 개인적인 우울한 시기에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로 다시 태어난 [헐크]는 제게 의미하는바가 깊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영웅에 대한 꿈은 잊은지 오래된 제게 분노를 참지 않고 세상의 불의로부터 맘껏 분노를 표출하는 헐크의 모험담은 요즘처럼 분노를 마음속 깊이 감추며 어깨를 움추리고 회사를 다녀야하는 제겐 어린 시절의 순수한 여유로움을 잠시나마 느끼게해주는 소중한 기회인 듯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린 시절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으로 [헐크]를 보았으며, 그 영화에 제가 바란 것은 사회에대한, 회사에대한 분노를 바깥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제게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쾌감같은 것이었습니다.        


 



[헐크]에 대한 나의 기대가 이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이 영화에 바란 것은 '헐크가 얼마나 화끈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인가'였습니다. 저는 다른 헐리우드 블럭버스터가 그러하듯이 [헐크]에게 화끈한 액션과 화려한 특수효과를 원했던 겁니다. 그러나 제가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감독이라는 명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안 감독이라는 것입니다.  
이안 감독... 그의 이력을 본다면 그가 블럭버스터적인 감각을 보인 영화는 [와호장룡]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와호장룡] 역시도 헐리우드의 블럭버스터와는 전혀 다른 블럭버스터였습니다. [와호장룡]의 그 동양적인 감각을 지닌 유려한 액션씬은 헐리우드안의 동양인이라는 이안 감독의 특수성이 빚어낸 독특한 액션이었으며, 그렇기에 [와호장룡]의 블럭버스터적인 감각은 헐리우드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동양적이었습니다.
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들을 살펴본다면 초기 영화들은 대부분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등 동양의 정서가 가득 묻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센스, 센서빌리티]를 시작으로 [아이스 스톰]을 경우하며 이안 감독은 점차 서양적인 정서에 가깝게 다가섰으며 [와호장룡]을 거쳐 급기야 헐리우드의 주류 장르인 액션 블럭버스터 [헐크]에 이른 겁니다.
하지만 [헐크] 역시도 완벽한 헐리우드식 블럭버스터는 아닙니다. 이안 감독이 스스로 밝힌바와 같이 그는 [헐크]에 동양적인 정서를 함유하려 노력했으며 그러한 그의 노력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갈등이라는 극한의 스토리가 빚어냈습니다. 그러한 갈등은 [헐크]를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안 감독이 그렇게 동양적인 정서를 함유하며 [헐크]를 다른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와는 다른 차별성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헐크]는 어쩔수없이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라는 점입니다. 이렇듯 이안 감독의 비헐리우드 블럭버스터로의 노력과 [헐크]라는 소재 자체에서 묻어나오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다운 면모는 처음부터 충돌을 하며 이 영화를 아주 이상한 영화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스파이더 맨], [엑스맨], [데어데블] 등 [헐크]와 출신 성분이 같은 다른 마블의 영웅들이 아무리 예전의 초인적인 영웅과는 달리 내적 갈등을 겪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도 헐리우드의 블럭버스터다운 면모를 보이며 화끈한 액션과 화려한 특수효과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헐크]는 영화의 초반엔 헐크가 등장하게된 배경을 설명하기위해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의 과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관객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헐크가 등장한 이후에도 화끈한 액션보다는 아버지에 의한 과거의 상처와 베티 로스(제니퍼 코넬리)와의 사랑이라는 가슴아픈 사연을 꺼내듬으로써 블럭버스터적이지 않은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지루합니다. 영화의 초반엔 브루스 배너의 과거에 집착을 하고, 영화의 후반엔 브루스 배너의 사랑과 갈등에 촛점을 둡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헐크와 군대와의 대결전 역시 블럭버스터다운 웅대하고 화려함 보다는 뭔가 어색하고 빠진 듯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헐리우드의 최고 특수효과팀이라는 ILM이 창조해낸 [헐크]의 특수효과가 어색하다니... 솔직히 그건 의외였습니다. 멸종된 공룡마저도 완벽하게 스크린 속으로 부활시켰던 이 전설적인 특수효과팀은 그러나 [헐크]에서는 뭔가 일부러 관객들에게 어색함을 느끼도록 한 것과 같은 이상한 특수효과를 보여줍니다.
브루스 배너가 분노할때 변하는 헐크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뭔가 굉장하고 웅대한 존재를 만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헐크의 모습은 왠지 동정심이 느껴질 정도로 불안전해 보이는 초록색 땅딸막한 괴물에 불과합니다. 헐크의 능력은 마치 하늘을 날듯이 공중위로 점프를 하고 탱크의 포탄을 손으로 막으며 전투기에 올라타 공기가 없는 극한의 대기위에서 추락해도 끄덕없을 정도로 막강해 졌지만 그의 그러한 능력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보며 느꼈던 후련함과 웅장함과는 거리가 먼 왠지 어색함... 바로 그것입니다. (헐크가 공중으로 날듯이 점프를 할때 관객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던 웃음소리...) 이러한 특수효과의 어색함이 의도된 것이라면 그것은 특수효과라는 웅장한 힘에 밀려 자신이 표현하고자했던 동양적인 감각이 감춰지는 것을 두려워한 이안 감독의 욕심 탓일 겁니다.


 



게다가 이 영화엔 제가 그토록 원했던 대리 만족에 의한 쾌감도 없습니다. 헐크가 괴력의 힘을 발휘하며 군대를 초토화시키고 샌프란시스코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도 그것은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탈출하고자하는 브루스 배너의 힘겨운 노력일뿐 악의 응징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엔 처음부터 악이라는 영웅담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없습니다. 브루스의 아버지이며 브루스의 끔찍한 과거 기억에 대한 주범이기도한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는 악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신의 경지에 도달하기위해 자기 자신에게 인체 실험을 한 데이비드는 가련한 과학자에 불과하며 브루스의 과거를 지배하며 브루스에게 헐크라는 원치않는 존재를 안겨주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주인공의 아버지라는 설정은 그를 악이 아닌 갈등의 존재로 만들어 버릴뿐입니다.  
브루스를 시종일관 괴롭히는 미국방성의 고위 관료이며 베티의 아버지인 썬더볼트(샘 엘리엇) 역시 그가 딸을 지키기 위해서 헐크에 맞선다는 이유로 악이라기 보다는 권력을 가졌으나 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한 불쌍한 아버지에 불과합니다. 이 영화에서 악당이라고 할만한 캐릭터는 돈만 밝히는 군 출신 연구가 글렌 탈봇(조쉬 루카스)이지만 그는 헐크와 대적하기엔 너무 미약한 존재였으며 영화의 중반 어이없이 죽어버립니다.
이러한 까닭에 이 영화는 다른 슈퍼 영웅들과는 달리 악의 부재를 겪었으며 악의 존재가 없는 영웅은 이미 영웅이 아니듯이 헐크 역시 영웅이라기보다는 위험한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그렇기에 이 영화는 악의 응징에 의한 대리만족 따위는 없습니다.
이렇듯 [헐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 영화의 차별성은 제가 이 영화에 기대했던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안 감독이 가장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적인 소재를 통해서 가장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답지 않은 영화를 만들으려 했다면 이 영화는 일단 성공한 셈입니다. [헐크]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에선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블럭버스터이니까요. 하지만 그 성공의 이면엔 저처럼 [헐크]에 기대했던 그 모든 것을 얻지못하고 아쉬워하는 관객이 있음을 잊지말아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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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
헉......두얼굴의 사나이가 TV시리즈로두 방송했군요
전 슈퍼맨밖에 TV토요일인가 밖에 못본세대.....
근데 스토리가 참괞찮네요 변신해서 부시고 화끈한영화
 2003/07/08   
남자
오 역시 리뷰 참 맛깔스럽게쓰십니다^^
저의 조촐한 리뷰란..커헙
 2003/07/09   
쭈니
나루님... 연세가??? ^^ 제가 알기로는 [슈퍼맨]과 [두얼구의 사나이]는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걸로 아는데... 아닌가??? ^^;
남자님... 조촐한 리뷰리니요... 전 남자님의 리뷰가 너무 좋은데... 진심입니다. ^o^
 2003/07/11   
아랑
영화프로에서 헐크 제작과정을 보여주더군요.
헐크의 화난 동작 그리고 표정등.. 모두 이안감독의 연기를 컴퓨터로 헐크에게 입힌거더라구요.
 2003/07/14   
나루
그래요.....몰라서요 같은시기에 나왔다니 대학생(21)아마두 저희집에는 슈퍼맨만 나온것같네요...
근데 헐크 정말 대단하다...
 2003/07/14   
쭈니 아랑님도 블럭버스터에 대한 관심이 많군요.
그런것도 챙겨 보시고... ^^
나루님... 이제 21살??? 오호~ 그렇다면 당연히 헐크를 모를수밖에요.
슈퍼맨과 헐크는 비슷한 시기에 방영이 되긴 했지만 슈퍼맨의 인기가 높아서 새로운 버전과 재방송이 계속 진행되었으니까요.
 2003/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