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백운학
주연 : 김석훈, 박상민, 배두나
개봉 : 2003년 6월 6일
작년 한해는 한국식 블럭버스터에겐 재앙과도 같은 한해였습니다. [아 유 레디?], [예스터 데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등 소위 말하는 우리영화의 3대 재앙이라 일컬어지는 블럭버스터의 흥행 실패는 우리 영화 산업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거대한 자본과 한단계 진보된 기술력을 선보였던 블럭버스터들이 왜 관객에게 철저한 외면을 당해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가장 큰 이유는 블럭버스터를 이끌어나갈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스타 배우의 부재 탓도 상당부분 차지합니다.
헐리우드의 경우 그 이름만으로도 최소한 몇천달러의 흥행이 보장이 되는 스타 배우들이 수두룩 합니다. 물론 그러한 스타 배우들의 몸값은 우리나라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2천만달러를 상회하기도 하지만 영화 제작사의 입장으로선 그래도 남는 장사를 할 수 있기에 그들의 이름을 믿고 제작비가 1억달러가 넘는 영화들을 매해 수십편씩 제작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헐리우드는 수십편의 블럭버스터를 제작함으로써 나날이 블럭버스터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갈 수 있었으며, 결국 세계 영화계를 장악할 수도 있었던 겁니다. 결국 스타 배우와 블럭버스터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흥행 불패로 일컬어지던 한석규만이 그 이름값을 유지하고 있을뿐 이러한 흥행 보증수표라 불리울만한 배우들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한석규도 오랜만에 영화 복귀작인 [이중간첩]의 흥행실패로 그 위치가 그리 안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된 [아 유 레디?]와 [예스터 데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100억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스타급 주연 배우의 부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신인급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실패를 거둔 [아 유 레디?]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물론이고, 김승우, 최민수, 김선아, 김윤진 등 나름대로 호화 캐스팅으로 제작된 [예스터 데이] 역시 출연 배우들의 이름에 중량감을 떨어지면서 역시 제작비를 반도 건지지 못하는 처참한 실패를 거두고 말았습니다.
올해 개봉된 블럭버스터 [블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아 유 레디?], [예스터 데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 배우의 중량감 부족으로 흥행 실패를 거두고 말았습니다. 신현준은 [비천무]의 기대에 못미치는 흥행성적에서 보듯이 아직 흥행보증수표의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었으며, 신은경 역시 [조폭 마누라]의 폭발적인 흥행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직 블럭버스터의 흥행을 책임질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국내 영화 산업의 성장과 함께 끊임없이 성장하는 세련된 특수효과 기술과 탄탄한 시나리오의 확보에도 불구하고 스타급 배우의 부재는 우리나라의 블럭버스터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뒤늦게 개봉되어 올여름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과 한판 대결을 선언한 [튜브]는 그렇기에 제겐 흥행 성공의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 역시 그 이름만으로도 매력을 느낄만한 스타의 부재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김석훈은 TV 드라마인 '홍길동'의 이미지를 아직 벗지 못한 상태이며, 박상민은 데뷰작인 [장군의 아들] 시리즈 이후 뚜렷한 성공작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이미 한물간 배우라는 인식이 깊습니다. 게다가 배두나는 배우로써의 역량은 돋보이지만 출연 영화마다 흥행 실패를 거둠으로써 흥행 배우보다는 연기파 배우라는 선입견이 듭니다. 그러한 선입견은 영화의 흥행에 도움보다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주연 배우만 놓고본다면 [튜브]는 영락없이 제 2의 [예스터 데이]입니다. 과연 [튜브]는 이러한 스타급 배우의 부재를 어떻게 메꿔나갈지...
하지만 [튜브]는 다른 실패한 블럭버스터 영화와 비교해볼때 분명 영화적인 재미가 상당한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일단 이 영화는 어처구니없는 SF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 제겐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명 우리나라의 특수효과 기술이 눈에 띄게 성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수십년의 노하우를 지닌 헐리우드 영화를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며, 이러한 헐리우드 SF 영화를 보며 눈높이를 맞춘 우리 관객을 만족시키기에도 역부족입니다. [아 유 레디?]의 그 어처구니없는 환타지 어드벤처 장르가 그렇고, [예스터 데이]의 근미래의 풍경이 그러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역시 분명 액션만 놓고본다면 그 화려함에 박수를 칠만도 했지만 허술한 시나리오와 게임의 세계를 그려낸 허술한 특수효과는 관객에게 실망만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튜브]는 블럭버스터라면 SF 영화만을 생각하는 우리 영화계의 풍조에 일침을 가하며 허황된 SF 보다는 현실의 세계에 카메라를 비춰냄으로써 일단 공감이 될만한 블럭버스터를 만들어내는데에 성공합니다. 삼풍 백화점과 성수 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우리나라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영화보다도 더욱 영화같은 상황이 안타깝게도 수두룩 합니다. [튜브]는 일단 이러한 현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다른 실패한 블럭버스터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겁니다. 물론 우연하게도 이 영화의 내용과 비슷한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하여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현실의 세계를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스타급 배우의 부재를 현실감넘치는 영화의 배경으로 메꾸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설정은 제가보기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일단 현실의 세계에 포커스를 맞춘 [튜브]의 전략은 '헐리우드 영화 따라하기'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백운학이 스스로 밝히듯이 이 영화는 영락없이 [스피드]의 한국판입니다. [스피드]가 그러했듯이 [튜브] 역시 멈출수 없는 스피드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잡아냈으며, [스피드]의 스피드가 버스였던 것에 비해 [튜브]는 지하철의 스피드를 모티브로 삼으로써 거의 10여년전 영화인 [스피드]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스피드감을 관객에게 전해줍니다.
[튜브]에서 발견되는 헐리우드 영화는 [스피드]뿐만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장도준(김석훈)은 [다이하드]의 존 맥클라인(브루스 윌리스)을 닮았습니다. 물론 가슴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장도준의 캐릭터 성격탓에 존 맥클라인보다 더 히피적이며, 저돌적이고, 그렇기에 더욱 죽도록 고생하며 사건을 해결하기는 하지만 장도준에게서 존 맥클라인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장도준에 맞서는 테러리스트 강기택(박상민)은 [더 록]의 허멜 장군(에드 해리스)를 닮았습니다. 물론 강기택은 허멜보다 더욱 악독하고 가슴에 사무친 원한이 깊지만, 국가에게 배신당하고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를 벌인다는 설정으로인하여 [더 록]의 허멜 장군에게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듯이 보입니다.
이렇게 헐리우드의 성공한 블럭버스터 따라하기를 선언한 이 영화는 하지만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영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한 블럭버스터 [쉬리]입니다. 백운학 감독이 [쉬리]의 조연출 출신이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영화를 보기전에 눈치를 챘지만 이 영화의 전체적인 영화의 스타일은 영락없이 [쉬리]입니다. [스피드], [다이하드], [더 록]등 일련의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이 액션에 촛점을 맞추며 사랑은 단지 양념으로 살짝 곁들이는 것에 반에 [튜브]는 장도준과 송인경(배두나)의 사랑을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설정함으로써 [쉬리]의 유중원(한석규)과 명현(김윤진)의 사랑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튜브]는 블럭버스터 영화로는 드물게 권오중과 임현식을 주연급 조연으로 배치함으로써 코미디의 형식을 띄우기도 하고, 자주 사용되는 음악과 감각적인 카메라 테크닉으로 인하여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도 합니다. 이렇듯 [튜브]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셈입니다.
결국 [튜브]는 [쉬리]의 기본 골격안에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차용과 코미디, 뮤직 비디오등 새로운 시도를 혼합함으로써 한국형 블럭버스터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려는 노력의 흔적을 여러 군데에 남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 매력을 느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분명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능가하는 액션씬과 한국형 블럭버스터를 살리려는 새로운 시도들도 제겐 이 영화의 재미를 느끼게 했지만, 그보다도 영화속에 표현된 평범한 사람들의 그 평범한 영웅담이 제겐 가장 마음에 와닿습니다.
장도준과 강기택의 결전의 장소인 폭주하는 지하철... 분명 이 공간은 우리나라의 블럭버스터의 미래가 밝다고 감히 단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제게 그보다 더욱 매력적인 공간은 대형 참사를 막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하철 중앙통제실의 풍경입니다.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위해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키려는 한 정치가의 압력에 맞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간인 이 지하철 통제실은 제겐 장도준과 강기택의 결투가 벌어지는 폭주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보다도 더욱 가슴에 와닿았으며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강기택이 최후를 맞이하고 장도준과 지하철 중앙통제실에서 폭주하는 지하철을 세우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부터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영화의 초반엔 헐리우드 영화를 뛰어넘는 액션씬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마지막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찡한 영웅담으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힘을 발휘한 겁니다.
[튜브]를 블럭버스터의 기준에서 점수를 매긴다면 제겐 80점 이상이라는 높은 점수입니다. 이 영화가 부족한 것은 스타급 배우와 블럭버스터에 대한 오랜 경험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단시일내에 이룰 수 없는 것들이기에 결국 [튜브]는 한국형 블럭버스터로써 영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국내 흥행에서 실패라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만큼 우리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튜브]를 보러가기엔 헐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하는 블럭버스터의 매력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이 영화가 무조건 흥행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유 레디?], [예스터 데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시나리오의 부실함과 허황된 SF의 실패는 저로써도 안타깝지만 어쩔수 없는 일임을 압니다. 하지만 최근에 흥행에서 실패한 [블루]와 [튜브]의 실패는 아무리 탄탄한 시나리오와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나라 블럭버스터는 안된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관객 점유율이 50%를 상회하는 이 상황에서 우리 영화들이 전부 제작비가 적고 비교적 안전한 코미디 영화에만 집중된다면... 결국 우리나라도 홍콩 영화계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재미없는 블럭버스터는 그 스스로 도태되도록 놔두더라도 어느정도 영화적인 재미를 갖춘 블럭버스터는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괜찮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제작사들은 블럭버스터를 제작하려 들것이며, 그것은 곧바로 블럭버스터에 대한 노하우를 쌓게 하고, 우리 영화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길러주며, 헐리우드라는 거대한 공룡에 맞서 지속적인 관객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영화가 코미디 일변도로 향한다면 우리영화의 미래는 불보듯이 뻔합니다. 물론 이러한 제 생각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튜브]를 보며 이렇게 영화적인 재미를 지닌 블럭버스터마저 흥행에서 참패를 당한다면 앞으로 우리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생각해 보니 가슴이 답답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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