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리차드 커티스
주연 :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로라 리니, 키라 나이틀리, 엠마 톰슨
개봉 : 2003년 12월 5일
관람 : 2003년 12월 5일
어느새 겨울입니다. 티셔츠와 가죽잠바만을 입고 외출했던 저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며 어느새 가을이라는 계절이 훌쩍 떠나버리고 겨울이 찾아왔음을 느낍니다. 겨울엔 우리 웅이의 태어난지 100일째 되는 날이 있으며, 구피의 생일과 제 생일도 있습니다. 결혼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도 올 겨울을 기다리고 있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2003년의 마지막날도 절 가슴설레이게 합니다. 제 친구중에 겨울이 생일인 친구만 무려 3명이나 되고, 신정과 구정이라는 명절도 겨울엔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그야말로 결혼해서 처음 맞이하는 올 겨울은 정신없이 보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겨울의 묘미는 영화들입니다. 제 생애 최고의 스펙타클 블럭버스터였던 [반지의 제왕]이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으로 올 겨울에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며, 디즈니와 드림웍스등의 애니메이션도 지난 여름보다 올 겨울에 풍성하게 개봉될 태세입니다. 이때쯤 개봉되는 헐리우드 영화들은 아카데미를 겨냥하여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영화들이 대부분이기에 흥행성만을 내세운 썸머시즌 블럭버스터보다도 그 영화적 재미는 오히려 더욱 풍성합니다.
하지만 역시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는 추운 날씨를 단번에 녹여버리는 가슴 따뜻한 로맨틱한 영화들입니다. 지난 금요일 구피와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에 갔을때도 실컷 웃을 수 있는 우리 코미디인 [낭만자객]보다, 헐리우드의 초대형 블럭버스터인 [마스터 앤드 커맨더]보다, 왠지 봐야만 할것같은 의무감이 드는 우리 블럭버스터 [천년호]보다, 더욱 제 이목을 끈 것은 영국의 소박한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액츄얼리]입니다. 휴 그랜트를 제외하고는 스타급 배우보다는 연기파 배우들로 가득 메운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력적인 영화보다도 더욱 절 매혹시켰습니다. 단지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말입니다.
[러브 액츄얼리]는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주인공이 따로 없는 영화입니다. 지금까지의 로맨틱 영화들이 두명의 선남선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알꽁달꽁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했던 것에 비해 이 영화는 무려 10여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을 무더기로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똑같이 동등한 시선을 분배하며 그들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를 잡아냅니다.
솔직히 이러한 영화적인 방식은 [러브 액츄얼리]가 처음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거장인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숏컷], [패션쇼]등의 영화를 통해 여러명의 등장인물들을 한꺼번에 등장시키고 누가 주인공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들에게 동등한 시선을 나눠주고는 원하고자 하는 주제에 도달했으며, [부기 나이트]로 미국의 새로운 거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폴 토마스 앤더스 감독도 [매그놀리아]를 통해 로버트 알트만식의 영화적 접근을 시도하여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평론가들에게 인정을 받았을지언정 관객들에겐 지루함만 안겨주었습니다. 제 경우도 [숏컷], [패션쇼], [매그놀리아]를 화려한 출연 배우에 혹해서 보았다가 감기는 눈을 겨우 참으며 그 기나긴 영화의 러닝타임을 참아냈으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도대체 이 영화가 그 수많은 등장인물을 내세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로버트 알트만과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책임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명 또는 많아야 세명정도의 영화속 주인공에 촛점을 맞춰 영화를 보는 것이 익숙했기에 주인공이 여러명인 아니 아예 주인공 자체가 없는 이런 영화들을 즐길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러브 액츄얼리]는 다릅니다. 물론 이 영화는 [숏컷], [패션쇼], [매그놀리아]등처럼 주제 자체가 어려워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아주 보편적이며 관객들이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한 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여러명이며 그들에게 골고루 영화의 촛점을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영화적인 재미도 유지합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위대한 점이며 흔하디 흔한 로맨틱 코미디속에서도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입니다.
이렇게 여러명의 등장인물에게 동등한 시선을 분배하는 이 영화는 여러 등장 인물만큼이나 여러 사랑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영국의 수상(휴 그랜트)과 그의 발랄한 여비서 나탈리의 사랑, 여자친구의 외도를 목격하고 실의에 빠진 소설가 제이미(콜린 퍼스)와 포르투칼인 가정부 오렐리아의 사랑, 절친한 친구의 부인인 줄리엣(키이라 나이틀리)을 사랑한 마크의 이룰수 없는 사랑, 매니저의 진실된 우정을 깨닫게되는 늙은 락가수의 사랑, 어린 아들의 짝사랑을 코치하며 아들과의 벽을 허무는 새아빠 대니얼(리암 니슨)의 아들에 대한 사랑, 남편의 외도에 가슴아파하며 그를 용서하는 캐런(엠마 톰슨)의 사랑 등등... 이 영화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룰수 없는 금지된 사랑, 어린 아이들의 순진한 사랑과 가족간의 사랑, 진정한 친구와의 사랑등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유쾌하게 또는 가슴 아프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2시간정도의 러닝타임동안 스토리 라인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릴수도 있었지만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이를 잘 조율합니다. 아마도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등 일련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시나리오 작가로의 재능을 훌륭하게 발휘했던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하나의 로맨틱 코미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이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짧막하지만 사랑의 기운을 관객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을만큼 잘 조리하여 [러브 액츄얼리]라는 영화 한편속에 효과적으로 버무려 놓습니다.
하나의 에피스도를 보고 있으면 그 에피소드에 빠지면서도 다른 에피소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로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여러명의 배우들에게 그들의 이미지에 가장 잘 맞는 캐릭터를 분배하고, 관객의 시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완벽한 시나리오를 구축한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수편의 로맨틱 코미디를 하나의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영화적 재미를 잃지 않는 놀라운 재능을 선보인 겁니다.
1년에도 수십 수백편의 로맨틱 코미디가 제작되며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엇비슷한 스토리 라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이 놀라운 재능은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를 뛰어넘음과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냅니다. 그의 능력에 놀랄 따름입니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놀라운 재능은 이 영화의 수많은 주연 배우들의 면면에서도 여지없이 증명됩니다.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엠마 톰슨, 콜린 퍼스 등등 이 영화의 출연 배우들은 이미 영화 배우로써의 명성을 획득한 스타급 배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스타급 배우들이 하나의 영화속에 등장하다보면 영화의 스토리 라인과는 별도로 영화가 정신없이 혼란스럽게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명 배우든 스타급 배우든 이 영화속 수많은 주연 배우들은 각자의 역활에 충실하며 영화속 에피소드를 잘 이끌어나가며 그러하기에 관객의 시선도 이 영화속 각각의 에피소드에 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었던 겁니다.
비록 TV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선 이 영화를 소개할때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라 일컬어지는 휴 그랜트의 에피소드인 수상과 여비서의 사랑에 중점을 두고 소개를 했으며, 영화를 보러오는 대부분의 관객들 역시 휴 그랜트라는 이름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있으면 휴 그랜트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다른 에피소드에 균등하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러한 점이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의 성찬이라는 찬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 세상 어느곳에서도 사랑은 있다'라는 이 영화의 주제는 그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능력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그 주제를 관객에게 전파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의 표현을 보여주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 영화속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저도 제 주위에 널려있는 사랑 찾기에 분주했답니다. 두 손을 꼭 잡고 극장을 나서는 연인들의 표정, 친구들끼리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나오며 애인이 없음을 한탄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저와 함께 극장을 나선 구피의 표정에서도 저는 사랑을 발견합니다. 정말 이 영화의 주제대로 사랑은 언제나 어느곳에서나 존재하나 봅니다.
P.S.1. 영화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영화와 음악이 잘 어울리는 영화를 보지 못했답니다. 결국 저는 제 용돈을 쪼개어 거금 1만 2천 5백원을 들여 결국 이 영화의 O.S.T.를 사고 말았습니다. 어서 이 영화의 O.S.T.를 들으며 영화속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군요.
P.S.2. 영화를 보면서 '미스터 빈'은 언제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이 엉뚱한 배우 로완 앳킨스가 과연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어떠한 역활을 할 수 있을런지... 그런대 역시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이 엉뚱한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로완 앳킨스에게 안겨주었더군요. 비록 기대했던 로맨틱 연기는 아니었지만 그로인하여 영화속 재미는 더욱 풍부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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