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숀 레비
주연 : 애쉬튼 커처, 브리트니 머피
개봉 : 2003년 3월 7일
요즘 결혼을 앞둬서인지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자꾸 눈에 뜁니다. [디 아워스]는 결혼이라는 구속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였으며, [국화꽃 향기]는 결혼이라는 행복을 남겨두고 죽음으로 서로 헤어져야만 했던 어떤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였고, [어바웃 슈미트]는 나이가 들어서 모든 것을 다 잃은 남자가 딸의 결혼을 막기위해 벌이는 무용담입니다. 그리고 며칠전에 본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는 신혼 여행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이며, 조만간 볼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서로 다른 결혼 풍속을 가진 남녀가 이어지기까지의 유쾌한 소동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제가 모든 영화를 결혼이라는 단어에 연결하며 보는 것인지, 따스한 봄날에 극장가에서 상큼한 사랑 이야기를 내걸다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주제와 닿게 된것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요즘 영화를 볼때나 안볼때나 제 머리속에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항상 맴맴 돌고 있답니다.
최근에 본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중에서 단연 제 이목을 집중시킨 영화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입니다. 행복한 신혼 생활의 꿈에 젖어 있는 제게 [디 아워스]는 너무나도 무서운 영화였고, [국화꽃 향기]는 너무나도 서글픈 영화였습니다. 이 두편의 영화를 놓고 본다면 결코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 싫어질 정도입니다. [어바웃 슈미트]의 경우 앞의 두 영화보다는 경쾌하지만 결혼할 딸을 둔 중년 남자가 주인공이다보니 주소재가 결혼이 아니고 중년 남자의 자아찾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엄밀히 말한다면 [아바웃 슈미트]는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볼 수가 없겠군요.
하지만 결혼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제목에 들어간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와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다릅니다. 본격적으로 결혼을 소재로한 영화이며,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이기에 신혼의 달콤함을 꿈꾸는 제게 너무나도 제격인 영화였습니다. 아직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보지 않았기에 뭐라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는 결혼을 앞두고 연인끼리 한번 볼만한 영화인 듯 싶습니다.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는 신혼 여행지에서 달콤한 신혼 부부가 아닌 철천지 웬수가 되어 돌아온 톰(애쉬튼 커처)과 사라(브리트니 머피)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곧이어 그들이 어쩌다가 한참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시기에 그토록 관계가 악화되었는지 지켜보라며 관객들을 톰과 사라의 신혼 여행에 동참을 시킵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처음부터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 차별을 둡니다. 남녀의 만남으로 영화를 시작하여, 그들이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영화를 끝내는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이 영화는 이들이 사랑을 하게되는 과정을 거의 삭제해 버립니다. 톰의 독백속에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만 아주 짧막하게 설명될뿐 그들이 어쩌다가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처리해 버립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그들이 서로 다른 환경을 딛고 결혼에 골인하는 고단한 과정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부잣집 막내 딸인 사라와 가난하지만 자존심만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센 심야 라디오 DJ 톰이 만난만큼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가족들의 반대와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이야기할법도 한데 이 영화는 그것에 조차도 관심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톰의 가족들은 영화속에 아예 나오지도 않았고, 이들 사랑의 가장 큰 복병인 사라의 가족들조차 내심 톰을 마땅찮게 바라보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이 두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줍니다.
이제 톰과 사라는 어찌되었건 결혼을 하게되고, 모든 사람들의 축복속에 신혼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제가 아는한 거의 80% 이상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이 시점에서 영화를 끝맺음합니다. 그러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결혼이야말로 사랑의 종착역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어렵게 시작한 만큼 결코 행복하게 살것이라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하며 영화를 끝맺음하곤 했습니다. 물론 몇몇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그 행복해야할 결혼 생활을 잡아냄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10편의 로맨틱 코미디중에서 1편이나 2편 정도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방금 결혼해어요]는 상당히 새로운 소재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면서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으며, 거의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이야기를 끝내는 시점에서 새롭게 영화를 시작합니다. 그렇다고해서 몇몇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처럼 결혼 몇년후의 결혼 생활을 담아내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행복할것이 분명하기에 거의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신혼 여행 이야기를 이 영화는 이야기거리로 삼은 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지막 종착지만큼은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움과 익숙함의 조화. 그러한 면에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제게 상당히 후한 점수를 받으며 시작했고,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 제게 상당히 흡족한 끝맺음을 보여줬습니다.
사랑 이야기와 결혼 이야기의 틈새를 노린 이 영화는 그러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모든 장점을 충분히 활용합니다. 젊고 매력적인 톰과 사라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처럼 서로 티격태격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가고, 그 과정에서 사라의 옛 애인이 등장하는 등 다른 로맨틱 코미디가 했을 법한 익숙한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관객앞에 풀어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속에서 새로운 코미디 형식을 빌려옵니다. 그것은 바로 슬립스틱 코미디입니다. 넘어지고, 때리고, 부수며, 조금은 과장된 동작으로 관객들을 웃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슬립스틱 코미디는 다른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아주 조금씩 차용되기는 했지만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처럼 본격적으로 그 접목을 시도한 것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이 영화는 톰과 사라가 신혼 여행을 떠나기위해 탄 비행기 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슬립스틱 코미디를 시작합니다. 비행기 화장실안에서 섹스를 시도하다가 변기에 발이 빠져 그 발을 빼내려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신혼 여행지의 호텔에서는 불을 내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들이 랜트한 작은 차는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고, 어렵게 찾은 허름한 여관방은 벽이 허물어져 옆방의 남녀의 덮치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상황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영화를 보다보면 톰과 사라의 신혼 여행을 망치기 위해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쉬지않고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솔직히 요즘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너무 많은 자기 복제로 인하여 더이상 새로운 재미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간혹 로맨틱 코미디가 화장실 코미디와 손을 잡고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이미 그러한 영화들도 더 이상 새로움을 찾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어쩌면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의 재미도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재의 틈새 공략에 이어 로맨틱 코미디와는 상극인듯이 보이는 슬립스틱 코미디의 본격적인 도입은 제게는 제법 새로운 재미로 받아 들여 졌으며, 신혼 여행지에서의 그러한 소동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고 과장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톰과 사라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를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풋풋한 젊음에서 풍겨나오는 그 활기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애쉬튼 커처와 브리트니 머피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젊은 활력을 맘껏 발산하였습니다. 스크린밖에 있는 저게도 그 활력이 느껴질 정도로...
브리트니 머피... 이 배우는 올해 헐리우드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성장을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를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돈 세이 워드]와 [8마일]을 통해서 이미 제게 강한 인상을 풍겨주었던 그녀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서는 이전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돈 세이 워드]에서 정신 분열을 가장한채 마음속 깊은 곳에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소녀 연기를 했던 그녀는 정말로 실망만이 가득찬 그 영화에서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었습니다. [8마일]에서 역시 욕지거리 랩으로 가득찬 영화의 분위기에 완벽하게 융합되며 영화를 더욱 빛내 주었습니다. 이렇듯 그녀는 개성적인 외모로 퇴폐적이며,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며 영화의 분위기를 암울하게 이끌어나가는데에 일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던 그녀가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처음 이 영화의 주인공이 브리트니 머피라는 소식을 들었을땐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의 안젤리나 졸리의 경우를 생각하며 불안했었습니다. 금발머리를 하고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인양 어울리지않는 변장을 했던 안젤리나 졸리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브리트니 머피의 변신은 차마 볼 용기가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브리트니 머피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로맨틱 코미디와 어울렸습니다. 이전 영화들의 그 퇴폐적인 분위기는 전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애쉬튼 커처... 이 배우는 정말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배우입니다. 왠만한 헐리우드 배우들의 이름은 줄줄이 꿰차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왠지 애쉬튼 커처라는 이름은 생소하기만 하네요. 하지만 얼굴은 이름만큼 생소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요즘 헐리우드의 젊은 남자 배우의 자유분방한 개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는 뜻밖에도 [러브 스토리]의 라이언 오닐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
암튼 젊고 개성적인 이 두 배우는 사랑 이야기가 상당 부분 생략됨으로써 야기될 문제점들을 젊은 활력으로 메꿔버릴 정도로 꽤 신선한 매력을 발휘했으며, 그들의 유쾌한(?) 신혼 여행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웃고 즐기며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그런 젊은 활력은 틈새를 노린 스토리 라인이나 로맨틱 코미디와 슬랩스틱 코미디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시도보다도 절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악몽같은 신혼 여행'이라는 이 영화의 기본 소재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신혼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 활력으로 가득찬...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할 그런 엉뚱한 신혼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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