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틴 스콜세지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개봉 : 2003년 2월 28일
[타이타닉] 이후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줬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러나 그는 2003년의 시작과 함께 두편의 기대작을 거의 동시에 국내에 개봉시켰습니다. 그 중의 한편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이고, 다른 한편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입니다. 흥행의 대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헐리우드의 살아있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간직하고 있는 이 두 감독은 하필 비슷한 시기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선택했고, 이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헐리우드 특유의 오락성과 스펙타클에 매료되어 있던 저는 아주 당연하게도 이 두편의 영화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에게는 오락성을, [갱스 오브 뉴욕]에서는 스펙타클을 기대한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감을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채워줬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그 유쾌한 사기 행각을 보며 저는 헐리우드 영화 특유의 오락성을 맘껏 만끽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 [갱스 오브 뉴욕]을 통해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그 어떤 나라의 영화들도 따라 올 수가 없는 스펙타클을 완비한 헐리우드의 위력을 보는 일만 남은 겁니다. 게다가 그 스펙타클을 완성한 감독은 세계 영화계에서도 거장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마틴 스콜세지... 헐리우드의 스펙타클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재능이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저는 [갱스 오브 뉴욕]을 보지 않고서도 맘이 설레였던 겁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갱스 오브 뉴욕]의 동영상을 제 컴의 하드속에 저장해 놓았으면서도 결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갱스 오브 뉴욕]을 보고싶은 유혹에 마우스를 갖다 대었지만 결국 [갱스 오브 뉴욕]은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굳은 결심만을 되풀이하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TV의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갱스 오브 뉴욕]을 소개할때도 결코 보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고 백지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는 것을 이미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 [갱스 오브 뉴욕]을 커다란 극장 화면에서 보게 될것임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갱스 오브 뉴욕]을 컴으로 봐야만 했습니다. 러닝 타임이 3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엔 제게 할당된 여유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겁니다. 차일피일 이 영화 보기를 미루었지만 결국 저는 지금까지의 결심을 무너뜨리고 [갱스 오브 뉴욕]의 동영상 파일을 더블 클릭함으로써 토요일 새벽에 혼자 보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의 몸부림끝에 백수에서 탈출한 저는 결국 그 댓가로 그동안 제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던 영화보는 시간을 줄여야만 했던 겁니다. 이것이 어쩔수없는 현대 직장인의 비애인가 봅니다. -.-;
[갱스 오브 뉴욕]은 일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한 헐리우드의 1억 3천만달러짜리 블럭버스터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을 여느 헐리우드의 블럭버스터 영화처럼 편안하게 앉아 헐리우드 특유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감탄하게끔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외형상의 모습은 완벽한 블럭버스터 영화이건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면 마틴 스콜세지의 지극히 심각한 국제 영화제용 영화를 보고나온 느낌이 듭니다. 이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며, 또한 단점입니다.
1. 마틴 스콜세지의 블럭버스터에 대한 감각.
[갱스 오브 뉴욕]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파이브 포인츠에서 그곳의 원주민들과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집단 난투극을 통해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자신의 블럭버스터에 대한 능력을 여과없이 발휘합니다.
눈 덮힌 파이브 포인츠. 굳은 결의로 똘똘 뭉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갱조직인 데드 래빗. 데드 레빗의 도전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원주민들. 그들이 펼치는 살아남기위한 처절한 난투는 이제 막 영화를 보기위해 자리를 잡은 제 시선을 완벽하게 붙잡습니다. 하얀 눈밭을 선연한 핏빛으로 물들이는 이 영화의 오프닝씬은 때론 뮤직비디오처럼 감각적으로... 때론 선혈이 낭자한 잔인한 영상으로... 때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스펙타클하게... 그러다가 가슴 뭉클한 비장미로 완벽하게 마무리합니다.
[갱스 오브 뉴욕]의 이러한 오프닝씬을 보면서 충분히 마틴 스콜세지의 블럭버스터에 대한 능력을 알게된 저는, 그가 1억 3천만달러짜리 블럭 버스터급 시대극인 [갱스 오브 뉴욕]을 헐리우드 특유의 스펙타클과 거대한 오락성이 완벽하게 완비된 영화로 이끌어 갈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감은 영화가 흐르면 흐를수록 처참하게 깨지기 시작합니다. 제가 보기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영화를 완벽한 오락성을 지닌 블럭버스터 영화로 만들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듯이 보입니다. 그는 영화 초반의 스펙타클한 오프닝씬을 통해서 자신이 블럭버스터 영화를 못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으면서도 불구하고, 모두들 블럭버스터 영화로 기대했던 이 영화에 대해서는 오락성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겁니다. 헐리우드에서 오랜 경력을 지닌 노장의 뚝심이라고나 할까요? 암튼 완성된 영화를 본 영화 제작사의 울상이 눈에 선하군요.
2. [갱스 오브 뉴욕]을 보려면 공부해라???
저는 기대했던 영화를 볼때 왠만하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최소화로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전에는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의 영화평도 절대 읽지 않으며, 영화에 대한 리뷰와 TV의 영화정보 프로그램도 최대한으로 피합니다. [갱스 오브 뉴욕]을 보기전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처절한 복수극이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이게 뭐야?'였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복수극은 왠지 한켠으로 물러난 듯한 느낌이었으며, 이해되지 않는 영화의 시대적 상황이 자꾸만 저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단지 암스테르담 발론(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극이라고 하기엔 1800년대 초기 뉴욕에게 너무나도 많은 애착을 보이며 집착했던 겁니다. 그렇기에 뉴욕의 역사에 대해서 전혀 알지못하며, 전혀 관심도 없는 제게 이 영화는 너무나도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포커스가 암스테르담의 개인적인 복수담에서 벗어나 1800년대의 그 무질서한 뉴욕에 맞춰지면 저는 영화의 배경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가 되지 않으니 자꾸만 졸음이 끊임없이 밀려왔던 겁니다.
결국 이 영화를 보고나서 여러 영화 사이트들을 뒤져서 이 영화의 배경인 1800년대 뉴욕의 시대 상황을 숙지하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취했던 행동들을 이해한 후 다시 영화를 보고나서야 [갱스 오브 뉴욕]의 재미를 조금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기위해서 뉴욕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다니... 그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최소한 영화를 보며 영화의 오락성을 단순하게 즐기고 싶어하는 저같이 게으른 관객에게는...
그러한 면에서 [갱스 오브 뉴욕]은 분명 재미없는 영화입니다. 과연 몇명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기위해 뉴욕의 시대적 배경을 공부하는 수고를 할 것인지 저로써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결국 이 영화는 복잡한 영화속의 시대적 배경탓에 단지 규모만 컸을뿐 그 규모를 영화적인 재미로 이끌어내는 힘이 부족한 지루한 영화에 불과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배경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말이 틀려집니다. 1800년대 무질서했던 뉴욕의 초기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놓고, 그 격동의 세월속에서 살아남기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여러 인간군상들을 처절하게 잡아냄으로써, 암스테르담의 복수극이라는 어쩌면 단순한 영화의 스토리를 흥미롭게 이끌어 간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풍부한 스토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 첫번째 이 영화를 봤을땐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였으나, 두번째 이 영화를 봤을땐 제법 스펙타클하고 웅장한 복수극에 매료되었습니다. 만약 영화를 보기전에 충분히 이 영화에 대해서 공부했더라면 두번이나 영화를 봐야했던 시간을 절약했을텐데... ^^;
3.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없다.
이 영화가 처음부터 제게 기대감을 안겨준 것은 사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라는 거장의 이름보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카메론 디아즈, 그리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배우들의 이름 덕분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솔직히 이 배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매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갱스 오브 뉴욕]을 보고나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니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 영화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마틴 스콜세지가 그토록 이 영화를 만들으려 했을땐 흥행적인 부담때문에 모든 제작사가 거절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세하자 제작사들은 흥행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1억달러가 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돈을 댔던 겁니다. 그만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에서 막강한 영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영향력은 단지 영화 외적인 문제에 머무릅니다. 그의 영향력이 영화 내적인 문제에 이르렀을때 진정으로 관객들은 암스테르담의 복수극에 매료될텐데... 제가 보기엔 그러기엔 그의 카리스마가 너무 모자랐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의 그는 천재적이지만 나약한 순진한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적인 유쾌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부모의 재결합이라는 순진한 소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파렴치한 사기꾼인 그를 결코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서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한 남자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16년동안이나 가슴속에 묻고 복수를 하기위해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는 무서운 남자입니다. 결국 그는 [갱스 오브 뉴욕]을 통해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한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은 제겐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프닝씬에서 데드 래빗파의 우두머리였던 프리스트 발론(리암 니슨)의 카리스마와 영화의 후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데드 래빗을 부활시킨 암스테르담 발론의 카리스마를 비교한다면 제가 그의 연기적인 성장을 인정못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될 것입니다.
결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의해서 제작이 가능햇던 이 영화는 그에 의해서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암스테르담 발론 역을 소년티를 벗지 못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닌 좀더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배우가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어쩔수 없이 남네요.
4. 다니엘 데이 루이스... 로버트 드니로의 뒤를 잇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실망한 제게 한갖 위안이 되는 것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배우의 존재였습니다. 역시 어떤 영화 사이트에서 읽으니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맡은 빌 더 부처 역을 처음엔 로버트 드니로가 맡을 예정이었다고 하더군요. 솔직한 심정으로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력을 믿는 저로써는 빌 더 부처 역을 로버트 드니로가 했다면 아마도 완벽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빌 더 부처에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보여준 그 카리스마는 결코 로버트 드니로와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카리스마가 이토록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자 그와 대결해야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더욱 초라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오프닝씬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팽팽한 카리스마 대결을 보여줬던 리암 니슨이 그리워지더군요.)
[나의 왼발], [라스트 모히칸]등의 영화를 통해서 그의 연기력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저였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기위해 점점 잔인해져만 가는 빌 더 부처로 완벽하게 변신한 그를 보니 그가 새삼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5. 카메론 디아즈... 진흙탕속의 뉴욕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헐리우드의 여배우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중의 한명인 카메론 디아즈의 존재도 제겐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녀의 인형같은 외모는 1800년대 무질서한 진흙탕속의 뉴욕과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왠지 이 영화와는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제니 에버딘(카메론 디아즈)과 암스테르담 발론의 안타까운 사랑은 이 영화에서 가장 어색한 부분이었습니다. 16년동안 복수심에 불타있었던 암스테르담이 중요한 순간에 한 여인으로 인하여 흔들리는 것도 이해가 안되었고, 제가 보기엔 전혀 카리스마라고는 없는 풋내기에 불과한 암스테르담을 목숨걸고 사랑한 제니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이 두사람의 사랑이 없었다면 더욱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갱스 오브 뉴욕]은 이렇듯 절반의 재미와 절반의 실망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스펙타클한 1800년대의 뉴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리고 언젠가 마틴 스콜세지가 제대로 마음먹고 만든 블럭버스터 영화도 보고 싶습니다. 블럭버스터에 대한 그의 능력은 이미 입증되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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