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3년 영화이야기

[8마일] - 영화라기보다는 흥겨운 랩이라고 하는 것이...

쭈니-1 2009. 12. 8. 15:59

 



감독 : 커티스 핸슨
주연 : 에미넴, 킴 베이싱어, 브리트니 머피
개봉 : 2003년 2월 21일

제가 고등학교때(또 개인적인 옛날 이야기입니다. ^^;)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으로 음반을 냈습니다. 그 당시 댄스나 발라드, 트로트가 전부였던 국내 가요계에 랩이라는 전혀 생소한 가요 장르가 처음으로 시작된 겁니다. 제가 처음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들은 것은 신인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기존 가수들이 점수를 매기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전영록의 열혈팬이었던 저는 전영록을 보기위해 그 프로를 봤다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들은 겁니다. 지금까지는 단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얼중얼거리며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사실을...'이라며 랩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전 뒤통수에 망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죠. 하지만 기존 가수들의 점수는 형편없었답니다. 새로운 음악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못한 거죠. 그 이후로 저는 새로운 가요계의 흐름을 읽을줄 몰랐던 전영록보다는 새로운 가요계의 흐름을 과감히 열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 되었습니다. 물론 열혈팬은 아니었지만, 노래방에서 죽어라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을 연습하고, 친구들앞에서 자랑스럽게 랩 실력을 자랑했었죠. 요즘의 랩은 따라할 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 빨라서 제겐 너무나도 어려운 음악이 되어버렸지만, 그 당시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은 정말로 정겨우면서도 파격적이고 신선했었습니다.
[8마일]이라는 영화를 볼때의 느낌이 딱 그러했습니다. 10년도 휠씬 넘어버린 그때... 소방차와 김완선, 박남정의 댄스 음악이 최신 히트 가요였던 그때... 전혀 생소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을 처음 들었던 그때... 왠지 모를 벅찬 느낌에 사로잡혀 한동안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던 그때의 그 느낌을 [8마일]이라는 영화에서 받았습니다.


 



[8마일]은 미국의 유명 램 가수 에미넴의 반자전적인 영화입니다.
에미넴... 전세계적으로 어머어마한 음반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가수로써 그래미 최우수 랩 앨범상, MTV 뮤직어워드와 빌보드 뮤직 비디오상을 수상한 랩의 황제인 그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입니다. 하지만 저는 맹세코 이 영화를 보기전에 그의 이름을 단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연예 프로를 통해 들어봤을지도 모르지만 무관심으로 인하여 그의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암튼 저는 에미넴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게다가 저는 랩 음악을 싫어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으로 랩을 불렀을때는 저도 랩음악에 동화되어 랩을 흥얼거렸었지만, 요즘의 랩은 도통 따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건지조차 모를 지경입니다. 이렇게 국내의 랩 음악도 좋아하지 않는 제가 미국의 랩 음악을 좋아할리가 만무합니다. 게다가 대중 가요에는 노래 가사를 중요시하는 제게 있어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며, 간혹 알아 듣는다고해도 듣기 거북한 욕설이 난무하는 미국의 랩이 좋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마일]에서의 에미넴의 랩은 절 흥겹게 만들었습니다. 랩으로 서로에게 인신공격을 해대는 '랩 배틀'이라는 이상한 경기에서 에미넴이 내뱉는 랩은 분명 제가 전혀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 음악에 맞춰 제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결국 [8마일]은 정말 성공적인 음악 영화입니다. 만국공통어인 음악을 영화에 접목시켜 쉽게 관객을 동화시키는 이 영화는 음악 영화속의 음악이라는 장치가 품위있는 클래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쉽게 관객을 동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입니다. 비록 그 음악이라는 것이 보수적인 어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음악이라고 할것까지도 없는 단지 욕설에 불과한 랩이라 할지라도 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같이 무지한 관객들도 충분히 영화속에 몰입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보여준 겁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빈민가에서 가난하게 살던 지미(에미넴)가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희미한 희망의 불씨를 찾는다... 뭐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내용이 이러하다보니 이 영화는 안봐도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눈에 휜히 보입니다. 영화의 초반 '랩 배틀'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망신만 당했던 에미넴이 마지막에는 멋진 랩 솜씨로 복수를 한다는 것은 영화를 굳이 보지않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뻔한 스토리위에 에미넴이라는 랩가수를 앉혀놓고 끝임없이 랩을 흥얼거리게 만듭니다. 솔직히 에미넴의 연기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지미라는 캐릭터가 워낙 과묵하고 표정이 없는 캐릭터이다보니 에미넴의 연기력은 이 영화속에서 그리 훌륭하게 발휘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에미넴은 진정으로 멋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당연하게도 그의 멋진 랩 솜씨 덕분이니다. 결국 커티스 핸슨 감독은 배우가 아닌 랩 가수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함으로써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포기하고 그대신 멋진 랩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커티스 핸슨 감독의 선택은 진정으로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단조로운 스토리와 에미넴의 무표정한 연기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 수 밖에 없는 멋진 랩에 의해서 깡그리 잊혀지고 영화를 보고나면 따라 부를수도 없는 에미넴의 랩을 중얼거리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결국 [8마일]은 영화라기 보다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이 보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백인이면서 흑인의 문화인 랩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지미의 외로운 투쟁기보다는 에미넴이 흥얼거렸던 랩이 더 가슴속에 남는 것을 보면... 영화를 만들기위해 랩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는지... 랩을 영상으로 표현하기위해 영화라는 매개체를 이용했는지... [8마일]을 보면 정말로 헷갈립니다. ^^;


 


  
물론 [8마일]을 보고나서 남는 것이 단지 에미넴의 랩만은 아닙니다. 그의 랩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지만 그에 못지않게 킴 베이싱어와 브리트니 머피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킴 베이싱어는 세월앞에선 그 어떤 미인도 어쩔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더군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이 한창 유행하고 있을때 최고의 섹시 스타로 잘나갔던 킴 베이싱어가 이 영화에선 지미의 어머니로 나와서 나이가 들어버린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 세월이여! ^^;
그에비해 브리트니 머피는 정말 이 영화에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 지미가 사랑한 여인이며, 모델로 성공하기위해 지미의 친구와 섹스를 해서 지미에게 절망과 그로인한 희망의 불씨를 안겨줬던 알렉스역으로 출연한 그녀는 에미넴의 랩으로 가득찬 이 영화에 너무나도 안성맞춤입니다. 마치 그녀가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이 아니라 이 영화속 에미넴의 랩중의 일부인듯이...
만약 비교를 한다면 킴 베이싱어가 이제는 유행에 뒤떨어졌지만 정겨운 느낌이 들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이라면, 브리트니 머피는 파격적이며 위험해보이는 그러나 결코 거부할 수도 없는 강한 느낌의 에미넴의 랩과도 같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킴 베이싱어와 브리트니 머피로 인하여 정겨움과 파격적인 매력을 고루 갖춘 영화가 된 셈입니다.

P.S. 이 영화가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 다른 영화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말고 마지막 에미넴의 음악을 조용히 귀기울여 들어보세요. 제목이 'Lose yourself'인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음악은 이 영화의 모든 주제와 감동이 집결되어 있는... 그야말로 이 영화에서 엑기스만 뽑아놓은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음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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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
전... 영... 아니였는데. 도처히 얘네들이 하는랩을 이해할수 없더라구요. 난 감각이 없나- -; 그냥 서로욕하는거로만 들렸어요ㅠ_ㅠ  2003/02/25   
지인아빠
쭈니님 그때 고등학생이었어요? 제 기억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92년에 데뷔한 것 같은데...  2003/02/25   
쭈니 흠~ 요즘 직장에 다니느라 답글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해하시길...
아랑님... [8마일]을 재미없게 보셨군요. 혹시 제가 공유해드린 영화로 보셨나요? 그러셨다면 자막이 엉망이었을겁니다. 저도 처음 자막으로 봤다가 짜증만 났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자막을 깔았더니 재미있더군요. 제가 공유해드린 영화로 보신 것이라면 자막을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인아빠님... 서태지와 아이들이 92년도에 데뷔했나요? 제가 92년도에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아마도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봅니다. 하긴 벌써 10년도 더 흐른 이야기이니... ^^;
 2003/02/26   
지인아빠
직장에 다닌다구요? 그새 취직하셨군요.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취직을 하시다니 능력도 많으셔라. 암튼 축하합니다.  2003/02/26   
쭈니 감샤~~~ ^^  2003/02/26   
winmir
욕 잘 하는 랩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거보고 에미넘을 다시 보게되더군요...무쟈게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도 하고..
에미넘 눈이 너무 파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하더군요...전 괜찮았습니다...
 2003/03/04   
쭈니
저도 괜찮았습니다.
아마 반전기적인 영화라서 약간의 과장도 있었겠지만 암튼 에미넴의 랩도 들을만 하더군요. ^^
 2003/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