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나카다 히데오
주연 : 구로키 히토미, 칸노 리오
개봉 : 2003년 2월 21일
제게 누군가 '가장 무서웠던 영화가 무엇이냐?'라고 질문한다면 전 주저하지 않고 '[링]이 가장 무서웠다'고 말할 겁니다. 한국 영화중에선 [가위]가 가장 무서웠지만, 하지원의 그 섬뜩한 눈빛조차도 TV속에서 기어나오던 머리 산발한 사다코의 섬뜩함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링]이 제게있어서 그토록 무서웠던 것은 이 영화가 쉽사리 공포의 근원을 밝히지 않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무엇인가 튀어나올듯한 으시시한 분위기를 잡아놓고 그 공포의 근원을 끝내 관객들에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마음속의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이 영화는 마지막 한 장면(사다코가 TV에서 기어나오던 장면)으로 쌓아놓았던 공포를 일순간에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관객이 느끼는 공포를 극대화 했습니다.
[링]은 일본에서 흥행 성공함으로써 여러 속편이 등장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은경, 배두나 주연으로 리메이크되어 흥행에 성공하였고, 최근 헐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되어 1억달러가 넘는 흥행 실적을 올리는 성공을 거둠으로써 [링]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링]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링]의 공포를 고스란히 간직한 새로운 영화가 개봉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것은 [검은 물 밑에서]라는 영화입니다. [링]의 감독인 나카다 히데오가 메가폰을 잡고, [링]의 원작자인 스즈키 코지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한 이 영화는 나카다 히데오와 스즈키 코지라는 황금 콤비를 부활시켰습니다. 과연 [검은 물 밑에서]는 [링]과 필적할만한 공포를 관객들에게 안겨줄 수 있을런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자신의 영화인 [링]을 넘어서는 공포 영화를 만들 수 있을런지...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검은 물 밑에서]는 [링]보다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제게있어서...) 그 원인은 아마도 이 영화가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태생적인 문제 때문일겁니다.
[링]은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하기 때문에 원작이 가지고 있는 그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통해서 상세한 스토리 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레이코(마츠시마 나나코)를 따라 그녀가 죽음의 비디오 테잎의 비밀을 조금씩 벗겨나가는 7일간의 여정을 쫓아가며 아주 조금씩 사다코에 대한 공포를 키워나가게 되는 겁니다. 죽음이 시간이 다가올수록 관객이 느끼는 조바심과 공포감은 더욱 커지며, 이제 모두 끝났다라고 안심하게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장면으로 영화내내 키워놓았던 공포를 일순간에 표출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검은 물 밑에서] 역시 [링]과 비슷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링]과 마찬가지로 한 여성이 등장하고, 그녀에게 죽음의 비밀을 풀어야만 하는 임무를 맡깁니다. 그리고 그 임무의 이면에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짙게 깔아놓음으로써 여주인공이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합니다. 이제 요시미(구로키 히토미)는 딸인 이쿠코(칸노 리오)를 위해서라도 어떻게해서든 비밀을 벗겨야만 합니다. 마치 [링]의 레이코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이러한 스토리 구조에도 불구하고 [검은 물 밑에서]는 [링]처럼 세세하게 죽음의 비밀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90여분이라는 영화의 러닝 타임을 맞추기위해서 스토리 라인을 마치 쭈욱 늘린 것만 같은 인상을 주게되며, 그러한 단점은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악효과를 낳게 됩니다.
만약 [검은 물 밑에서]의 원작이 단편이 아니라 [링]과 같은 장편이라면... 그래서 비밀을 파헤치는 요시미의 여정이 좀더 심도있게 그려졌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이 영화는 [링]을 넘어서는 공포 영화가 될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물론 [검은 물 밑에서]가 [링]보다 무섭지 않다고해서 이 영화가 전혀 무섭지도 않은 공포 영화라는 것은 아닙니다. 스즈키 코지는 여전히 관객이 느끼는 공포 심리를 휜히 알고 있는 듯이 보이며,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자신의 특기를 십분발휘하여 스즈키 히데오가 구축한 이상한 공포의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합니다.
[링]이 비디오 테잎이라는 우리 일상 생활속에 소모품을 공포의 매개체로 이용했다면, [검은 물 밑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물을 공포의 매개체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요시미가 새로 들어간 아파트 천장을 적셔오는 물자국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포의 대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며, 그것을 느끼는 관객의 공포심도 점점 커집니다. 이렇게 피할수도, 벗어날수도 없는 물에 대한 공포는 점점 관객을 조여오고, 그러한 공포심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극대화 됩니다.
이제 요시미는 자신과 딸의 보금자리를 공포로 몰고 간 이 알 수없는 물의 공포에 직접적으로 맞서야 합니다. 여기에는 남편과의 이혼수속중에 있는 요시미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딸의 양육권을 지켜야한다는 모성애가 맞물려있어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게되는 관객들에게도 이 비밀 파헤치기 게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끔 만듭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비밀이 조금씩 파헤쳐지는 동안에도 쉽사리 공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단지 공포의 매개체인 물의 크기만 조절하여 관객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뿐입니다. 이것은 [링]의 경험을 통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과 원작자인 스즈키 코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무서운 법이니까요. 이쯤되면 관객들도 [링]의 공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검은 물 밑에서]도 역시 영화내내 꼭꼭 숨겨놓았던 공포를 영화의 마지막 한 장면으로 전부 쏟아내는 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없이 마주치게 되는 것을 공포의 매개체로 삼음으로써 섬뜩함을 안겨주고, 모성애라는 코드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관객의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며, 공포의 모습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다가 마지막 한방으로 공포를 극대화하는 이러한 영화의 진행 방식은 [링]과 모든 것이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렇기에 [링]보다는 무섭지 않더라도 [링]의 공포가 결코 잊혀지지않을 정도로 달콤(?)했던 공포 영화팬에게는 어쩌면 어정쩡한 [링]의 아류작보는 더 심도있는 공포를 안겨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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