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3년 영화이야기

[투게더] - 변화하는 중국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쭈니-1 2009. 12. 8. 15:55

 



감독 : 첸 카이거
주연 : 당운, 유패기, 진홍, 왕지문, 첸 카이거
개봉 : 2003년 3월 14일

예전에 업무때문에 몇번 만난 적이 있는 강혜진씨에 의해서 뜻밖에 초대된 [투게더]라는 영화의 시사회. 솔직히 저는 이 시사회를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한동안 무지 고민을 했었답니다. 아무 생각없이 덜컥 시사회에 참석하겠다는 답글을 남겼다가 예기치못한 약속으로 시사회에 못가게되면 저를 위해서 시사회 초대권을 양보해준 강혜진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며, [투게더]라는 영화를 아무리 검색해 봐도 감독이 첸 카이거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첸 카이거는 이미 [풍월]이라는 영화로 절 실망시켰기에 그의 영화에 별다른 기대감이 제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관해서는 과다한 욕심과 무조건적인 잡식성을 과시하는 제게있어서 다른 관객들보다 먼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유혹은 어쩌면 당일날 생길지도 모르는 약속이나 첸 카이거라는 약간은 불안한 감독의 이름에도 불구하고 절 [투게더]의 시사회 현장으로 인도했습니다.
남산의 감독협회 시사회실에서 열리는 [투게더]의 시사회. 사촌 동생과 함께 무작정 전철을 타고 명동역에서 내려 감독협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문은 대대로 타고난 길치였으니... 좀처럼 감독 협회를 찾지못하고 남산 언저리를 헤매고 또 헤매며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땀을 흘리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기적처럼 길을 묻기 위해 우연히 들어간 건물이 감독협회라는 사실을 발견한 우리. 얼마나 이 기적이 감격스럽던지... ^^;
2월 4일에 열린 [투게더]의 시사회는 기자 시사회도 겸했는지 영화계에서 일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잠시동안 영화계에서 일하기를 희망했었기에 그들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영화계에서 일한다는 그들의 영화를 보는 자세만큼은 거의 빵점에 가깝웠습니다. 제 뒤에 앉은 영화 기자인듯한 한 남자는 영화 상영내내 옆에 앉은 여자에게 영화에 대해서 심도있게 설명을 해주더니만 영화 상영도중에 전화를 받기도 하더군요. 그가 제 뒤에서 잘난척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전화기에 대고 '첸 카이거 시사회에 왔어'라고 자랑하는 듯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제가 그토록 동경하던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영화관람의 기본적인 예절조차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투게더]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찡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패왕별희]를 보고 첸 카이거 감독에 대해서 감탄을 했던 저는, [풍월]을 보며 왕가위 감독을 닮고 싶어하는 그의 헛된 욕망에 실망을 했다가, [투게더]를 통해서 첸 카이거의 진면목을 다시 찾은 겁니다. 아직 개봉 일자가 많이 남았지만, 이 영화가 개봉되면 꼭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관람하는 것을 권하고 싶군요. ^^


 


  
[투게더]에 대한 별다른 정보없이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의 좌석에 앉으셨다면 오프닝 크레딧 자막이 올라가는 장면에서부터 깜짝 놀라시게 될겁니다. 분명 [투게더]가 중국 영화인줄로만 알고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오프닝 크레딧에 나오는 한국인 스탭진의 이름은 꽤 신기하고, 정감있게 다가옵니다. 촬영에 김형구, 조명에 이강산, 의상에 하용수라는 이름까지 보고나면 영화를 보기 전에 '[패왕별희]의 감독인 첸 카이거의 영화이구나!'라고 느껴던 시큰둥한 반응은 왠지 모를 반가움과 '과연 어떤 영화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영화의 중반정도에 전혀 예상치 못한 김혜리의 모습까지 보고나면 이 영화가 낯선 중국 영화가 아닌 정겨운 우리 영화인 듯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오프닝 크레딧의 한국인 스텝진의 이름과 영화 중반에 갑자기 등장하는 김혜리의 모습을 보고 저와 마찬가지로 왠지모를 정감을 느끼신 분이라면 일단은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만한 준비가 끝난 셈입니다. 솔직히 [투게더]에 대한 정보라고는 거의 알지못하고 백지인 상태에서 영화를 관람한 저는 이 영화의 유일한 정보였던 첸 카이거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이 영화를 무겁고 지루한 예술 영화라고 치부하며, 영화를 보기전부터 약간의 부담을 느꼈었습니다.
분명 이 영화는 흥행 영화의 감독보다는 영화제의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라는 점과 소위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이 아닌 국내에선 전혀 알려지지않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예술 영화의 느낌을 짙게 풍깁니다. 하지만 예술 영화에 대한 편견을 최대한 빨리 풀고,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영화에 몰입하면 할수록 이 영화에 대한 재미와 감동을 더욱 커집니다. 결국 이 영화는 외향적인 모습만 지루한 예술 영화일뿐, 영화의 진짜 모습은 훈훈한 감동의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투게더]는 바이올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는 아들 샤오천(당운)을 위해서 헌신하는 리우천(유패기)의 감동스러운 부성애를 그린 영화입니다. 음악과 부성애... 이 영화는 소재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기에 아주 충분합니다.
음악이라는 소재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데에 아주 손쉬운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가까운 예를 들어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경우 이 영화의 감동은 물론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의 감동적인 생존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면에는 스필만의 피아노에 대한 애착과 함께 피아노의 잔잔한 선율이 녹아 있었습니다. 그 극한 상황에서 피아노 선율이 울러퍼지던 그 순간의 감동은 음악이라는 소재가 얼마나 손쉽게 관객에게 감동이라는 코드로 변환되는지 보여줍니다.
[투게더]는 바로 이러한 음악을 잘 활용합니다. 샤오천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저마저도 매혹시킬 정도로 뛰어납니다. 영화가 조금 처진다는 느낌이 들때마다 터져나오는 샤오천의 열정적인 바이올린 연주는 이상한 힘을 발휘하여 절 영화속으로 이끕니다.
부성애라는 소재 역시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아주 손쉬운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가까운 예로 [아이 엠 샘]과 부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아니지만 할머니의 사랑을 소재로 하여 예기치 못한 흥행 대박을 터트린 [집으로]만 보더라도 부모님의(혹은 조부모님의) 사랑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감동을 안겨주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투게더]는 바로 이러한 부성애라는 소재도 잘 활용합니다. 영화내내 샤오천의 매력적인 바이올린 연주와 더불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샤오천에 대한 리우천의 무조건적인 사랑인 겁니다. 특히 마지막에 샤오천에 대한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리우천에 대한 부성애는 감동의 무게가 더욱 커져서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십니다.
[투게더]는 이렇게 음악과 부성애라는 소재를 아주 적절하게 잘 활용합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샤오천의 성공을 위해서 샤오처을 남겨두고 고향으로 떠나는 아버지 앞에서 샤오천이 들려주는 바이올린 연주는 백마디 말보다도 더욱 깊은 감동으로 관객앞에 다가옵니다. 제 개인적으로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가장 감동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투게더]의 마지막 장면을 꼽고 싶군요.


 



이렇듯 [투게더]는 음악과 부성애를 소재로 삼음으로써 첸 카이거라는 일반 관객들에겐 부담스러운 이름의 무게를 감동이라는 지극히 대중적인 코드로 변환시키는데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면면을 꼼꼼히 살펴보면 첸 카이거 감독은 감동이라는 대중적인 코드위에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화를 시도하는 중국의 현실을 차갑게 그려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첸 카이거 감독이 [투게더]를 통해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첸 카이거 감독은 그러한 주제를 살짝 뒤로 숨기고 음악과 부성애라는 감동적이며 대중적인 소재를 앞으로 내세웁니다. 첸 카이거 감독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완벽하게 터득한 것 같더군요. ^^;
이 영화는 중국의 한 시골의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작은 시골 동네이지만 인심좋고 포근한 이 마을은 풍경은 중국의 전통적인 마을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화면은 곧 중국의 거대 도시인 북경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기에서부터 영화는 공산주의 속의 자본주의라는 모순된 중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시골 동네에서 유능한 주방장이었던 리우천은 북경에선 음식 배달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음식을 대량 생산하여 일괄적으로 배달하는 북경의 거대 식당의 그 삭막한 모습은 시골 동네에서 포근한 인심을 자랑하던 식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음악 대회에서는 기부금을 많이 내는 아이들을 입상시켜 줘야하고, 음악에 재능이 없는 아이들은 어머니의 허영심을 채우기위해 억지로 바이올린을 배워야 합니다. 시장에선 손님을 끌기위해서 서로 가격 경쟁을 하다가 멱살을 잡고 싸우기 일쑤이고, 여자들은 돈많은 남자들을 잡기위해 몸치장하는데에 시간을 전부 허비합니다.
이것이 바로 [투게더]가 그린 북경이라는 중국 대도시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완벽한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북경은(비단 북경만은 아닐테지만...)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아주 이상한 형태의 모순을 남기고 있는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첸 카이거 감독은 차라리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었던 예전의 중국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듭니다. 이런 이상한 모순속에 갇힌 중국을 삭막하게 표현한 것을 보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전혀 상반된 체제속에서 방황하는 중국의 현주소는 이 영화속의 캐릭터로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샤오천과 리우천이 북경에 도착해서 만나는 중요 인물중에서 샤오천의 첫번째 선생이었던 지앙교수(왕지문)는 자본주의 사회에 전혀 작응을 하지 못한 인물의 대표격입니다. 바이올린의 천재로 그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는 자유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채 어머니의 허영심때문에 재능도 없으면서 바이올린을 잡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헛되게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가 샤오천을 만나 그를 통해서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애처로운지...
그와는 반대로 샤오천이 기억에도 없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는 릴리(진홍)는 완벽하게 자본주의에 적응한 캐릭터입니다. 값비싼 옷들을 입고 돈많은 남자를 꼬시는데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그녀는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신데렐라의 환상을 가진 여성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두사람에게 결코 성공이라는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지앙교수는 샤오천을 능력있는 음악 교수인 유교수(첸 카이거)에게 보내고, 릴리는 믿었던 남자 친구에게 배신당하여 이용만 당한채 버려집니다. 그들은 결국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들의 모습속에서 첸 카이거 감독은 중국이 공산주의이건, 자본주의이건 아직 모든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의 노력여하에 따라 중국의 모습은 다시 바뀔 수 있는 겁니다. 지앙교수가 샤오천으로 인하여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그는 이제 재능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헛되게 시간을 소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다시 노력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지도 모릅니다. 릴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위해서 사기를 치는 남자와의 이별을 통해서 그녀도 많이 변할 겁니다. 어쩌면 다시금 그런 쓰레기같은 남자를 만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노력여하에 달린 겁니다.
음악과 부성애라는 소재를 통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중국의 현주소를 그린 [투게더]는 분명 대중적이며, 감동적이고, 첸 카이거의 능력이 완벽하게 발휘된 그런 영화입니다.
'첸 카이거여! [풍월]을 보고 당신을 욕한 나를 용서하소서. 이제서야 당신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