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경형
주연 : 김하늘, 권상우
개봉 : 2003년 2월 7일
김포공항에 새로 생긴 '엠파크9'이라는 극장에서 개관기념으로 맥스무비에서 예매를 한 고객에게 공짜 영화 초대권을 나누어 줬습니다. 백수라서 자금 사정이 상당히 안좋은 저는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벤트 기간동안 '엠파크9'에서 나의 그녀와 두편의 영화를 봄으로써 4장의 영화 초대권을 얻었습니다. 이 공짜표를 어떻게 쓸것인가 고민한 저는 일단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공짜로 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월 7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개봉날. 저는 그녀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공짜로 볼 계획을 세심하게 짜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러가기전 영화의 초대권을 자세히 본 저는 어이없게도 '개봉 첫주에는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한마디로 7일에 개봉한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개봉 일주일 후인 14일에나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그 사실을 알았을땐 이미 인터넷 예매는 모두 마감된 상태였고, 할수없이 2시간이나 일찍 극장에 가서 영화표를 구했지만 자리는 앞에서 두번째. '엠파크9'의 어이없는 영화 초대권 덕분에 저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공짜로 보기는 커녕,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영화를 보게 된겁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고개가 어찌나 아프던지... 정말 공짜 좋아하다가 죽도록 고생만 했습니다. -.-;
'엠파크9'...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볼때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영화를 꺼버리고 실내등을 켜지 않아서 깜깜한 상태에서 의자에 손을 짚고 겨우 극장밖을 빠져나오게 하더니, [클래식]을 볼때는 6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청소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5시 58분에 입장을 시켜줘서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동안이나 입장을 해야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공짜 영화 초대권때문에 이 모든 실수를 애교로 웃고 넘어가려 했는데... 결국 저를 이렇게 골탕먹이는 군요. 윽~ 나쁜 XX같은 극장같으니라고... ^^;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일단 재미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저는 어찌나 웃었는지...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서 영화를 봐야했던 최악의 상황에서도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유쾌했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이나는 영화는 역시 [엽기적인 그녀]였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엽기적인 그녀]는 인터넷상에 올려져서 화제가 되었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이 새로운 소설의 형식은 기존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형식을 무시하고, 인터넷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기들만의 언어와 유쾌한 상황 설정으로 새로운 문화의 유행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와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바로 그러한 유행을 적절히 포착해냈으며, 이러한 유행의 포착은 흥행의 성공으로 곧바로 연결되었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흥행 성공은 아직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 영화의 예매 순위와 영화를 보고나온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최소한 흥행 실패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터넷 소설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이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엽기적인 그녀]보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엽기적인 그녀]에 비해서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더욱 꾸밈이 없고 진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엽기적인 그녀]는 인터넷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실제의 영화는 곽재용 감독의 영화였습니다. 곽재용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하여 포복절도의 웃음을 선사했던 원작을 자기맘대로 변형을 시켜서 엉뚱한 SF적인 상상력과 억지 감동, 그리고 우연에 의한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마무리함으로써 원작이 가지고 있는 진솔함에 흠집을 내며 변형시켰습니다. 그러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엉뚱한 상상력도 없을뿐더러, 인터넷 소설의 재기발랄함에 흠집을 낸 듯한 변형 또한 없을 정도로 원작의 진솔함을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진솔함은 상상력의 결여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유행인 인터넷 소설을 진정으로 스크린속에 옮긴 최초의 영화인 듯 합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무조건 관객을 웃기기로 작정을 한 듯이 보입니다. 이 영화엔 웃음뒤에 숨겨진 슬픈 사랑따위는 없으며, 우연으로 인한 해피엔딩 조차도 없습니다. 단지 수완(김하늘)과 지훈(권상우)라는 두 캐릭터를 맞딱뜨려놓고 맘껏 관객들을 웃기라고 주문 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순합니다. 도대체 수완과 지훈의 티격태격 폭소열전을 제외하고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분명 이러한 단순함은 어떤 분들에겐 영화의 단점으로 비춰질테지만 제겐 상당한 장점으로 비춰지더군요.
이 영화엔 사랑따위는 없습니다. 수완과 지훈은 영화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듯이 보이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이들의 사랑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서로를 이해하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수완의 가슴아픈 첫사랑이 잠시 그려지지만 그 첫사랑의 상대가 '주접'이라는 새로운 유행어를 창조한 이성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완의 가슴아픈 첫사랑 역시 그저 웃음거리로 전락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수완과 지훈의 사랑에 집착을 했다면, 혹은 수완의 슬픈 첫사랑을 애절하게 잡아냈다면, 그 순간 이 영화는 흔하디 흔한 닭살스러운 사랑 영화로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사랑이라는 달콤한 소재를 과감하게 거부함으로써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화를 둡니다. '사랑'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 어쩌면 이 생소한 새로움은 인터넷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원작으로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엔 엉뚱한 상상력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수완과 지훈의 캐릭터 성격을 설정해 놓고 서로 부딪혀 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티격태격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수완과 지훈의 캐릭터 성격만 가늠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예측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는 편안합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갑작스런 장면에 뒤통수를 맞을 필요도 없고, 마지막 반전을 알아내기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앉아서 수완과 지훈이 어떻게 티격태격하다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흔한 사랑도 없고, 엉뚱한 상상력과 요즘 영화들의 덕목인 반전마저도 없는 이 영화는 그렇기에 정말로 새롭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영화를 즐기라고 권합니다. 이 영화는 마치 '코미디 영화가 웃기면 됐지 뭘 바래?'라고 관객에게 당당히 선언하는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히는 인터넷 세대의 모습처럼...
이러한 이 영화의 단순함에 의한 웃음은 김하늘과 권상우라는 최적의 캐스팅으로 인하여 가능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과 차태현의 조합만큼이나 완벽해보이는 김하늘과 권상우는 스스로 서로의 이미지를 깨트림으로써 이 단순하지만 막무가내로 관객을 웃기게 만드는 영화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합니다.
김하늘... 이 배우는 처음 본 것은 [바이준]이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젊은 세대의 방항과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비록 흥행에는 비참하게 참패를 거두었지만 제겐 유지태와 김하늘이라는 젊은 두배우와 처음으로 만나게 해주었던 중요한 영화였습니다. 그 당시 김하늘에 대한 첫인상은 '정말 이쁘다'였습니다. 그 다음 작품이었던 [닥터K]에서의 김하늘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캐스팅이었지만, 곧바로 여러편의 TV 드리마와 [동감]이라는 영화로 청순함의 대명사로 제게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김하늘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발랄함으로 일관합니다. 비록 가정 형편때문에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만 하지만 씩씩하고 용감한 그러나 때로는 비굴한(?) 수완이라는 캐릭터는 김하늘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배우속에서 완벽하게 재현된 겁니다. 김하늘에게 저런 푼수끼가 있다니... 역시 배우란 변신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권상우... [화산고]에서 개폼만 잔뜩 잡던 송학림으로 기억되던 그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도 역시 개폼만 잔뜩 잡습니다. 하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의 개폼은 [화산고]에서의 개폼과는 뭔가 틀립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의 개폼은 왠지 반항기와 어수룩함이 섞여져 있으며, 그러한 것들은 지훈을 그저 싸움만 잘하는 짱 멋있는 남자가 아닌 반항기로 가득채워진 철없는 늙은 고딩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기에 그가 간혹 멋진 액션으로 동네 깡패들을 한방에 때려 눕힐때도 그의 액션은 고독한 영웅의 액션이 아닌, 철없는 반항아의 싸움박질에 불과합니다. 권상우는 바로 이러한 아슬아슬한 경계위에서 완벽하게 지훈을 재현해 놓은 겁니다.
그 외에도 언제나 공주 같을 것만 같은 김자옥이 맡은 수완의 어머니 역할도 전혀 의외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더욱 어울리는 최적의 캐스팅을 보여줍니다. 김자옥이 무시무시한 칼로 닭머리를 내리치는 모습은 비련의 사랑 주인공에서 푼수끼가 가득넘치는 여대생으로 변한 김하늘과 더불어 완벽한 변신을 보여줍니다. 역시 그 어머니의 그 딸이라고 해야하나??? ^^;
단순한 재미와 신세대 배우들의 유쾌한 하모니...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신세대 영화의 전형적인 영화적 재미의 틀을 보여줍니다. 단순하지만 결코 꾸밈이 없는 이 영화의 진솔함. 그렇기에 영화를 볼면서 한바탕 웃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잊어버릴 영화라는 일부의 비판속에서도 저는 이 영화의 웃음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중딩인 듯 보이는 한 여학생이 내뱉은 말처럼... '이 영화 대박이야.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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