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크 로렌스
주연 : 산드라 블럭, 휴 그랜트
개봉 : 2003년 2월 14일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 모두들 초코렛을 잘 받으셨는지... 혹은 잘 전해주셨는지...
발렌타인 데이는 제게 정말로 추억이 많습니다. 사춘기때부터 슬픈 사랑을 꿈꾸었던 제게 있어서 슬픈 사랑에 대한 상상의 시작은 항상 발렌타인 데이였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여자에게 먼저 다가서지 못하니 용기있는 여자가 제게 먼저 다가와 주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래서인지 발렌타인 데이때 초코렛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용기있는 남자만이 여자를 얻을 수 있다고 했거늘... 그땐 왜그렇게 용기가 없었는지... ^^;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팬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같은 학원을 다녔었던 동갑내기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워낙 활발한 성격이었기에 제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고, 우린 어느사이 정겨운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온겁니다. 은근히 그녀에게서 초코렛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저는 발렌타인 데이를 그 어느때보다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를 며칠 앞둔 어느날 그녀가 제게 다가와서 이렇게 묻더군요.
"넌 비싼 돈으로 주고 산 화려한 초코렛이 좋아, 아니면 손수 만든 정성이 담긴 초코렛이 좋아?"
그녀에게 질문을 받은 저는 하늘을 날듯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않고 태연한척 말했습니다.
"글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는 초코렛이라면 그 어떤것도 좋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정성이 가득담긴 초코렛이 좋지 않을까?"
"역시 그렇지? 알았어."
제 대답을 듣고 기쁜 표정을 짓는 그녀. 전 '내게도 드디어 이쁜 여자친구가 생기는 구나'하며 마음 설레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설레임은 발렌타인 데이에 산산조각이 났으니... 그녀가 좋아하던 남자는 사실 따로 있었던 겁니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생 형이었는데, 그녀는 그 형을 남몰래 짝사랑하며 초코렛을 준비했던 겁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나혼자 김칫국 마시며 좋아했으니...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형은 그녀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며 초코렛을 받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받은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저는 그녀를 달래주느라 진땀을 뺏답니다. 결국 그녀는 정성스럽게 만든 초코렛을 제게 줬습니다. 저는 그렇게도 원했던 초코렛을 받긴 받았건만 좋기는 커녕 기분만 상하고 말았죠.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그땐 왜그렇게 바보같았는지... ^^
암튼 그런 바보같은 어린 시절 발렌타인 데이의 추억은 이제 지나간 일이고...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는 언제나 제 곁에 있어주는 사랑스런 그녀와 두 손을 꼭 붙잡고 [투 윅스 노티스]라는 발렌타인 데이에 딱 알맞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았답니다. 물론 그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초코렛도 받았고요. 이 초코렛을 아까워서 어떻게 먹는담... ^^;
[투 윅스 노티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수많은 영화 장르중에서 로맨틱 코미디만큼 뻔한 스토리를 자랑하는 장르도 없을 겁니다. 이쁜 여자와 남자가 만나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고... 여기에 [귀여운 여인]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백마탄 왕자님이 등장하여 가난한 신데렐라와 사랑을 이룬다면 로맨틱 코미디의 스토리는 완벽하게 완성되어 집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전체인 스토리를 보면 뻔해보이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루는 세부적인 에피소드에서 차별화되어 아무리봐도 질리지 않는 재미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배우들의 매력까지 발휘되면 도저히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에서 헤어나오기 어렵죠.
[투 윅스 노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본다면 성격이 전혀 다른 매력적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집니다. 게다가 남자는 뉴욕의 잘나가는 백만장자이고, 여자는 가난한 변호사였으니...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다른 변주로 봐도 무방한 듯이 보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뻔한 영화를 돈내고 본다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이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 뻔한데 뭐하러 보느냐며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세부적인 에피소드의 달콤함과 배우들의 매력에서 발산되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재미를 간과했을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뻔한 로맨틱 코미디라도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재미는 각각 다른 것을... 그런 면에서 [투 윅스 노티스]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조지 웨이드(휴 그랜트)는 뉴욕의 거대 건설 회사인 웨이드사의 대표이사입니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탁월한 유머감각을 지닌 타고난 바람둥이이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래된 지역유산도 철거하고 콘도를 세우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속물입니다.
루시 켈슨(산드라 블럭)은 하버드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유능한 환경 문제 전문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로 변론과 법률 상담을 해주고, 지역 유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발벋고 나섭니다. 그리고 사랑은 감정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비슷한 사람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열혈 여성입니다.
조지 웨이드와 루시 켈슨... 이렇게 아무리 뜯어봐도 서로 닮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맞잡은 이 두사람. [투 윅스 노티스]는 이렇게 상반된 성격의 남녀를 마주앉혀놓고 어떻게 이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포스 오브 네이쳐], [미스 에이젼트]의 시나리오를 담당했으며, [투 윅스 노티스]로 감독에 데뷰한 마크 로렌스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능력을 십분 발휘합니다. 그는 조지와 루시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하는 누를 범하지 않습니다. 조지가 루시와 일하기로 결심을 하자마자 3개월 후... 6개월 후...라는 자막으로 이 두사람이 만난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관객들에게 인지시켜주고, 짧은 에피소드로 이들의 그 오랜 시간을 메꿔버립니다. 솔직히 이러한 스토리 전개는 많은 장점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른 두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서로 가까워 졌는지 세세하게 설명하려한다면 이 영화는 길고, 지루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크 로렌스 감독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최대한으로 생략함으로써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길들여진 그 다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관객에겐 단지 루시와 조지의 만남이 항상 이런 식이었다며 짧은 에피소드로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이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진 두사람이 이제 서로에게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후의 2주일간만을 아주 세세하게 보여줍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아주 효과적으로 이 두사람의 사랑을 표현한 겁니다.
루시와 조지가 만나지 거의 9개월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고, 단지 2주간의 시간만 묘사함으로써 빠른 스토리 전개를 통한 경쾌한 재미를 획득한 이 영화는, 2주간의 시간만큼은 아주 달콤한 에피소드로 채워넣음으로써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매력을 발휘합니다. 이러한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은 뉴욕의 백만장자인 조지와 자신의 신념에 결코 흔들림이 없는 열혈 여성 루시의 숨겨진 어두운 면이 서로에게 드러나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조지는 뉴욕의 잘나가는 백만장자라지만 사실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권은 형인 하워드에게 있으며, 아버지와 형에게 단 한번도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애정결핍 증세까지 보입니다. 반면 루시는 부모님의 지나친 기대때문에 맘대로 연애한번 못해본 사실 알고보면 가녀린 여성입니다. 이렇게 완벽하게만 보였던 이 두사람의 어두운 면은 밝혀지면서, 조지와 루시는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장점을 발견하게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신념으로 사귄 애인에게 채인 후 슬픔에 빠진 루시를 잘 위로해주는 조지의 따뜻한 모습이라던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홧김에 철없는 바람둥이로 사는 조지를 잘 보좌해주는 루시의 든든한 모습은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이러이러해서 이 두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더라'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관객의 가슴속에 전해집니다.
이렇게 두 주인공의 캐릭터의 성격을 이용하여 자연스러운 사랑을 그려나가는 이 영화는 이러한 두 사람의 성격으로 인하여 벌어지는 달콤한 에피소드로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킵니다.
특히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용변이 급한 루시를 임기웅변으로 잘 처리해주는 조지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고의 에피소드라고 할만 합니다. 그 외에도 루시와 조지가 티격태격하며 벌이는 그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왜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관객들이 로맨틱 코미디에 열광하는지 잘 설명해주는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휴 그랜트와 산드라 블럭의 녹슬지 않은 매력입니다.
이제 40대에 접어들었다는 휴 그랜트는 어쩌면 그렇게도 천연덕스럽게 바람둥이 백만장자 역활을 완벽하게 해내던지... 개인적으로 그의 매력은 약간은 어벙해보이는 소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제게 이 영화는 휴 그랜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였습니다. [어바웃 어 보이]의 철없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던 휴 그랜트는 [귀여운 여인]의 리차드 기어가 보여줬던 멋진 백만장자의 모습과 결합하여 결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바람둥이 백만장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겁니다.
헐리우드의 여배우 중에서 결코 이쁘다고 할수만은 없는 산드라 블럭 역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써 손색없는 매력을 발휘합니다. 오랫동안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자리에 등극했던 멕 라이언의 절대적인 귀여움도 없으며,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적인 마스크도 가지지 못한 산드라 블럭은 그러나 그녀 특유의 털털한 매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의 히로인으로써의 완벽한 자질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휴 그랜트와 산드라 블럭의 매력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속에 잘 녹아들어서 어찌보면 뻔한 이 영화를 더욱 풍족스럽게 만듭니다. 아마도 이것이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런지...
달콤한 에피소드 속에 배우들의 매력을 잘 표현한 [투 윅스 노틱스]는 이렇게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는 결코 손색이 없는 재미를 발휘하며, 뻔한 스토리 속에서도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능력을 품어냅니다. 사랑이란 것... 그것은 이렇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은 행복한 매력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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