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잡담

모욕죄를 신고하러 갔다가 모욕감만 느끼고 왔습니다.

쭈니-1 2010. 4. 30. 10:41

며칠전 네이버에서 제 아이디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쓰레기'라는 욕이 올라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쾌했고, 무엇보다도 제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써왔던 네이버 아이디가 직접적으로 거론 된것이 문제가 되겠다 싶어서 네이버 신고 센터에 해당 글을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제한 대상이 아님'이었습니다.

결국 해당 글을 올린 네티즌과 댓글로 공방이 오고갔고, 그 네티즌이 해당 글을 전혀 자진 삭제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거의 3일만에 돌아온 답변은 쓰레기라는 욕설은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으니 직접 경찰서로 찾아와 모욕죄로 신고하라더군요.    

전 귀찮았지만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해당 글을 캡쳐하여 양천 경찰서를 찾아 갔습니다.

먼저 민원실에서 진정서 작성하고(고소인의 신원을 알 수가 없으니 먼저 진정서를 작성하라더군요.) 경제3팀에 사건이 배정되어 담당 조사관에게 갔습니다.

담당 조사관은 제 진정서를 보더니 상당히 황당한 표정을 짓더군요.

하긴 요즘처럼 인터넷 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쓰레기라는 욕은 욕에 끼지도 못하겠죠.

하지만 전 모욕감을 느꼈고, 전화 상당을 해준 경찰도 모욕죄가 성립되니 경찰서에 직접 오라고 답변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담당 조사관은 이것 가지고는 모욕죄가 성립이 안된다면 절 한심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그가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근거는 첫째, 제 이름이 아닌 아이디가 거론된 점(모욕죄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아이디는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더군요.) 둘째, 글에서 거론된 아이디가 하나가 아닌 세개 였다는 점(따라서 누굴 쓰레기라고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군요.) 셋째, 이러한 글이 여러 차례 올라온 것이 아닌 겨우 한 차례만 올라왔다는 점(다른 사람들은 최소한 몇 차례 욕설을 듣고 경찰서를 찾는데 겨우 한번 들은 것 가지고는 모욕죄가 성립이 안된다네요.) 였습니다.

사실 전 그 조사관이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디는 엄연히 인터넷 상에서의 제 2의 자아이고, 글에 제 아이디가 있고, 글을 마무리 부분에 쓰레기라는 단어가 있으면 당연히 제게도 쓰레기라고 욕한 것이며, 고작 한 차례라고는 하지만 제가 모욕감을 느꼈는데 모욕죄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이...

그러한 상황에서 담당 조사관이 제게 '불쾌하니 좀 떨어져서 이야기하세요.'라며 얼굴을 찌푸립니다.

아~ 제가 속병이 있어서(게다가 그 날은 아침은 물론 점심도 굶은 상태였기에) 입에서 냄새가 났나봅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해 버렸습니다. 입냄새 때문에 창피하기도 했고, 경찰서라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제 스스로 위축되었나봅니다.

결국 담당 조사관은 이 사건은 자기가 '사건 성립이 안됨'으로 검사에게 넘길테니 알아서 하라며 그냥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만약 이 사람이 다시한번 이러한 글을 남기면 그때 찾아오라고 합니다.

경찰서를 나오는 길에 참 허무했습니다.

어쩌면 쓰레기라는 욕설보다도 경찰서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들은 '불쾌하니 좀 떨어져서 이야기하세요.'가 더욱 모욕감이 느껴졌기에 저는 모욕감을 해소하러 갔다가 오히려 모욕감만 안고 돌아온 셈입니다.

제가 별 것 아닌 것으로 바쁘신 경찰관님들을 귀찮게 한 죄 때문일까요???

어느 구청장은 구청 게시판에 네티즌들이 반말을 올렸다고 해당 네티즌들을 고소했다는데... 저처럼 힘없는 시민은 모욕을 느꼈어도 느낀 것이 아닌가 봅니다.

이번 일로 느낀 점이 많습니다.

첫째, 경찰서에 갈땐 가글을 하고 가자.

둘째, 죽을 만큼 힘든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경찰서를 찾는 짓은 하지 말자.(가서 더 큰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다.)

경찰서를 나와 뒤늦은 점심 식사로 냉면 한그릇을 먹으며 화가 나서 불타오르는 가슴을 차갑게 식혔습니다.

참 우울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