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라스트 캐슬>- 깜찍한 전쟁 놀이

쭈니-1 2009. 12. 8. 14:10

 



감독 : 로드 루리
주연 : 로버트 레드포드, 제임스 갠돌피니
개봉 : 2002년 1월 25일

전 전쟁 영화 싫어합니다. 이미 여러번 제가 전쟁영화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밝혔기에 '쭈니의 영화이야기'를 자주 읽어주시는 분들은 아마 제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겁니다. (모르시겠다면 <블랙 호크 다운>을 읽어보세요. 거기에 확실하게 써놨습니다. ) 그런데 요즘 자꾸 전쟁영화만 보게 됩니다. 안보면 될것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전 그게 안됩니다. 금붕어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눈앞에 먹이가 있으면 끝까지 먹는다잖아요. 그래서 배터져 죽는 금붕어도 있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희 집 금붕어는 얼마나 처먹었는지 이젠 금붕어가 아니라 거의 잉어 수준입니다. 배가 풍선만해져서 제대로 헤엄도 못치고 세로로 둥둥 떠다닙니다. 그런데 용케도 죽지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소화능력이 대단한 놈입니다. 그런데 그 금붕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저희 아버지입니다. 제가 먹이를 그만주라고 아무리 충고해도 아버지는 달랑 두마리만 사는 어항에 먹이를 잔뜩 넣어줍니다. 그게 금붕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고 계시거든요. ^^) 저도 그렇습니다. 눈앞에 영화가 있으면 아무리 바쁘고 졸리워도 그 영화를 봐야지만 직성이 풀립니다. 그 영화가 아무리 제가 싫어하는 전쟁 영화라 할지라도...
그래서 <에너미 라인스>도 봤고 <블랙 호크 다운>도 봤습니다. 전쟁 영화라기보다는 액션 영화에 가까웠던 <에너미 라인스>는 그럭저럭 재미있었지만 완전 전쟁 영화였던 <블랙 호크 다운>은 정말 미치는 줄 알았죠. 졸리워서... (러닝타임은 왜그리 길던지...) 그리고 오늘 저는 또한편의 전쟁 영화를 봤습니다. 바로 <라스트 캐슬>이라는 영화죠.

 

 


어쩌면 <라스트 캐슬>은 전쟁 영화라고 하기엔 조금은 무리가 있는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적군의 무자비한 공격은 시작되고, 병사들은 장렬한 최후를 당하고... 뭐 이런 전쟁 영화의 뻔한 줄거리를 이 영화에선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긴 그도 그럴것이 이 영화의 무대는 전쟁터가 아니고 교도소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전쟁 영화라고 우길만한 이유 또한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어윈장군의 딸만 제외하고...) 군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교도소는 바로 죄를 지은 군인들을 수용인 것입니다. 전쟁터가 아닌 교도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기위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교도소장과 전투를 벌이는 군인들... 이 영화의 전쟁은 이렇게 다른 전쟁영화에 비하면 아주 특이합니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군인(비록 죄를 지어 군인의 신분은 아니지만...)인 것 외에도 이 영화를 전쟁 영화라고 우길만한 이유가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전쟁 영화에 의례 등장하는 영웅이 이 영화에도 등장한다는 것이죠. 그 영웅이 바로 어윈장군입니다. 삼성장군인 어윈은 작전 수행중에 상부의 명령을 무시했다가 부하들을 전사하게한 책임때문에 이 교도소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애초에 자신의 실수로 부하들을 전사하게한 어윈의 정신적인 고뇌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를 영웅으로 만듬으로써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전설적인 인물이며 카리스마가 철철 넘처 흘러 모두들 그의 지휘를 받고 싶어하는 인물로 그려지죠. 솔직히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온화한 미소에서 전설적인 어윈장군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뒤에 가서 하죠.
암튼 이러한 어윈 장군과 대조되는 인물이 바로 교도소장인 윈터입니다. 그는 전투 경험이 전무한 군인으로써 전투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을 모으는 한마디로 겉만 군인인 그런 인물입니다. 그는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어윈을 굴복시키기위해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가 철저하게 망가집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한명의 영웅과 그에 대항하는 비열한 악당을 대치시키고 약간은 특이한 전투 장면을 그려나감으로써 다른 전쟁 영화와는 다른 그런 전쟁 영화를 완성시킵니다.

 

 


제가 <에너미 라인스>와 <블랙 호크 다운>보다 <라스트 캐슬>을 더 재미있게 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갑차와 헬기, 최정예 부대를 동원한 교도소장에 맞선 어윈의 무기라는 것이 기껏 투석기와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죄수들뿐이라는 특이한 설정때문이죠.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미국은 영웅 국가이고 이에 대항하는 나라는 악당 국가이다.'라는 그들의 유치한 설정이 이 영화엔 없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영화의 무대가 전쟁터가 아닌 자국내의 교도소 때문이겠죠. 덕분에 멀쩡한 나라를 악당의 나라로 만드는 그런 오만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미국인들의 호전적인 태도가 이 영화엔 물씬 풍기죠.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다.'라는 식의 그들의 영웅주의는 좀 뻔뻔스럽지만 그래도 자기네끼리 치고 받고 싸우는 전쟁이기에 덜 불쾌합니다. 아니 이 영화의 전투를 전쟁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겠군요. 차라리 전쟁 놀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겁니다.
암튼 심각한 전쟁 영화(<블랙 호크 다운>)와 호쾌한 전쟁 액션 영화(<에너미 라인스>)와는 차별을 둔 조금은 깜찍하기까지한 이 영화의 전쟁 놀이는 그렇기에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 생각없이 죄수들과 교도소장의 전쟁놀이를 구경한다고 해도 역시 돈내고 보는 영화이기에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자꾸 눈에 띄는 군요. 그것은 바로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카리스마 부재입니다. 전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배우는 좋아합니다. 그의 소년같은 미소와 아름다운 금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의 매력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국내에 개봉된 그의 영화가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의 국내 마지막 개봉작은 1998년 <호스 위스퍼러>라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멜로 영화였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컴백한 그가 맡은 역활이 카리스마를 주체할 수 없는 전쟁의 영웅이라니...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윗통수를 벗어 제끼고 나이에 비해 우람한 근육을 뽐내며 돌을 나르는 장면에서도 그의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는 커녕 안타까운 생각만 드는 것은 왜일까요? 나만 그런가요? 암튼 그러한 안타까움때문에 돌나르는 사건으로 인하여 죄수들한테 인정받고 그들의 대장이 된다는 설정이 실감이 안납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마지막 장면은 더합니다. 저격수들에 둘러싸인 그는 이 전쟁 놀이의 대미를 장식하기위해 윈터의 깃발을 거꾸로 걸려고 하고 이를 저지하기위해 윈터는 저격수들한테 그를 저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저격수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어 그를 저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윈터의 부관 역시 윈터를 배신하고 어윈의 편이 되죠. 이런... 이런... 아무리봐도 어윈에게는 그런 카리스마가 없던데... 하지만 뭐 어윈에게 그런 카리스마가 있다고 억지로 믿고 보면 그건 솔직히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의 라스트를 장식한 어설푼 감성주의입니다.
윈터는 부하들의 배신에 분개하며 직접 어윈을 총으로 쏩니다. 윈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어윈. 하지만 그는 죽으면서도 끝까지 깃발을 겁니다. 죄수들과 계획했던 이 전쟁 놀이의 대미를 손수 완성하고 싶었던 거죠. 아마도 군인의 자존심일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방위를 나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왜 깃발을 거는 것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거죠? 제가 보기엔 총에 맞고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깃발을 거는 어윈의 고집도 똥고집으로 느껴지고, 깃발하나 못 걸게하려고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윈터도 멍청해보입니다.
암튼 2시간에 걸친 이 깜찍한 전쟁 놀이는 마지막에 가서 이런 유치한 군인들의 자존심 세우기때문에 조금은 씁쓸하게 끝을 맺지만 라스트의 10여분을 제외한다면 정말 오랜만에 본 재미있는 전쟁(놀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