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나비>- 나도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고 싶다!!!

쭈니-1 2009. 12. 8. 14:09

 



감독 : 문승욱
주연 : 김호정, 강혜정, 장현성
개봉 : 2001년 10월 13일

토요일. 언제부턴가 저는 토요일이 되면 오늘은 무얼 해야하나 고민에 빠집니다. 이젠 토요일을 혼자 보낸지 벌써 5개월째에 들어섭니다. 어느정도 익숙해질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전 토요일을 혼자 보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홈페이지를 멋있게 꾸미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내 자신 개발에 너무 소홀했던 것에 대한 반성차원에서 시작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이 많이 남는 토요일에 할일을 스스로 만들어 혼자 보내는 것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위해서입니다. 그날도 그러했죠. 동료들은 모두 약속있다고 일찍 퇴근을 했지만 저는 제 홈페이지를 애인삼아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있었습니다. <맥콜에서의 하룻밤>이라는 국내 미개봉 영화를 한편보고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선 저는 집에 도착해서도 새로산 플래쉬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 솔직히 공부 무지 싫어합니다. 학창시절에도 수업시간에는 열심히 듣는 편이었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절대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서 공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었죠. 공부말고도 이 세상엔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의 절반을 공부에 시간을 쓰고나서 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제겐 시간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제가 다시 책을 잡았습니다. 이젠 하루의 절반 이상을 회사일에 쓰기에 공부를 할 시간이 너무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한 공부는 꽤 재미있더군요. 책을 따라서 해보니 나비가 꽃사이로 날아가는 플래쉬도 만들어지고, 내 스스로 공이 굴러가는 플래쉬도 만들어보고...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물론 간혹 집중이 안될때는 내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쓴 글들을 보기도 하며 머리를 식혔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 버리더군요. 여자친구와 재미있게 놀며 지내는 주말도 멋있지만 이렇게 공부에 빠져 지내는 주말도 생각보다는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오후 11시30분... 하루종일 컴퓨터만 들여다봐서 그런지 눈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꿨죠.

옛날 옛적... 제가 군대(방위)에 막 재대하고 휴학기간동안 만났던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주 어린 아이였죠. 그 아인 너무도 가난해서 지낼 집조차 없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아이를 동정했었지만 곧 그 동정은 사랑으로 바뀌었죠. 그것이 제 첫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아인 제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죠. 그 아인 나의 사랑을 알면서도 내 친구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때 전 처음으로 당한 실연에 어쩔줄모르며 가슴아파 했었습니다. 그 아이와의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아이때문에 아파한 시간은 꽤 길었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를 만났고(5개월전에 헤어진...) 그 아인 점차 내게서 잊혀져 갔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그런데 그날밤 꿈에 그 아이가 나타난 겁니다. 한손엔 갖난 아기를 안고... 그 아인 내게 울며 하소연하더군요. 남편이 자길 매일 때린다고... 그러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그러니 나와 결혼해달라고...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죠? 이젠 얼굴도, 이름도 잊혀진, 나의 사랑을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해버린 그 아이가 나에게 결혼해달라고 애원을 하다니... 그것도 갖난 아기를 안고... 하지만 저는 꿈속에서 잠시 고민을 햇습니다. 그녀와 결혼 할까??? 그러다 꿈에서 깼죠. 아침에 일어나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그 아이의 이름이 기억났죠. 하지만 사진 한장 남아있지 않기에 그 아이의 얼굴은 끝내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단지 꿈속에서 그 아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다고 믿은 거죠. 전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니?"
왠지 씁쓸해지더군요.
왜 갑자기 꿈 이야기를 하냐고요? 오늘 할 영화 이야기가 바로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나비>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 오후 저는 전날 빌려온 <나비>라는 영화를 보며 지금의 내 상황과 정말 딱 들어맞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었죠. 자! 이제 <나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나비>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한명은 기억을 잊으려하는 안나라는 여인과 기억을 되찾으려하는 K라는 택시 운전기사, 그리고 기억을 보관하려하는 유끼라는 어린 소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들입니다. 자!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 보죠.
안나는 아기를 잃은 죄책감에 그 과거를 지우기위해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 한국에 옵니다. 산성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납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배회하는 곳. 하지만 안나에게는 산성비보다 납중독 환자들보다도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의 기억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유끼라는 발랄한 바이러스 가이드 유끼를 만납니다. 하지만 유끼는 납중독 환자이며 남몰래 임신한 상태였죠. 그녀의 임신을 안 안나는 그녀를 기피하게 되죠. 하지만 묘한 운명의 끈은 그 두사람을 하나로 묶습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 택시운전기사인 K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져서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진짜 생일은 언제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과거에 대한 흔적인 어렸을때의 사진을 항상 택시의 앞자석에 놓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알아보는 사람을 애타게 찾죠. 이 세사람은 판이하게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으로 만나 서로에게 이끌리고 서로 갈등하며 결국엔 가까워 집니다. 마지막에 유끼가 아기를 낳다가 죽음으로써 이들의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 헤메는 여정은 끝을 맺지만 한나는 예전에 자신이 이 곳에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기억을 지우기위해 이곳에 오지만 결국 지워진 기억의 흔적들과 지울수없는 추억만을 안고 떠나게 되는 거죠.

 

 

제가 이 영화에 매혹된 것은 '망강의 바이러스'라고 하는 이 영화의 소재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잊고싶은 과거가 있을겁니다. 성격이 낙천적이지만 사랑에 실패 경험이 많은 저의 경우(2번이나 채였습니다.) 그 잊고 싶은 과거는 한때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이죠. 한때는 사랑했기에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랑했던 순간이 그대로 아픔으로 변합니다. 사랑했던 순간 행복했던 만큼 실연의 아픔은 더 크죠. (실연의 대가 쭈니... ^^;) 그러한 제게 있어서 망각의 바이러스는 곧 또 다른 사랑입니다. 저는 그녀와의 만남으로 첫사랑이었던 그 아이와의 사랑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나의 망각의 바이러스였던 그녀가 떠나자 까맣게 잊혀졌던 그 아이가 다시 나의 기억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합니다. 안나가 기억을 지우러 왔다가 유끼와 K와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해 잊혀졌던 기억만 되찾아 떠난것처럼... 다시 저는 망강의 바이러스를 찾아 또 헤매겠죠. 하지만 과연 이 세상엔 완벽한 망각의 바이러스가 존재하기는 한걸까요? 언젠가 제가 '과거를 잊으려 한다면 새로운 미래는 없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엔젤 아이즈>에서였죠. 예전의 홈페이지에 있으니 읽어보세요.^^) 하지만 그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과거를 잊지않고 인정한다는 것... 차라리 잊으면 편하지만 인정한다면 불쑥불쑥 그녀에 대한 생각때문에 슬픔에 빠지게되죠. 저도 그녀와 헤어진지 5개월이 지났지만 불쑥 그녀와 함께 보았던 영화라던가 함께 갔었던 장소 또는 그녀를 생각하게하는 조그마한 그 무엇때문에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해질때도 있죠. 그럴땐 정말로 망각의 바이러스라는 것이 있어서 특정 기억만 지워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죠. 망각의 바이러스... 저도 지금 그것을 찾아 산성비가 내리는 미래의 그 도시로 떠나고 싶습니다.


 

 


 


파르코
무료영화로 봤지만,좋은 영화였는데 ...참ㅋ  2009/07/30   

쭈니
ㅋㅋㅋ
무료로 보면 좀 더 관대해집니다. ^^
 200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