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05년 아짧평

스팀보이 Steam Boy (2004)

쭈니-1 2009. 12. 10. 19:05

 



감독 : 오토모 가츠히로
더빙 : 스즈키 안, 코니시 마나미

난 일본 애니메이션 광팬은 아닌가보다.

그래도 한때 [공각기동대]에 심취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을 며칠동안 줄줄이 관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만화책을 빌리러갈때도 일본 만화를 우선적으로 보며 그들의 상상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죠.
하지만 [스팀보이]가 개봉할때 저는 그저 '최신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는 구나'정도의 생각밖에 안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스팀보이]의 감독인 오토모 가츠히로는 일본에서도 꽤 알아주는 거장 애니메이터라는군요. '어! 정말?' 이런 의문이 들며 오토모 가츠히로의 전작들을 살펴봤는데 제가 아는 영화라고는 몇년전 봤던 [메모리즈]와 만화책으로만 봤던 [아키라]가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도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아키라]를 최고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꼽는데에도 전 갸우뚱했습니다. 왜냐하면 [아키라]는 만화책으로밖에 못봤지만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아키라]가 그렇게 명작이었던가? 오토모 가츠히로가 그렇게 거장이었던가? 그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아니었나봅니다. ^^;

[스팀보이], 네가 그렇게 대단해?

[스팀보이]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극장에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 그렇게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도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저로써는 [스팀보이]만큼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서 이 영화가 그렇게 대단한지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놓치고나니 갑자기 조바심이 나더군요. 그래서 컴퓨터를 고치자마자 이 영화부터 다운로드받았고, 고장난 CD라이터기를 교체하자마자 이 영화부터 가장 먼저 CD로 구워 결국 TV로 그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일단 영상은 꽤 스펙타클하더군요.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라더니 과연 그럴만합니다. 정감있는 캐릭터와 정교한 배경 그리고 19세기 중반을 배경으로한 칼라와 흑백의 절묘한 조화까지... 고전적인 분위기와 SF적인 상상력의 만남은 화면가득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라는 탄성만 나오더군요.

하지만 너무 교과서적인거 아닌가?

하지만 스토리 라인에 가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과학의 힘과 그 과학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인간의 이기. [스팀보이]는 어디에서 많이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습니다.
과학의 힘에 매료되어 증기(스팀)의 힘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에디와 증기의 힘이 나쁜 곳에 사용될 경우 인간의 생존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고 에디를 막으려하는 로이드. 그리고 조부인 로이드와 아버지인 에디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거대한 스팀성의 공격으로부터 영국을 구해내는 소년 레이.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으로써는 획기적으로 길다고 할만한 120분의 러닝타임의 채울만큼 [스팀보이]의 이야기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영화의 중반이 되면 이미 그 결말이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너무 착한 스토리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충분히 보여줬다.

이 영화가 너무 착한 스토리 라인때문에 영화의 막판 약간 힘이 딸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힘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스팀보이]를 외면하기에는 이 영화의 영상미는 애니메이션답지 않게 실사영화와 버금갈 정도로 스펙타클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스토리가 너무 교과서적이라고는 하지만 성인 관객이 봐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성인을 위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원더풀 데이즈]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네요. 막대한 돈을 들였으며, 2D와 3D의 조화로 색다른 영상미를 창조해냈던 우리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 이 영화 역시 어찌 생각해보면 [스팀보이]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팀보이]가 성인을 위한 교과서적인 애니메이션이라면 [원더풀 데이즈]는 성인이 보기엔 유치한 아이들을 위한 교과서적인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언제까지나 [아기 공룡 둘리]같은(그렇다고 [아기 공룡 둘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만 생산하게 될것이며 결국 협소한 시장으로인해 자연 도태되겠죠. 우린 언제 성인들을 위한 제대로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까요? [스팀보이]를 보며 우리도 저런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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