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비드 핀처
주연 : 조디 포스터, 포레스트 휘태커
개봉 : 2002년 6월 21일
<패닉룸>... 오늘은 제 개인 이야기를 훌쩍 건너뛰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왜냐고요??? 음~~~ 백수 생활이란것이 하루하루가 뻔해서 더이상 제 이야기 할 것이 없기때문에... ^^;
'이번주 개봉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패닉룸>은 이번주 기대작에 뽑힌 영화이며, 이 영화에대한 기대도는 무려 95% 입니다. 물론 제 기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데이비드 핀처와 조디 포스터라는 감독과 주연 배우의 이름입니다.
데이비드 핀처... 정말 말이 필요없는 감독입니다. 그의 데뷰작은 1992년작인 <에어리언3>입니다. <에어리언 시리즈> 중에서 가장 난해하며 재미없었던 영화로 꼽히는 <에어리언3>는 그러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스릴러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에어리언3>의 실패후 만든 작품이 그 유명한 <세븐>입니다. 개인적으로 스릴러 영화중 베스트3에 꼽을 정도로 제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세븐>에서의 그 암울하고 독특한 영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반전만 난무하다가 실패작이 되어버린 세번째 영화인 <더 게임> 이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파이트 클럽>이라는 또하나의 걸작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영화의 매력은 강렬함입니다. <에어리언3>에서부터 <파이트 클럽>까지 그의 영화를 보고있노라면 강렬한 영상 충격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바로 배우와의 조화입니다. 제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중에서 가장 실패작으로 꼽는 영화인 <더 게임>의 경우는 마이클 더글라스의 느끼한 연기가 영화의 암울한 분위기를 망쳤지만, 그 외의 다른 영화들... 특히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 <세븐>의 모건 프리먼과 브래드 피트,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는 영화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녹아들며 데이비드 핀처만의 영화 세계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가 헐리우드 최고의 지성파 여배우 조디 포스터와 만났습니다.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원래 <더 게임>에서 숀 펜이 맡았던 캐릭터는 조디 포스터가 맡기로 예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디 포스터가 임신하는 바람에 숀 펜으로 교체되었고 조디 포스터는 다음 작품에서 함께 일하자며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게 미안해했다더군요.
그 기사를 읽고 조디 포스터와 데이비드 핀처의 만남이 무산된것에 대해 상당히 아쉬워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 조디 포스터는 5년만에 그 약속을 지킨겁니다. <패닉룸>을 통해...
한마디로 전 조디 포스터와 데이비드 핀처의 만남을 위해 5년간이나 기다린 겁니다. 그러니 <패닉룸>에 대한 기대도가 95%일 수 밖에... ^^;
<패닉룸>의 가장 큰 재미는 바로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위협'입니다.
이혼녀인 멕은 당뇨를 앓고 있는 어린 딸 사라와 함께 새 집으로 이사옵니다. 단 두 가족인 멕에게는 너무 과분한 집이었지만 새 집에 설치되어 있는 외부의 어떤 침입에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안전 공간 '패닉룸'을 보고 멕은 충동 구매(?)를 해버린 겁니다.
그리고 새 집에서의 첫날밤... 낯선 3명의 침입자가 멕의 새집에 들어닥칩니다. 멕은 사라와 함께 패닉룸에 숨지만 하필 그들이 원하는 물건은 패닉룸안에 있었던 겁니다. 졸지에 패닉룸안에 갇혀버린 멕과 사라... 이제 멕은 어린 사라를 지켜며 낯선 침입자들도 물리쳐야 합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만 본다면 이건 상당히 흥미진진한 영화입니다. 특히 제가 맘에 들었던 것은 이 영화속의 아이러니입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이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돌변하고, 가장 안전한 방 패닉룸을 설계한 버냄은 이제 패닉룸안의 거액의 돈을 위해 패닉룸을 해체해야 합니다.
과연 영화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우선 결과부터 말한다면 이 영화는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셈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설정은 성공했지만 '가장 큰 위협'이라는 설정에서는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절반의 성공부터 이야기해보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쩌면 조디 포스터가 연기한 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장 안전한 방이라던 패닉룸입니다.
그 어떤 침입자도 결코 뚫을수없는 강철로 만들어진 패닉룸... 그리고 그 패닉룸안에 갇힌 멕과 사라... 공교롭게도 멕은 폐쇄공포증을 앓고 있으며 사라는 당뇨병 환자입니다. 사라의 약은 패닉룸밖에 있으며 그 밖엔 패닉룸안에 들어가려는 정체불명의 세남자가 버티고 있습니다.
결국 멕과 사라는 패닉룸안에 숨은 것이 아니라 패닉룸안에 갇힌 셈이 된겁니다.
침입자들은 결코 패닉룸안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하지만 멕과 사라도 결코 패닉룸안에 숨어있을수만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닉룸은 묵묵히 영화의 재미를 주도합니다.
패닉룸을 사이에 둔 멕과 침입자들의 전쟁은 특이한 방향으로 진행되며 이러한 특이한 상황속에서 영화는 다른 스릴러와는 차별화된 영화적 재미를 갖추는 겁니다.
만약 패닉룸이라는 이 영화만의 특별한 공간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평범한 스릴러로 전락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패닉룸이라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이 영화만의 재미를 갖추었으면서도 '가장 큰 위협'이라는 부분에선 실패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영화속의 침입자들이 '가장 큰 위협'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리숙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3명의 침입자들을 살펴보죠.
먼저 침입자의 리더인 주니어... 그는 패닉룸안에 숨겨진 막대한 유산을 혼자 차지하기위해 이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는 프로와는 거리가 먼 아마추어 얼간이에 불과합니다. 범행전에 집에 누가 있는지 사전 조사도 않고 무작정 침입하더니 멕 모녀를 발견하고 허둥지둥거리다가 멕과 사라가 패닉룸안에 숨을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의 치명적인 실수는 라울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를 범행에 끌여들인 겁니다. 만약 그의 계획대로 집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면 굳이 라울은 필요치 않았을 겁니다. 그는 라울을 범행에 끌여들임으로써 범행 배당금도 줄어들게 만들었으며 정체불명의 라울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그건 프로가 할짓이 아니죠.
최소한 범행을 벌이기위해 팀을 짠다면 철저한 사전조사와 범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 그리고 믿을수있는 팀원으로 팀을 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즉흥적으로 계획했으며 그러니 당연히 계획은 성공할수 없었던 겁니다. 영화속에서도 그의 모습은 냉혈한 악당이라기보단 우스꽝스러운 얼간이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그를 보며 '가장 큰 위협'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죠?
3명의 침입자중 가장 위험해보였던 라울 역시 주니어와 별반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뿐...
쥬니어를 우스꽝스러운 얼간이라고 한다면 라울은 총을 가진 우스꽝스러운 얼간이일 뿐입니다. ^^
침입자중 그나마 얼간이가 아닌 것은 패닉룸의 설계자 버냄뿐인데... 문제는 버냄은 너무 착하다는 겁니다. 아이의 양육비때문에 어쩔수없이 범행에 가담한 버냄은 절대 사람을 해치지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기에 '가장 큰 위협'이라기보단 오히려 패닉룸보다 안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세명이 침입자이니 당연히 관객들은 '가장 큰 위협'을 느낄수없습니다.
이렇듯 침입자들의 캐릭터가 너무 어리숙하다보니 이 영화는 결국 멕과 침입자의 대결이라기보단 멕과 패닉룸의 대결이 되고 맙니다.
영화의 후반 극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입니다.
멕은 사라를 살리기위해 패닉룸의 밖에 나갑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틈을 타 버냄과 라울이 패닉룸안에 들어가고 멕은 패닉룸의 밖에 내던져 집니다. 이제 사라의 목숨은 버냄과 라울의 손에 달린거죠.
분명 이 장면에서 멕과의 감정이입이 되어있는 관객들은 사랑하는 딸의 생명이 침입자들에게 맡겨진것에 대해서 긴장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버냄은 너무 착했고 라울은 너무 멍청했습니다.
오히려 멕이 패닉룸의 밖으로 밀려남으로써 멕과 패닉룸의 대결이라는 영화 중반까지의 흥미진진한 흐름이 멕의 침입자에 대한 반격으로 바뀌면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맙니다.
그 만큼 이 영화는 침입자들의 캐릭터가 약했고, 패닉룸이 너무 강력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이렇듯 패닉룸이라는 인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졌던 이 특이한 스릴러는 다른 스릴러와는 다르게 침입자들의 캐릭터 설정을 너무 현실적으로 만들어놓는 바람에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초래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