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탐라 데이비스
주연 : 브리트니 스피어스, 조이 살다나, 타린 매닝
개봉 : 2002년 6월 14일
어린 시절... 누구나 어른이 된 후에 이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고, 어떤 아이들은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이었죠.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가수가 되고 싶어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꿈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소박해보이지만 절대 사람의 의지로 이룰수없는... 제 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것이었죠. ^^;
하지만 사람들은 성인이 되며 어린 시절의 꿈을 잊고 삽니다. 모두들 삶의 무게에 짖눌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합니다.
저 역시 이젠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환상은 어느정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여자를 만나야 하고 여자를 만나려면 돈이 있어야하기에 무턱대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순진했던 저는 이젠 어느새 사랑을 하기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을 변하게 만드나 봅니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힘든 발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할때 지나치던 초등학교에서의 아이들의 그 활기찬 모습들을 보며 '나도 어렸을땐 저랬는데...'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도 제 자신이 서글퍼집니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큰소리로 웃고 떠듭니다. 하지만 전 언제 저렇게 큰소리로 웃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네요.
결국 회사에서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던 화요일...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던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난 지금 이렇게 불행한데...갑자기 송시현이라는 가수의 노래가 생각나더군요.
'사람들은 말하지. 인생은 슬픔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고... 난 믿지않았지. 슬픔의 인생을... 난 마냥 행복했지. 마치 꿈결같이... 세월이 날 철들게 해. 시간이 날 물드게 해. 안돼~ 안돼~ 안돼~~~ 난 변치않을래. 힘없는 어른들처럼... 난 믿고 살테야. 꿈결같은 세상...'
저 아이들도 이제 어른이되면 꿈결같은 세상에서 깨어나겠죠? -_-;
<크로스로드>는 꿈결같은 세상을 되찾기위해 길을 떠나는 세명의 여자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단짝 친구들이었던 루시와 미미, 키트는 자신들의 소중한 꿈을 박스에 소중히 넣어 땅속에 묻어둡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같이 꺼내보기로 약속하죠. 그리고 8년후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어있던 그들은 약속 장소에 모입니다. 그리고 8년전 땅속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꿈을 꺼내보죠. 모범생 루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만나보는 것이 꿈이었고, 심한 공주병 환자 키트는 바비인형처럼 예뻐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원치않은 임신을 한 미미는 LA에 가서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죠. 이제 그들은 지난 8년동안 잊고 지냈던 꿈을 되찾기위해 LA로 여행을 떠납니다. 낯선 벤이라는 남자와 함께...
영화는 처음부터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세명의 주인공들의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상을 보여줍니다.
모범생인 루시는 아버지의 강압때문에 맘껏 놀아본 기억조차 없으며 원치도 않은 의사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키트는 날씬해져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으며 LA에 있는 약혼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미미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으며 원치않던 임신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꿈결같은 세상을 꿈꾸며 자신들의 꿈을 땅속에 묻어두었던 이들은 8년이라는 세월동안 슬픔의 인생을 겪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떠납니다. 다시 꿈결같은 세상을 되찾기위해...
먼저 이 영화의 장점은 경쾌한 젊은 영화라는 점입니다. 세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되찾기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그 진행방식은 결코 심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유쾌합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팝계의 스타를 기용한 덕분에 귀에 익은 팝도 간간히 관객의 귀를 즐겁게 만들고, 서먹서먹해진 세 친구들이 여행을 통해 다시 우정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은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9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이 영화는 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제게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매력을 각인시켜 줄 정도로 그녀의 매력은 이 영화에서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90분동안의 킬링타임용 영화로 보길 원치 않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존재는 이 영화의 단점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세명의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되찾기위해 떠나는 경쾌한 로드무비이며, 여행을 통해 주인공들이 진정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훈훈한 성장영화이지만 더불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정면으로 내세워 그녀의 인기에 기대려하는 스타의 영화이기도 하기때문입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등장으로 이 영화는 우선 경쾌한 로드무비라는 이 영화의 장점에 커다란 상처를 입습니다.
영화의 초반 세명의 여성에게 보냈던 그 따스했던 시선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연기한 루시에게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꿈결같은 세상을 잃은 아픔은 이 세명의 여성들에게 어느 누가 중요하다 할수없을 정도로 똑같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친구의 남자친구한테 강간을 당해 원치않는 아기를 갖게된 미미의 아픔은 강압적인 아버지와 자신의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루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자꾸 미미를 밀어내고 루시를 정면에 내세웁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이 영화의 유일한 스타라는 점에서 흥행을 위해선 어쩔수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로드무비라는 이 영화의 장르를 생각해볼때 이건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미미의 아픔이 뒤로 밀리고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가질법한 일반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던 키트의 아픔은 아예 언급조차 없던 이 영화는 세명의 여성들이 잊고지냈던 꿈결같은 세상을 찾아 떠난다는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마치 루시의 성공을 위해 짜여진 각본처럼 모든 것을 루시의 입장에서 그리며 미미와 키트는 들러리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것은 루시가 가수로 성공적인 데뷰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분명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미미였습니다. 루시는 단지 어머니를 보기위해 이 여행에 동반한 것입니다. 루시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것은 영화초반 고등학교 졸업식때 어느 선생님의 한마디로 짧게 언급되긴 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확실한 꿈을 가지고 있던 미미는 어느 클럽에서 한 관중이 '저 여자 임신했어.'라는 한마디에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고 미미대신 노래 부르지 못하겠다고 내숭을 떨던 루시는 마이크를 잡자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관중을 휘어잡는 가창력을 선보입니다.
물론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가수가 주연을 맡았으니 어느정도 예상했던 진행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노골적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가수 오디션에 참가하려던 미미는 마치 루시에게 기회를 주려는 듯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루시는 갑자기 '내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라며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오디션에 참가합니다.
루시가 전혀 오디션에 참가한 아마추어 가수답지 않은 프로다운 무대 매너로 오디션을 보고있을때 뒤애서 코러스를 넣던 미미와 키트가 어찌나 불쌍해 보이던지...
만약 이 영화가 루시라는 캐릭터에 집중되지 않고 미미와 키트에게도 루시와 같은 시선을 보냈더라면 좀더 가슴에 와닿는 로드무비가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브리트니 스피어스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은 로드무비라는 이 영화의 장르뿐만은 아닙니다. 바로 성장영화의 길을 걷던 영화의 진행에도 커다란 차질이 빚어집니다.
루시와 키트, 미미는 분명 이 영화가 시작되기전 아직 덜 성숙한 아이들에 불과했습니다. 루시는 여전히 아버지의 강압을 뿌리치치못하고 있었으며, 키트는 자신의 길을 걷기보단 남자친구에게 기대어 세상을 살아가려 합니다. 미미는 뱃속 아기에 대한 기본적인 대책도 없이 무작정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합니다. 이들 셋은 분명 어른과 아이라는 중간의 기로에 서서 여행을 통해 성숙한 어른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은 결국 루시뿐입니다. 루시는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어머니가 자신을 원치않았다는 사실에 그 동안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아버지의 강압을 뿌리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반에 미미는 고작 계단에서 떨어져 원치 않던 아기를 유산했다는 것외엔 더이상의 성장은 없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가수의 길은 루시에게 빼앗겨 버리고 이제 그녀는 앞으로 살아갈 길을 막막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미미의 성장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정은 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꿈이었던 남자친구를 잃게된 키트는 분명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심각한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그 어디에도 키트가 미래를 향해 고민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녀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결국 푼수끼 가득한 공주병 환자에 불과했던 겁니다.
<크로스로드>의 이 심각한 편애는 로드무비와 성장영화라는 이 영화의 장르를 무색하게 할만큼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위한 영화로 완성되어 집니다.
차라리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없었다면... 아니 미미와 키트역을 맡은 배우들도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결코 뒤지지않는 스타가 맡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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