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바벳 슈로더
주연 : 산드라 블럭, 벤 채플린
개봉 : 2002년 6월 6일
6월 10일... 2002 한일 월드컵 한국과 미국의 경기...
폴란드를 2대0으로 꺾어 월드컵 첫승을 기록한 우리 대표팀은 그 여세를 몰아 최강 포르투칼을 꺾는 파란을 일으킨 미국을 넘어 16강을 확정지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만만치않은 경기...
전 3대1로 한국이 이긴다에 내기를 걸었습니다. 분명 우리 대표팀이 폴란드전만큼만 해준다면 3대1은 충분히 가능한 점수였습니다. 제 여동생도 제 의견을 따라 자기네 회사 동료들과 3대1에 내기를 걸었다고 그러더군요.
이젠 운명의 경기가 시작하기 3시간전... 저희 회사의 단축근무가 결정되고 오늘 휴무인 후배와 함께 시청에 가서 붉은 티를 입고 응원을 하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침부터 시청을 가득 메운 인파로인해 이미 발디딜틈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어디에서 이 운명의 결전을 응원해야하나 고민을 시작했었죠. 비는 주룩주룩오고 마땅히 갈곳은 없고...
결국 회사 동료 몇명과 후배와 함께 우리 집으로 향한 저는 캔맥주를 사들고 한국이 미국을 3대1로 꺾는 것을 관전할 만반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하지만 몇번의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우리 대표팀은 결국 미국에게 선취골을 내주었고 후반에 안정환의 환상적인 동점 헤딩골로 미국과 1대1로 비기는데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정말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설기현이 그 수많은 결정적인 찬스중 하나만 성공했더라면... 이을용이 패널티킥을 성공만 했더라면... 최용수가 이을용의 멋진 패스를 골로 연결만 시켰더라면... 정말 최소한 3대1로 이길수도 있었을텐데... 마치 마법에 걸린듯 우리 대표팀은 골결정력의 부재를 드러내며 다 이긴 경기를 1대1로 마감했습니다.
그나마 안정환이 동점골을 넣지못했더라면 우리 집에 모인 회사 동료들과 저는 분함을 참지못하고 과음을 할뻔 했습니다.
이제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고 미국전의 흥분이 어느정도 가라앉은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네요. 너무 잘 싸웠는데... 골키퍼와의 1대1 찬스가 몇번이나 있었는데... 하지만 포르투칼의 경기에선 분명 이길것입니다. 이번엔 몇대몇에 내기를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이번엔 2대1로 한국의 승리.
전반 설기현이 미국전에서의 실수를 만회하는 선취골을 넣어주고... 후반 교체 투입된 안정환이 미국전에서의 환상적인 헤딩골의 여세를 몰아 추가 골을 넣고... 포루투칼은 피구의 골로 체면치레하고... 정말 이렇게 될것이라 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월드컵의 열기를 잠시 가라앉히고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머더 바이 넘버>입니다. 또!!!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 이야기'를 꾸준히 읽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전 스릴러 영화 좋아합니다. 특히 제 뒤통수를 칠수있는 그런 스릴러 영화를 보고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최근 1년간 본 스릴러 영화중 제 기대를 충족시켜준 영화는 <디아더스>뿐이었습니다. 분명 스릴러 영화는 거의 매주 개봉하고 있는데...
제가 <머더 바이 넘버>에 그나마 기대를 한것은 감독이 헐리우드의 노장 감독 바벳 슈로더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위험한 독신녀>, <행운의 반전>등 스릴러 영화를 주로 만든 바벳 슈로더 감독은 분명 스릴러 영화가 갖추어야할 미덕을 오랜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을것이라 전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하이 크라임>을 보자던 후배를 설득해서 <머더 바이 넘버>를 보기위해 극장으로 들어섰죠.
<머더 바이 넘버>의 광고지를 읽던 후배의 한마디...
"불꽃 튀는 두뇌게임이래... 그럼 재미없잖아."
아마 후배는 머리쓰는 영화가 별로였나봅니다. 하지만 전 제발 이 영화가 광고카피처럼 관객과의 불꽃 튀는 두뇌게임을 벌이는 영화이기를 빌었죠.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머리 쓰지않는 영화를 기대했던 후배는 볼만했다며 좋아하더군요.
한마디로 이 영화는 또다시 관객과의 두뇌 싸움에서 실패한 또 한편의 그저그런 스릴러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최소한 제게는 말이죠... ^^;
그럼 <머더 바이 넘버>가 관객에게 제시한 게임을 설명하겠습니다.
<머더 바이 넘버>의 첫 장면은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냥한 두명의 소년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심을 상기하며 서로 자살할것을 종용하죠.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에서 비껴나고 한발의 총성이 울려퍼집니다.
이 첫 장면은 이 영화의 후반 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바벳 슈로더 감독은 먼저 영화의 결말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완벽하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절묘한 카메라워킹을 통해 관객들에게 이 두소년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믿게 만듭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는 이 영화속의 캐릭터들을 설명하죠.
천재이지만 내성적이고 학교에서 왕따인 저스틴과 저스틴과는 정반대형인 전형적인 고교 스타 리처드... 그리고 무언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듯한 터프한 여형사 메이워더가 차례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이 얽히고 설킨 살인사건도 보여줍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관객과 감독간의 게임이 시작된 거죠.
먼저 감독이 관객에게 오픈한 것은 사건의 범인입니다. 당연히 고교 동창생인 저스틴과 리처드가 범인입니다. 그리고 범행의 동기도 오픈합니다. 부모의 관심밖에 밀려난 두 고교생의 어처구니없는 장난이 그 동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실치는 않지만 저스틴과 리처드의 최후 역시 오픈합니다. 하지만 이건 함정일 가능성이 많으니 조심해야 겠죠.
솔직히 이 정도면 너무 많이 오픈한 셈입니다. 도대체 관객들에게 무얼 알아내라고 하는 건지...
결국은 과거의 상처로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메이워더가 어떻게 모든 걸 철저하게 준비한 이 대범한 10대 살인자들의 범행 사실을 밝혀낼것인가에 이 영화는 게임을 건 것입니다.
솔직히 전 이런 게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건 결말이 뻔히 보이는 게임이니까요. 게다가 이 영화는 마지막 저스틴과 리처드의 최후까지 오픈했으니 관객의 입장에선 더이상 밝혀낼것도 없습니다. 그냥 메이워더의 활약상을 구경할뿐이죠.
분명 바벳 슈로더 감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관객들이 이 영화에 대한 게임에 맥빠져 있을때쯤 캐릭터간의 대결이라는 새로운 흥미거리를 제시함으로써 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냅니다.
저스틴과 리처드간의 동성애적 분위기가 흐르고, 저스틴에게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기며 이 두 친구간의 동성애적 우정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남편에게 살해당할뻔했던 아픈 과거가 있던 메이워더는 저스틴에게 전 남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제 이들은 얼키고 설킨 관계속에서 서로간의 게임을 진행시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것 역시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이 영화의 처음 설정은 치밀한 고교생과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여형사의 게임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치밀해보였던 저스틴과 리처드는 어리숙함을 내비치고, 메이워더는 전혀 근거없는 증거를 내세워 리처드를 범인으로 몰아갑니다.
바벳 슈로더 감독이 제시한 캐릭터들은 분명 매력있습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창조할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으로 흐를수록 초반의 캐릭터 설정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며 평범한 스릴러로 전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완벽한 범죄를 계획했던 저스틴이 시체를 보고 결정적인 단서인 구토물을 현장에 남겨놓았다는 것도 그렇고 저스틴과 리처드가 여자 한명때문에 서로의 우정에 금이 가며 메이워더에게 덜미를 잡히는 것도 초반 저스틴과 리처드의 캐릭터 성격과는 맞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발을 현장에 남겨 놓음으로써 학교의 수위를 용의자로 몰고간 그들의 계획도 허술해보입니다. 만약 이들이 신발 자국을 현장에 남기지 않았다면 메이워더는 분명 저스틴과 리처드를 용의자로 지목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들이 단서를 일부러 남겨놓음으로써 메이워더와의 게임을 즐겼다면 이들은 좀더 치밀했어야 했습니다. 최소한 여자 문제로 서로간의 결속력을 무너뜨리고 쉽게 덜미가 잡히는 어리숙한 고교생이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워더의 사건 해결 능력도 그리 치밀해보이지 못합니다. 관객들이야 처음부터 범인이 저스틴과 리처드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의 뒤를 쫓는 메이워더를 응원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제가 영화속의 인물이고 사건의 범인을 알지 못했다면 메이워더의 추리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도 그럴것이 메이워더가 리처드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이유가 겨우 리처드가 자신의 전남편과 닮았다는 정도이니... 그녀는 동료 형사한테 이렇게 설득합니다. '내 예감을 믿어줘.'
사실적인 단서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수사를 해야하는 형사의 입에서 겨우 나온다는 소리가 자신의 예감을 믿으라는 소리라니...
영화는 후반으로 흘러가며 저스틴, 리처드와 메이워더의 게임을 벗어나 리처드와 저스틴의 게임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영화의 첫장면인 두 소년의 자살 장면이 나오죠.
이미 영화 초반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이제 저스틴과 리처드가 자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역시 감독의 함정입니다.
바벳 슈로더 감독은 관객에게 편안하게 메이워더와 저스틴, 리처드의 게임을 구경하라고 유혹한 후 마지막 반전을 통해 관객의 뒤통수를 치려 했던 겁니다. 분명 시도는 좋았는데...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선 그의 트릭은 매우 허술합니다.
전 처음부터 이 영화의 반전따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영화가 다른 곳으로 흘러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런데 바벳 슈로더 감독은 이런 뻔한 반전을 통해 감독과의 게임에서 벗어나있던 관객의 뒤통수를 치려 했던 겁니다. 나원참... ^^;
'올 여름, 당신의 심장을 파고들 충격 스릴러!'라던 광고카피가 무색한 이 평범한 스릴러 영화는 단지 귀엽던 산드라 블럭을 과거의 상처때문에 방황하는 여형사라는 복잡한 캐릭터로 변신시킨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