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원정수
주연 : 이덕화, 심혜진, 김종헌, 독고영재
우리나라의 스포츠중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야구도, 농구도, 축구도 아니다. 바로 당구이다. 대부분의 성인 남자가 당구를 즐기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당구장을 보유하고 있기까지 하다. 당구는 이미 우리의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으며 그렇기에 영화 소재로는 부적합한듯 보였다. 당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스펙타클이 부족하며 깡패소굴이라는 70년대식 당구장에 대한 나쁜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인감독인 원정수가 당구를 소재로한 영화를 만들어 일단 신선함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큐]는 그 어떤것도 바꾸어놓지도, 이루어놓지도 않은채 3류 영화로 끝나고 말았다.
혹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85년작 [컬러 오브 머니]를 기억하는가? 아마도 원정수 감독은 그 영화를 보았음에 분명하다. [컬러 오브 머니]는 왕년의 당구왕 폴 뉴먼이 당찬 청년 톰 크루즈에게 당구의 비법을 가르쳐주며 당구계를 평정하기 위한 여행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엔 마리 엘리자베스 마스트란토니오라는 여성이 폴 뉴먼과 톰 크루즈사이에서 방황하며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원정수 감독은 [큐]에서 폴 뉴먼은 이덕화로, 톰 크루즈는 김종헌으로 탈바꿈시켜놓고 심혜진을 통해 두사람의 갈등을 자아낸다. 그 대신 [컬러 오브 머니]보다 영화를 극적으로 만들기위해 이덕화에게 아픈 과거를 안겨 주었으며 독고영재라는 악당도 준비했다. 그리고 심혜진을 좀더 나약한 여인으로 설정하여 한국 영화의 상투성도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조잡했으며 캐릭터 설정 역시도 엉망이다.
우선 궁금한 것은 '이덕화와 심혜진이 왜 이 영화에 출연했는가?'이다. 이덕화의 경우 80년대 영화계의 빅스타였다. 90년대 정계 진출로 영화와 TV출연에 뜸했지만 아직까지 관객에게 그는 빅스타임에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큐]는 이덕화가 정계를 떠나 연예계로 복귀하는 첫 영화이기에 그에겐 중요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70년대 수준을 넘지 못하는 3류작 수준이며, 스토리는 여기저기에서 헛점이 보이고, 캐릭터 역시 엉망으로 설정되어 있다.
심혜진의 경우는 더 심하다. 최근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녀가 왜 이 영화 출연을 승락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젊은날 당구계를 주름잡던 도박사 민욱(이덕화)은 애꾸눈(독고영재)에게의 패배이후 자포자기한 삶을 살다 젊은 동수(김종헌)를 만난후 복수의 길에 오른다.
우선 민욱의 과거를 살펴보자. 그는 애꾸눈과의 경기에서 아내를 걸었다가 패배로 아내를 잃는다. 왠지 홍콩의 도박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유치한 설정이 생각나지 않는가? 이렇듯 민욱이라는 캐릭터는 원정수 감독의 유치함에서 시작한다.
동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천방지축 성격에 혜수(심혜진)를 사랑하고 그렇기에 민욱과 마찬가지로 혜수를 놓고 벌인 애꾸눈과의 게임에 지자 방황한다. 우선 첫번째 의문. 동수는 혜수를 사랑했을까? 이 영화엔 그 어디에도 동수와 혜수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힌트를 주지 않는다. 단지 동수와 혜수의 어색한 섹스장면만 보여준다. 두번째 의문. 동수는 왜 사라졌을까? 혜수가 애꾸눈에게 잡히자 민욱은 자신의 손을 희생하여 그녀를 구한다.(꼭 [지존무상]처럼...) 그런데 동수는 민욱과 혜수의 곁을 떠난다.
혜수라는 캐릭터는 더 심하다. 영화초반 그녀는 동수의 섹스 대상이었을뿐이며, 민욱과 동수의 갈등의 원인이었으며, 동수를 방황케한다. 그런데 뜻밖에 영화 후반 갑자기 애꾸눈에게 복수하는 중요한 캐릭터로 탈바꿈한다. 세상에 3년만에 당구의 천재가 되어버리다니...(난 10년동안 당구쳐도 아직 80이다 ^^;)
원정수 감독은 [컬러 오브 머니]와 홍콩 도박 영화의 플롯을 빌어 장난처럼 영화를 만들었으며 마치 당구하는 스포츠를 저속한 스포츠로 묘사하는 실수도 범했다. 진심으로 원정수 감독에게 바라는 것은 이렇게 영화를 만들려면 더이상 한국 영화 망신시키지 말고 영화계를 떠나라는 것이다.
1997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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