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구성주
주연 : 김갑수, 양정지, 이응경, 김정현, 이호재
언제부터인가 감독으로 데뷔하기위해서 젊고 재능있는 신인 감독들이 로맨틱 코미디를 사용했다. 그러나 구성주 감독은 하일지 원작의 소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함으로써 일단은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하일지의 대표작 [경마장 가는 길](장선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에서 보여주었듯이 그의 소설은 부정과 섹스속에서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구성주 감독은 자칫 잘못하면 포르노그래피의 유혹속에 빠질 수 있는 영화를 어떻게 그려 냈을까?
솔직히 말해 구성주 감독의 이 데뷔작은 일단 신선하다. 그는 대사는 철저히 절제하고 배경음악만으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표현해내는 자질을 보여주었으며 손가락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머리에 겨누고 자살하는 장면등 영상속 이미지 효과는 제법 큰 힘을 과시한다. 그러나 그 뿐이다. 이 영화는 신인감독의 신선한 데뷔작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등장인물의 구성에 있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인을 형에게 빼앗긴 수(김갑수)와 이제 그의 형수가 된 여인(이응경) 그리고 사실은 수의 아들인 동준(김정현)과 호텔 여종업원 난희(양정지)로 구성된 이 영화는 과거엔 형제가 한 여인을 사랑하더니 현재엔 부자가 한 여인을 사랑한다. 과거엔 애인을 형에게 빼앗긴 상실감에 미국으로 떠났던 수는 현재엔 20세의 젊은 여인 난희를 차지한다. 그리고 동준(공교롭게도 나와 이름이 같다.)은 과거에 수가 그랬던것처럼 배신감과 복수심을 안고 러시아로 떠난다.
이러한 인물 구성은 영화속에서 상당히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성주 감독은 수와 난희의 도피적인 사랑에 촛점을 맞추어 버린다. 그렇기에 수와 난희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영화속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린다. 그렇기에 '사실은 동준이 수의 아들이다'라는 형수의 고백을 받아도 수의 충격따위는 이 영화속에 표현되어 있지 않다.
구성주 감독은 여기에서 함정에 빠진것이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표현하기보다는 수와 난희의 야한 육체적 관계에 집착함으로써 원작이 가지고 있는 포르노그래피속에 빠져 버린다. 그렇기에 관객은 수의 복잡한 내면세계탐구보다 양정지의 누드에 신경을 쓰게되고 그렇게됨으로써 일시적으로 이 영화는 관객의 흥미를 자아냈지만 그냥 중년 남자와 젊은 여인의 사랑적 파국이라는 단순한 주제를 이끌어내는데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구성주 감독은 또 신인 감독으로서의 미숙한 점도 함께 보여주었는데 영화속에서 수에게 나타나 '지타를 아느냐'고 묻는 낯선 남자(이호재)의 등장은 영화의 진행을 방해한다. 특히 오프닝 장면에서 낯선 남자가 '지타를 나으냐'고 물은 후 영화의 타이틀이 나타나는 장면은 구성주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우습기까지 했다. 또 구성주 감독의 멈춰진 시간 표현을 위해 공항과 나이트 클럽장면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정지시켰는데 간혹 움직이는 사람이 보이는 바람에 이 장면은 어색해지고 말았다. 결국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자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듯 구성주 감독은 신인 감독의 미숙함을 벗지 못하고 함정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다른 장르의 영화로 데뷔했다는 점만으로도 왠지 그에게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보고 싶다.
1997년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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