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길수
주연 : 박근형, 장미희, 최정윤, 이호재, 홍리나, 최종원
6개월만에 150만부라는 초유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아버지 신드룸'을 불러일으킨 김정현의 베스트셀러 [아버지]는 90년대 후반들어 우리 가정의 모습을 감동깊게 그려낸 수작이다. 60년대의 어려웠던 시기를 거쳐 70,80년대 경제 부흥의 일꾼이었던 우리들의 아버지. 이제는 일에 파묻혀 살았던 그 동안의 삶때문에 가족들과 단절되어 버렸고 요즘 불어닥친 불황때문에 직장에서의 위치도 위태로워졌다. 소설 [아버지]는 명예퇴직이라는 위기속에서 우리들의 아버지를 다시보기 시작한 요즘의 분위기속에 적절히 출판되어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등 감동적인 영화를 주로 연출했던 장길수 감독이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아버지]를 영화화했다.
그렇다면 장길수 감독이 그린 아버지의 초상화는 어떠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장기인 멜로극의 형식을 철저하게 따랐다. 70,80년대 멜로 스타 장미희의 캐스팅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영화 [아버지]는 그러한 장길수 감독의 스타일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우선 이 영화는 충분히 슬프다. 장길수 감독은 코미디 영화의 틈새속에서 멜로 장르를 부활시켰으며 아무리 메마른 감성을 가진 관객이라도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멜로극의 형식이 이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장길수 감독은 80년대 풍의 멜로 드라마는 성공적으로 부활시켰으나 결코 90년대의 새로운 멜로 드라마는 창조해내지 못했다. 장미희의 연기는 80년대 멜로 분위기가 너무 물씬 풍겼으며, 앙케이트 조사결과 아버지 모습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로 뽑혀 이 영화에 캐스팅된 박근형은 TV에서 너무 비열한 이미지를 남발한 덕분에 관객에게 거부감을 안겨주었다.
장길수 감독은 소외된 아버지와 가족의 화해보다는 불치의 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중요하게 그림으로써 너무 관객의 감성에 호소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가족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아버지의 병을 안 다음부터라는 설정 자체가 이 영화의 실수인 것이다.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하던 딸 지원(최정윤)과 아버지의 화해에 장길수 감독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야 했다.
아버지가 가족과의 단절속에서 우연히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게해주는 고급 요정의 여종업원 소령(홍리나)의 캐릭터는 아무 의미없이 스치듯 끝나버리고 포장마차 주인(최종원)은 별 이유없이 너무 자주 영화속에 등장하여 극의 진행을 방해한다.
어차피 영화는 소설과 달라 시간에 구애를 받는 예술이라면 소령이나 포장마차 주인등 별로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를 생략해서라도 아버지와 지원의 화해에 중점을 두었어야 했다.
70년대 경제 주역과 신세대의 갈등과 화해, 그 속에서 아버지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것 그것이 관객이 원했던 영화 [아버지]였던 것이다. 단지 멜로 드라마의 [아버지]로 멈춘것이 너무나도 아쉽지만 오랜만에 코끝이 찡해지는 한국 영화를 만난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듯 하다.
1997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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