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밀리언달러 호텔>- 주류가 되기를 거부한 비주류 인생들.

쭈니-1 2009. 12. 8. 14:42



감독 : 빔 벤더스
주연 : 멜 깁슨, 밀라 요보비치, 제레미 데이비스
개봉 : 2002년 5월 31일

오늘 2002 월드컵 폴란드와 한국의 경기를 보셨나요? 우리 대표팀 정말 잘 하던데요. 폴란드에게 2대0으로 완승을 거둘줄이야.
전 회사 동료들과 이번 게임을 가지고 내기를 했었습니다. 전 2대1로 한국이 이긴다는데에 걸었었죠. 하지만 너무 많은 동료들이 2대1로 한국이 이긴다에 걸더군요. 그러면 배당금이 떨어지는데...
그래서 그냥 모험하는 셈치고 2대0으로 한국이 이긴다에 걸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한국이 2대0으로 이길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가 시작했을때 전 단지 한국이 이기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런데 전반전을 1대0으로 이기더니 후반전에서도 1골을 더 넣어서 2대0으로 이기더군요. 그때부터 내깃돈에 대한 욕심이...
정말 피말리는 게임이었습니다. 특히 안정환... 2대0에서 경기가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자꾸 안정환이 한골 더 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어찌나 마음 졸였는지... ^^;
다행히(?) 안정환의 슈팅이 아슬아슬하게 골문을 빗나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암튼 지금 저는 최고의 기분입니다. 우리대표팀이 그토록 원하던 월드컵 첫승을 거뒀으며, 이대로 나가면 16강은 물론 8강도 문제없어 보이고, 덤으로 내기에서도 이겨 일주일치 용돈에 버금가는 돈을 벌었으니... ^^
어제 본 <밀리언달러 호텔>의 영화이야기를 쓰기위해 컴퓨터에 앉았지만 아직도 황선홍과 유상철의 그 멋진 골이 생각나는 군요.
와~~~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빨리 미국과 포르투칼과도 경기를 가졌으면... 지금 이 분위기라면 미국은 4대0... 포르투칼은 1대0으로 이길지도... 또 내기걸어야지. ^^  


 

 


자! 이젠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밀리언달러 호텔>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밀리언달러 호텔>은 일단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리고 헐리우드의 톱스타인 멜 깁슨 주연이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관객들은 헐리우드의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가지 눈여겨 봐야 할것은 감독이 빔 벤더스라는 점입니다.
빔 벤더스... 그는 우리에게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로 알려진 독일감독입니다. 전 그의 영화를 단 한편도 안봤지만 본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그의 영화는 거의 수면제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그는 흥행성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가 헐리우드의 대표적 흥행배우인 멜 깁슨과 손을 잡다니...
이건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먼저 빔 벤더스 감독이 드디어 헐리우드의 주류 감독이 되기로 작심을 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상당히 가능성있는 추측입니다. 왜냐하면 <밀리언달러 호텔>의 장르가 스릴러이니까요. 스릴러는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주류 장르입니다. 그가 이제 비주류 영화를 버리고 헐리우드의 흥행배우 멜 깁슨과 손을 잡고 주류 감독이 되기위해 <밀리언달러 호텔>을 선택했다면??? 빔 벤더스 감독을 좋아하던 많은 영화팬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상업 영화를 선호하는 더 많은 관객들에겐 정말 반가운 일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면 또 다른 추측은 헐리우드의 빅스타 멜 깁슨이 빔 벤더스의 영화 세계에 반해 그의 비주류 영화에 출연했는지도... 그렇다면 이건 멜 깁슨의 이름을 보고 이 영화를 선택한 수많은 관객들에겐 매우 당혹스러운 일일겁니다. 그 누구도 멜 깁슨의 영화에서 철학적인 졸리움을 기대하진 않았을테니까요.
전 솔직히 이 영화가 전자이길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비주류 감독들이 주류에 합류하여 더욱 뛰어난 오락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많이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후자입니다. 한마디로 <밀리언달러 호텔>은 멜 깁슨의 영화가 아닌 빔 벤더스의 영화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비주류 감독이 만든 스릴러 영화는 어떨까요???
전 이 영화의 공격적인 광고 카피가 좋았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추리한다.' - 상당히 공격적이죠? 이런 광고 카피를 볼때마다 전 전의에 불타곤 합니다.
'그래! 니가 도전을 했단 말이지. 그 도전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분명 하나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FBI요원 스키너가 파견되며 영화는 전형적인 스릴러의 형식을 취합니다. 스키너는 밀리언달러 호텔에 묶고 있는 7명을 모두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이제 이 7명중에서 누가 범인인지 관객은 맞춰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분명 이 영화가 스릴러라면 그랬을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는 그따위 살인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영화는 살인에 대한 단서를 관객에게 제공하지도 않을뿐더러 사건의 해결을 위해 파견된 FBI요원 스키너와 관객간의 동일화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스릴러가 되려면 이 두가지는 필수적이어야 했습니다.
관객과 게임을 벌이려면 정당하게 관객에게도 단서를 제공해야하며, 영화속에서 범인을 맞춰야하는 주인공과 관객들은 동일화되어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관객들이 동일화하게 되는 캐릭터는 가장 유력한 살인 용의자인 톰톰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이것이 이 영화를 보는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때쯤 제가 나름대로 내린 결정은 이 영화는 주류와 비주류간의 싸움을 다룬 영화라는 겁니다.


 

 


자! 일단 이 영화속의 살인 사건을 살펴보죠.
이 영화에서 죽은 인물은 부랑자 무리가 살고 있던 쓰레기같은 여관 밀리언달러 호텔에서 숙박료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던 마약중독자 이지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언론 재벌의 아들이었던 겁니다. 이지의 아버지는 그가 살해당했다고 확신하며 최고의 수사요원 스키너를 투입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하는 거죠.
저는 먼저 이 영화의 공간인 밀리언달러 호텔에 주목했습니다. 미국 최대의 도시 LA에 위치한 밀리언달러 호텔은 마치 LA라는 주류속에 자리잡은 작은 비주류들의 공간처럼 보입니다.
당연히 밀리언달러 호텔에 사는 여러 인간군상들은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비주류들인 거죠.
그들은 이지가 재벌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이지를 이용하여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위해 노력합니다.
비비안은 이지가 죽기전에 자신과 약혼했었다고 주장하고 제로니모는 자신이 훔친 그림이 이지의 그림이라 속여 한 몫 잡으려 합니다. 다른 이들도 저마다 죽은 이지를 이용하여 한 몫잡음으로써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위해 노력하죠.
하지만 약간 모지란 듯한 톰톰과 그가 사랑하는 여인인 엘루이즈만은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밀리언달러 호텔이라는 비주류의 공간에 흘러들어온 주류의 대표적인 인물인 스키너는 유혹을 하기 시작합니다. 톰톰에게 범인에 대한 단서를 알려주면 엘루이즈와 하룻밤을 같이 지내게끔 해주겠다고 약속한 거죠.
하지만 스키너의 계획과는 달리 톰톰과 엘루이즈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며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것을 끝내 거절합니다.


 

 

    
그렇다면 왜 톰톰과 엘루이즈는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것을 거부했을까요.
먼저 톰톰은 바보입니다. 그는 바보이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순진하고 정직했던 거죠. 그에게 돈이나 명예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보니까... ^^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욕심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거죠. 그렇기에 굳이 지금의 삶을 버리고 주류 사회에 편입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전 톰톰이라는 캐릭터에서 주류 감독으로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는 빔 벤더스감독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에겐 분명 흥행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 깁슨이라는 빅스타와의 영화에서조차 자신의 색을 버리지 않는 우둔함(?). 어쩌면 그는 톰톰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일지도...
주류 사회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또다른 캐릭터인 엘루이즈의 경우는 상처때문입니다.
그녀는 남자들한테 강간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상처로 인한 약간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죠. 그녀에게 있어서 주류 사회는 결국 이런 상처뿐이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차라리 안전한 비주류를 선택한 것일지도...
이것 역시 비주류 감독임을 자처하는 빔 벤더스 감독과 연관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 주류 감독들에겐 흥행과 돈, 명성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지만 만약 흥행에 실패했을 경우 모든 것을 잃고 말죠. 그건 달콤한 유혹임과 동시에 어쩌면 함정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감독들이 흥행 실패와 함께 사라져 갔는지...
그는 비주류 감독임을 자처하며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하고 있기에 굳이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이제 영화는 후반으로 흐르고 범인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범인은 결국 톰톰이었죠.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영화가 스릴러가 될 수없는 이유입니다.
만약 이 영화가 스릴러라면 범인은 절대 관객과 동일화되었던 캐릭터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건 관객에 대한 모독이죠.
생각해보세요. 범인을 잡기위해 영화속의 주인공과 동일화되어 이리저리 추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니가 범인이야.'라고 밝혀진다면... 이건 당혹스러움을 떠나 억지가 되고 마는 겁니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범인이라면 내가 내 범죄를 모를리가 없으니까요.
차라리 애초에 '니가 범인이다'라는 것을 밝혀두고 관객과 범인을 동일화 시킨다면 관객은 살인자가 되는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않고 실컷 추리하고 있는데 '니가 범인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억지라는 거죠.
하지만 이 영화는 애초에 이지의 죽음과 그 범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에 주인공인 톰톰이 범인이라해도 그리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이제 톰톰은 모든 거짓을 털어버리고 호텔의 옥상에서 마치 새가 하늘을 날듯 뛰어내립니다. 결코 주류 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했던 톰톰은 그렇게 자유를 되찾은 거죠.
결국 이 영화의 최고 흥행 요소인 멜 깁슨은 단지 주류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당혹스러웠을밖에...
멜 깁슨이 주인공도 아닐뿐더러... 기대했던 스릴러도 아니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