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상원(사방에 적), 박광현(내 나이키), 이현종(교회 누나)
주연 : 신하균, 임원희, 정재영, 류승범, 김일웅, 박선영
개봉 : 2002년 5월 31일
남자는 항상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줄아는 슈퍼맨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여자앞에선...
예전에 제 곁을 떠난 그녀는 항상 제게 이런 이야기했었죠. '난 기댈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해'.
하지만 저는 그녀보다 아는 것도 없었고, 그녀보다 더 잘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녀에게 기댈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던 셈이죠.
그녀가 떠난 후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수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물론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토요일 오후... 요즘 자주 만나는 후배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컴퓨터를 살건데 같이 가자고... 그녀는 제가 컴퓨터에 대해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저는 아직도 컴맹 수준인데...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할지라도 그녀에게 '난 컴퓨터 하나도 못해.'라고 말할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난 남자니까... 그리고 남자는 여자앞에선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는 슈퍼맨이 되어야하니까...
하지만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컴퓨터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프로세서가 펜티엄4가 최신이고 하드 용량은 최소한 40기가는 되어야 한다는 것 뿐이었으니...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직원을 꼬셨습니다. 좀 도와달라고...
그리고 그녀와 만나기로한 일요일...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직원의 도움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어낸 그녀는 내게 이러더군요. '역시 믿을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소릴 듣고나니 또 떠난 그녀 생각이나더군요. 왜 그녀한테 전 슈퍼맨이 되지 않았었는지... 전 단지 그녀가 너무 편해서 한없이 그녀에게 기대고만 싶었던 겁니다. 그녀가 제게 기대고 싶었다는 것도 모르고... 이젠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암튼 후배와 컴퓨터 고르고, 영화 한편 보고, 보쌈에 소주마시고, 청바지 한벌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 서글퍼 지더군요. 슈퍼맨이 되어야만 하는 제 운명이... ^^;
꿀꿀한 기분을 달래기위해 후배와 본 영화는 <묻지마 패밀리>입니다. 모두 아시겠지만(모르시나요??? ^^;) <묻지마 패밀리>는 5월 마지막주의 '쭈니의 기대작'이었죠. 전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래서 후배가 <하이 크라임>을 보자고 우겨도 그녀를 설득해서 결국 보고 말았죠.
제가 이 영화에 대해 기대가 컸던 이유는 우선 영화의 기획 프로듀서를 맡은 장진감독이라는 존재때문입니다. 예기치못했던 웃음을 선사했던 데뷰작 <기막한 사내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로 이어지는 장진감독의 연출작은 언제나 제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전혀 웃기지 않는 상황에서 웃음을 연출해내는 그의 영화들을 보고있노라면 전 언제나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곤 했었죠.
비록 <묻지마 패밀리>가 장진 감독의 연출작은 아니지만 '장진 패밀리'라 불리우는 재기넘치는 신인 감독들과 스타급 배우들이 펼치는 세편의 단편 영화들이 또 어떤 예기치 못한 웃음을 안겨줄지 전 이 영화의 개봉전부터 기대가 꽤 컸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기때문이었을 까요??? <묻지마 패밀리>는 제 기대를 채워줄만큼 대단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세편의 단편 영화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단편 영화를 엮은 이 영화의 새로운 시도때문이었습니다.
단편 영화는 장편 영화보다 시간이 짧기때문에 그만큼 짧은 시간에 영화속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기에 장편 영화처럼 배경 설명이나 캐릭터 설명등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제가 <묻지마 패밀리>가 단편 영화들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점때문입니다. 솔직히 장진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영화의 배경 설명이라던가 캐릭터 설명따위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진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영화속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캐릭터들이 그 상황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호흡이 짧은 단편에서 그의 캐릭터들은 얼마나 빠르게 영화속의 상황에 대처해 나갈것인가???' 이것이 제가 이 영화에 걸었던 기대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들은 두번째 에피소드인 <내 나이키>에서부터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제가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것은 장진 감독은 단지 기획 프로듀서일뿐 이 영화의 감독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이 영화의 감독들이 '장진 패밀리'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감독임을 전 잊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전 <묻지마 패밀리>에서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를 기대하고 있었으니...
솔직히 이 영화에서 제 기대를 충족시켜준 감독은 첫번째 에피소드인 <사방에 적>을 연출한 박상원 감독뿐이었습니다.
마치 헐리우드의 타란티노 패밀리가 만들었던 옴니버스 영화 <포룸>을 연상시키는 <사방에 적>은 작은 러브 호텔에서 벌어지는 여러 군상들의 모습을 포착해내며, 그들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부여하고 그 사건에 맞추어 그들이 대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상황극입니다.
여러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그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우연히 같은 러브 호텔에 묵은 손님일뿐이며 얽히고 설킨 상황속에 서로 대치하는 인물들일 뿐입니다.
<사방에 적>은 이러한 전형적인 상황극을 표방하면서도 단편 영화다운 새로운 시도도 곁들입니다. 갑자기 얽히고 설킨 캐릭터들이 멈추더니 어색한 슬로우 액션을 펼치는 마지막 장면은 분명 장진 감독다운 새로운 시도이며, 그렇기에 <사방에 적>의 연출을 맡은 박상원 감독은 가장 장진 감독다운 아니 나쁘게 말하면 <묻지마 패밀리>의 세명의 감독중 가장 자기 스스로의 개성을 표현하지 못한 감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것은 장진 감독의 재기발랄한 단편 영화를 보고 싶었던 제겐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였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에피소드인 <내 나이키>에 가선 감독들은 제각각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분명 그것은 세명의 다른 감독의 단편을 엮은 <묻지마 패밀리>의 장점이어야 할텐데... <묻지마 패밀리>가 장진 감독의 이름에 너무 기대고 있는 탓에 오히려 단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 나이키>의 배경은 80년대 초반... 주인공은 나이키 신발이 갖고 싶었던 한 순진한 중학생입니다.
<사방에 적>이 러브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의 상황극이었다면 <내 나이키>는 우리가 잊고 지낸 지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시대극(?)입니다.
<내 나이키>는 분명 '재기발랄'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훈훈한 웃음이 있는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관객들이 세편의 에피소드중 <내 나이키>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장진 감독의 재기발랄함을 기대하고 간 저에겐 <내 나이키>는 지루한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일단 뛰어>를 보러 갔더니 <집으로>가 상영된 꼴이라고나 할까요??? ^^;
한마디로 제가 기대했던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훈훈해서 당혹스러웠던 두번째 에피소드 <내 나이키>가 끝나고나면 이젠 멜로 영화의 형식을 빌린 <교회 누나>가 시작합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극 <사방에 적>과 훈훈한 드라마 <내 나이키>와는 분명 차별화되는 <교회 누나>는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음직한 풋풋한 짝사랑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쯤되면 장진 감독의 재기발랄함을 기대했던 제가 충분히 실망할만한데 전 이 에피소드를 눈을 부릅뜨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광고지에는 <교회 누나>가 마지막 기가막힌 반전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할것이라고 쓰여있었기 때문이죠.
습관적으로 반전이라는 말에 전 이 영화에 도전을 해본겁니다. '내가 너의 반전을 맞춰 내리라...' 전의에 불타는 제 눈빛은 풋풋한 짝사랑의 이야기속에 숨어있음직한 반전을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도저히 납득할만한 반전을 찾아내지 못했을쯤... 드디어 이 영화의 그 반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 <교회 누나>의 마지막 장면에 분명 박장대소를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반전이라고 해야하는지... 반전이라기 보단 민망한 코메디적 상황이라고 해야하는 것이 옳지않을지...
눈물을 흘리며 슬픈 멜로 영화에나 어울릴법한 대사를 닭살돋게 연기하던 두 캐릭터의 그황당하고 민망한 표정... 암튼 박선영의 그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박수를 치긴 했지만 분명 반전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더군요.
이 영화가 끝나고 <묻지마 패밀리>가 옴니버스 영화라는 사실을 몰랐던 후배는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하긴 옴니버스 영화는 분명 우리 영화중 지금까지 시도해 본적이 없는 새로운 형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조사를 충분히 맞췄던 저로써는 오히려 이 영화의 밋밋한 구성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장진 감독이라는 이름을 믿고 갔건만... <묻지마 패밀리>는 장진 감독의 재기발랄함보다는 어린 시절의 훈훈한 풍경과 지나간 젊은 시절의 풋풋한 짝사랑을 제게 보여줬으니...
세편의 개성 강한 단편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장진 감독의 재기발랄함을 1/3밖에 보지 못했기에 실망을 해야하는 건지... 아직도 헷갈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