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양영철
주연 : 이정재, 주현, 이혜영, 명계남
헐리우드에선 이미 법정 드라마가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법정 드라마처럼 영화적 소재가 풍부한 것도 드물것이다. 의문의 사건이 있으며, 변호사와 검사의 신경전이 시종일관 관객을 긴장하게 한다. 의외의 증거나 증인 그리고 라스트의 극적 반전, 인간 승리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법정 드라마엔 한가지 약점이 있다. 다른 영화보다 영화적 구조가 치밀해야한다. 그렇지않으면 법정 드라마는 오히려 지루함과 유치함속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헐리우드에선 존 그리샴이라는 법정 드라마에 관해선 독보적인 존재가 있기에 법정 드라마가 인기리에 영화화될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엔 달랐다. 법조인은 최대의 존경을 받는 반면 영화인은 천대를 받던 과거의 유물을 물러받아왔기에 영화인들중 법체제에 대해 아는 인물이 거의 없었다. 그러한 시점에서 양영철이라는 신인 감독의 등장은 매우 뜻깊은 사건이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영화에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영화의 길로 들어선 양영철 감독. 그는 법대 출신답게 데뷔작을 법정 코미디라는 우리나라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장르로 도전하여 영화인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물론 헐리우드처럼 심각하고 스릴있는 진지한 법정 스릴러 장르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으나 한국 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코미디 장르에 법정극을 도입 새 장르에 대한 관객의 불편함을 해소하겠다는 양영철 감독의 의지였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한다면 법정 코미디 장르에 대한 양영철 감독의 도전은 실패이다. 사건 구성은 어색했으며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너무 코미디쪽을 지향했다. 결국 법정 코미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그저 평범한 코미디 한편을 본 꼴이 되고 말았다.
양영철 감독의 주인공 설정은 일단 신선했다. 판사라는 자신의 의무와 책임때문에 가정에 소홀했던 박기풍(주현)과 어머니의 죽음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키워나가던 박수석(이정재) 변호사. 두 부자의 갈등은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감독은 그후 흥행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인지 영화를 무리하게 코믹하게 끌고 나가려 노력한다. 룸살롱에서 한 여자를 사이에두고 싸움을 벌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은 부자의 갈등이라기보다는 한심한 광경이었으며 박수석이 매번 당함으로써 양영철 감독은 억지 웃음을 자아내려 노력한다. 자신이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의 죽음, 그에 대한 죄책감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를 지키지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주인공 박수석은 충분히 관객의 동정을 받을만한 캐릭터이다. 그러나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에게 실없는 행동만을 시킨다. 그렇게함으로써 이정재의 연기 변신은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영화의 진지함은 찾을 수 없게 된다.
영화는 중반까지 두 부자의 코믹한 대결과 나쁜 변호사인 박수석이 골탕먹는 장면을 보여주며 그럭저럭 이끌고 갔다. 그러나 영화를 그냥 그렇게 끝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양영철 감독은 살인사건과 미치광이 의사의 복수를 통해 이들의 화해와 박수석의 변화를 맞이하려한다.
오토바이 상회 사장의 살인 사건과 용의자로 지목된 전과자 청년. 그리고 얼떨결에 승률 0%이면서 이 사건을 맡게된 박수석. 게다가 판사는 아버지인 박기풍이고, 검사는 애인인 김미정(이혜영)이다. 안일한 태도로 의뢰인의 형량만 줄이면 그만이겠거니 생각해던 박수석에게 변화가 생긴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다. 박수석의 변화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건은 일반 관객이 보더라도 허술하며 박수석이 막판 증거와 증인을 제시하여 사건을 역전시키는 과정 역시 밋밋하다. 존 그리샴의 꼼꼼히 짜여진 법정 스릴러를 보아온 관객에겐 이 영화의 구조는 너무나 엉성했다. 역시 양영철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었으며 우리가 기대했던 치밀한 구성의 법정 코미디와는 달리 그저 평범하고 재미난 법정을 소재로한 코미디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법정 코미디라는 새 장르의 개척은 실패했으나 시도는 신선했으며 터프한 배우 이정재의 이미지 변신도 성공한 셈이다.
1997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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